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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로 담금질된 故 신영복 사상의 '향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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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영복 "참된 공부는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

신영복 교수. (사진=성공회대 제공)

 

신영복 선생이 15일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1941년에 태어나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수감돼 20년 20일동안 옥고를 치른뒤 출감하였다.

출감하던 해 감옥생활동안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내 서간집 '감옥으로부터 사색'을 출간했다.

이 서간집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냄으로써 민주화를 열망하며 독재정권을 견뎌왔던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고 정신적 자부심을 불어넣었다.

신영복 선생은 1989년 성공회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강의를 시작하여 2006년 6월 아쉬운 고별강연을 하게 된다. 그 당시 한홍구 교수는 신영복 선생의 삶을 회고한 글에서 "20여 년의 청년기, 꼭 20년의 귀양 생활, 그리고 귀양이 풀린 뒤의 해배기간이 20년 가량이었다. 해배 2기라고 할 수 있는 앞으로의 20년, 더불어 숲의 중심에서 신영복은 우리에게 어떤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들려줄 것인가?"라고 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시기에 신영복 선생이 타계했으니, 선생의 빛나는 가르침에 감동해왔던 남은 이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그의 마지막 저서 '담론'의 부제 '마지막 강의'처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고인의 따뜻하고 깊이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은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었고, 그 아픔을 깊이 있는 사색과 성찰로 담금질해 오늘을 넘어선 시대의 전망을 제시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이다.

고인은 생전의 한 인터뷰(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이하 평생교육원)에서 "원래 '스승' 혹은 '사표'는 당대 사회에는 없는 법입니다. 다산도 당대에서는 그냥 죄인이었거든요. 사표와 스승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라고 말했다.

범인의 눈으로 보기에 고인은 분명 우리 시대의 스승임에 틀림 없건만 왜 그 분은 당대에 스승이나 사표가 없다고 했을까?

그는 "당대에서는 개인적 이해관계나 계급의 이해관계, 혹은 집단 간의 갈등,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영복 선생은 그러면서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오늘로부터 독립된,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 할 비판 담론을 만들어내고 그 담론들을 실천할 사회적 주체들을 키워내는 것이 지식인들이 할 일입니다. 모든 사회변화 과정은 사상 투쟁에서 사상의 실천적 계급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일어났다."(2015년 경향신문 인터뷰)

그의 사상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는 출감 이후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양 고전을 강의했고, 감옥 생활동안 접했던 논의와 주역 등 탐독했던 동양 고전들이 그 바탕이 되었다.

동양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오늘을 넘어선 현대적 해석은 저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2004년)으로 출간돼 고전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필독서가 됐다.

이후 고전 강의 녹취록을 정리한 저서 '담론'(2015년)이 출간돼 고전을 통한 시대적 전망을 다시 한번 제시했다.

(사진=성공회대 제공)

 

그의 사상이 많은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그건 아니다.

"사실 제 인생을 바꾼 스승, 생각을 바꾼 한 권의 책은 없습니다. 모든 책은 반면교사이기도 합니다. 책도 중요하지만 책에 매달리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책을 많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추천하라고 치면 '논어', '자본론', '노자'입니다. '논어'는 인간을, '자본론'은 경제사회를, '노자'는 자연을 다룹니다." (2105년 경향신문 인터뷰)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렇게도 말했다. "감옥에 있을 때, 결코 많은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 아래서 책을 읽기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려고 했지요.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넓히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평생교육원)

신영복 선생이 생각하는 공부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담론'에서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다. 이 의미를 더 들어보자.

"가슴까지 와야 한다는 건 공부 대상에 대한 공감과 애정으로 나가야 진정한 공부라는 뜻입니다. 처음 5~6년 감옥살이할 때 함께 징역 사는 숱한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얘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들을 대상화하거나 분석하곤 했지요. 그러다 차츰 그 사람들과의 공감과 애정, 이런 게 생기면서 내 공부가 가슴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담론'에도 썼듯이 감옥에서 집을 그리는데, 책을 읽으며 머리로만 공부했던 나는 지붕부터 그려나간 반면, 같이 징역을 살았던 노인 목수는 집을 짓는 순서 그대로 주춧돌부터 그러더군요. 이 차이를 정확하게 인식해서 자기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공부는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던 것이지요." (평생교육원)

공부는 어떤 자세로 하는 게 좋은 걸까?

신영복 선생은 '공부는 어리석게 해야 한다'고 권한다.

"숨은 고수 프로그램처럼 실생활에 유용한 게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장 자기에게 무언가를 안겨주는 유익한 것을 찾는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진짜 공부를 잘하는 법이지요. 사람을 크게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두 부류로 나누기도 하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기보다 세상을 자기에게 맞출 수 없을까 고민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상이 그나마 변화한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 때문이지요. 그래서 공부는 어리석게 해야 합니다. 당장의 이익을 좇지 말구요."(평생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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