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대표이사. (사진=홈페이지 캡처)
"'사장님이 빨리 가자'고 하면 즉시 모든 신호와 차선과 교통 법규는 무시한 채 달려요. 매뉴얼에도 이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카메라요? 찍히면 다 회사에서 내주는데요. 재벌한테 과태료가 무슨 문제겠어요"
수행기사 상습 폭언·폭행 등 '갑질'로 논란이 된 현대가(家) 정일선(46) 비앤지스틸 사장이 "모든 교통 법규를 무시하고 달릴 것"을 지시했다는 기사들의 추가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7일 정 사장의 전 수행 기사들에 따르면 도로에서 '불법 유턴'은 일상적인 일이다. 수행기사 A씨는 "유턴을 하려면 2~300m 더 올라가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항상 중앙선 넘어 불법 유턴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매뉴얼에 '유턴(하는 곳)까지 가지 말고 좌우로 확인한 뒤 중앙선 넘어 유턴을 바로 한다'고 나온다"면서 "삼성역 사거리에서 항상 그렇게 했다"며 장소도 정확히 짚었다. "매뉴얼에 불법 유턴 장소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적혀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퇴근길 코스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증언은 다른 수행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전 수행기사 B씨는 "차가 정말 막히는 퇴근 시간에도 청담동에서 수원까지 20분이면 간다. 차가 막히면 갓길을 타고 역주행도 하고, 한 마디로 모든 위법을 다 동원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뒤에서 빵빵거리고 다른 운전자들이 욕해도 또 이럴 때는 신경도 안 쓴다"며 혀를 내둘렀다.
"내가 뗀 과태료만 500만원~600만 원 정도 됐다"던 또 다른 수행기사 C씨는 "운전할 때 차가 막히면 '왜 이 길로 왔냐 X신아'부터 시작해 운전 중에도 머리를 때려 욕 안 먹고 안 맞으려면,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 등 온갖 불법을 동원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정일선 사장의 매뉴얼에는 빨간색 글씨로 '차량 운행 시 빨리 가자는 말씀이 있을 경우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신호, 차선, 과속카메라, 버스 전용차로 무시하고 목적지 도착이 우선임'이라고 강조돼 있다. (김연지 기자)
실제 정 사장의 매뉴얼에는 빨간색 글씨로 '차량 운행 시 빨리 가자는 말씀이 있을 경우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신호, 차선, 과속카메라, 버스 전용차로 무시하고 목적지 도착이 우선임'이라고 강조돼 있어 수행기사들의 이 같은 증언을 뒷받침한다.
이렇게 도로를 무법적으로 달리다 보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한 번씩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했다던 기사들은 "불법을 하라 할 땐 언제고 사고가 나면 또 주먹이 날아오거나 잘린다"고 울분을 토했다.
불법 주정차도 일상이다. "정 사장이 일을 보고 내려왔을 때 바로 차에 타야하기 때문에 늘 주차금지 구역이라도 주차하고 대기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기다리게 하면 욕이 날아온다"고 그는 덧붙였다.
◇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주 7일 근무…요즘엔 그래도 "한 달에 2~3번은 쉬어"수행기사들에 따르면 공식 출근 시간은 7시 30분부터지만 오전 7시에는 정 사장 집에 도착해야 VIP 오전 매뉴얼에 나온 대로 신문과 가방 챙기기, 구두 닦기 등 출근 전 업무를 8시 전에 마칠 수 있다.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정 사장이 "들어가"라고 해야 집에 갈 수 있다. "하루 평균 근로 시간이 16~18시간이었다."고 기사들은 입을 모았다.
대기업 임원인 이상, 늦게까지 회의나 모임 등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이에 대한 추가 수당은 단 한 푼도 없다. 정말 일찍 들어가는 날은 10시나 11시, 늦으면 새벽 2~3시다. 그래도 다음날 7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쉬었다"는 A씨는 "자정 전에 퇴근한 기억은 거의 없고 주 7일 내내 근무한 적이 허다했다. 그 때는 가족 얼굴 제대로 한 번 못 봤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최근에는 그래도 한 달에 두 세 번은 사모와 자녀 차를 모는 사택 기사들끼리 돌아가면서 쉰다"는 게 수행기사들의 전언이다. 이렇게 쉰다 하더라도 근로기준법 '주 40시간 근무'를 철저히 위반하는 것이지만 막중한 노동에 시달렸던 기사들은 "이게 어디냐"며 오히려 안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