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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국한인신문,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제2의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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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김재기 교수 신한민보 자료발굴, 김구 주석 감사편지도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발생해 전국으로 확산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제2의 '3·1운동'으로 평가한 미주 한인신문 보도내용이 공개됐다.

미국 뉴욕시립대학(CUNY)에서 교환교수로 재직중인 전남대학교 김재기(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29년 당시 미주한인 신문인 '신한민보'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100회 이상 보도하면서 이를 ‘제2의 3.1운동’으로 평가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29일 밝혔다.

북미대한인국민회총회(회장 백일규) 기관지인 '신한민보'는 1929년 11월 28일자 1158호신문에 "흥분된 천여학생 시위행렬, 광주고보생을 필두로 농업생도 대막대를 메고 시위 행진을"이라는 제목으로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사실을 보도했다.

신문은 이 기사에서 "지난달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조선인 학교) 학생과 광주중학교(일본인 학교) 학생 각각 수 백명이 광주역 부근에서 일대 충돌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학교당국은 3일간 휴교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신한민보의 광주학생독립운동 기사는 중국의 국민당 기관지 '중앙일보'에서 1929년 12월 12일, 소련 극동지역에서 발행된 '아방가르드(선봉신문)' 12월 29일에 보도된 것보다 한 달 정도 앞선 보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29년 12월 12일자에는 "조선학생 경관과 충돌"이라는 제목으로 광주에서 서울로 확산된 사실을 보도했고, 1930년 1월 2일자에는 "4종 격문확대로 127명 검거하여 종로서에 연행"이라는 기사를 비롯해 '배재고보 학생 검거' 등 6건의 소식을 실었다.

1930년 1월 23일자에도 1면과 2면, 전면에 걸쳐 '제2의 3.1운동 광주에서 발생하여 전국적 민족운동으로 확산'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보도에는 광주학생들을 지지하는 서울지역 보성, 중앙고보 학생들이 동대문서에 끌려가는 사진 3장이 들어 있다.

신한민보의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보도는 1930년 5월까지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며 1931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성진회사건 판결'로 "광주학생 85명중 69명이 출감했다"는 보도까지 이어졌다.

신문은 또, 1930년 3.1운동 11주년을 맞아 미주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개최된 '광주학생운동 지지대회'를 5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1930년 5월 1일자 신문에는 상해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대한인국민회 백일규 총회장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를 게재했다.

김구 주석은 이 편지에서 "다시금 감복한 것은 수년간 우리 독립운동이 침체상태에 빠졌던 현상이 광주학생운동으로 기인되어 강경히 진작됨에 따라 정부의 비용도 가일층 호변한 차시에 그것까지 유념하시어 영수증을 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성의를 다하시와 인구세를 또다시 보내주심을 더욱 감격합니다. …(대한민국 4월 2일 김구)"라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신한민보는 이와 함께 미주에서 대한인국민회의가 주도하는 '광주학생운동후원공동회' 조직과 '광주학생지지대회' 및 '후원금 모금활동'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Korean National Association)는 19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박용만, 이승만, 안창호 등에 의해 창설된 미국내 독립운동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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