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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朴의 '집념'에 의회주의 무릎꿇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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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청와대 제공)

 

"지금이 경제위기다", "아니다"라는 논쟁은 사실 무의미하다. 경제가 예상 외로 심각하다는 건 재계와 경제학계를 막론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으니까. 한국경제의 위기론은 지난 1997년 IMF 사태 이후 단 한 해도 거른 적이 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집권당은 언제나 경제위기론을 부추겼고,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한 '전가의 보도'로 활용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때 한국은 사실 안전지대였다. 재벌그룹 30개 가운데 16개가 무너졌고, 금융기관 수십 개가 문을 닫으면서 수십 만 명이 넘는 화이트칼라 해고자들이 IMF 때처럼 길거리로 내몰린 것과 비슷한 국가 부도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은 경제위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경제위기론에 둔감하다.

문제는 한국 경제가 진짜 위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은 틀리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들과 전직 경제 관료 출신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장기침체형 불황에 빠져들었다고 진단한다. 일본의 망가진 20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17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보고 그대로다. 이대로 가다간 만성적인 경기침체를 영영 극복 못할 수도 있다. 대기업들은 중장기 플랜은커녕 1년짜리 계획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정도로 2~3개월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새로운 먹거리 창출도 막혀있고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심지어 2017년 말이나 2018년쯤 한국 경제가 폭발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망까지 회자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들어 경제위기론을 자주 거론하며 경제회생 법안을 제때 처리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한국 경제의 심각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강봉균 전 경제부총리는 "지금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내편, 네편을 따질 때가 아닌 위중한 상황이라"며 "정부와 정치권, 재계가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현 경제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없다"며 청와대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요청을 거부했다. 반면 선거구 획정에 대해선 여야 합의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연말연시에 심사기일을 정하겠다"며 직권상정 의지를 밝혔다. (사진=윤창원 기자)

 

따라서 내년 총선의 화두가 '경제 살리기'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어느 당이 경제를 살릴, 아니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는 정당인지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주목된다. 국민의 판단은 독수리눈처럼 매섭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탓' 발언이 적절성 여부와 관계없이 야당에겐 결코 유리할 수 없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은 경제 살리기의 걸림돌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 있다. 발목만 잡는 야당 심판 구호를 주창하고 나설 개연성도 있다. 지난 2002년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원인 가운데 한 가지는 이 총재가 사사건건 김대중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는 퇴행적 행태였다. 지금의 야당이 반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주 특이한 대통령이다. 집념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번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물러설 줄을 모르는 직진형이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교체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당인 새누리당을 장악했으며 그 힘을 무기로 바로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했다. 역사학계와 야당이 아무리 강력하게 반발해도 정한 길을 가고 있다. 협상이란 없다. 지도자란 욕을 먹으면서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강단이 당대 일인자다. 지금 정치권엔 박 대통령을 당할 자가 없다.

야당은 박 대통령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나쁜 점만을 닮은 대통령이라고 비난한다. 여당 의원들 상당수도 밖으로 내뱉지만 않을 뿐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든, 부정적으로 평가하든 여야 정치권은 박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바로세우기와 경제 살리기 프레임에 걸려들고 있다. 야당의 지도력 부재, 무능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고, 박 대통령을 무시한 데 따른 반사 현상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 대통령은 한번 마음 먹으면 어떤 어려움이 봉착하더라도 목표를 관철시킨다"며 "외골수의 무서운 돌파형"이라고 평했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박 대통령을 보면 3김 씨 보다 더 무서운 정치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노동관련법과 경제활성화법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관련 법안들을 통과시킬 것이다. 일단은 다음 주까지 기다려 본 뒤 연말이 돼서도 상황의 반전이 없으면 정의화 국회의장과 일전을 겨루거나 특단의 조치(헌법상의 긴급 재정·경제명령 발동 같은)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여권 관계자는 "기다려 보라"고 말한다.

박 대통령에겐 친위부대와 진배없는 새누리당을 적극 활용할 것이다.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정 의장 설득이 여의치 않을 땐 대통령의 긴급 재정명령 발동을 강하게 촉구할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노동개혁법은 어떤 경우에도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처리 과정에서의 '파란'을 국회의장 직권 상정이나 긴급 재정명령이라는 지름길로 돌파하자는 속내를 감추고 있다. 처리 이후의 반발은 경제비상사태론과 국면 전환 등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여권은 지난 1996년 12월 26일의 노동법 날치기 때와 비슷한 전국민적인 저항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어느 선까지 버티는지도 관전 포인트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차기 출마를 사실상 포기했다. 국회사에 남는 의장이 되고 싶어 하고 있으며, 청와대를 비롯한 여야의 헤게모니 싸움에 휘둘리는 국회의장이 되지 않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이 계속 몰아세우며 전방위로 압박하면 '동티'가 날 수도 있다.

정 의장은 반면에 설득이 되는 정치인이다.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청와대를 향해 "법적 근거를 달라”고 항의했다. 정 의장은 청와대와 여당의 공세를 이달 말까지는 견딜 개연성이 있다. 야당과 노동계 설득을 위해서도 법안의 '숙성기'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정 의장은 연말쯤에도 변화가 없을 경우 나름의 결단을 할 수 있다. 그동안 보여준 첨예한 쟁점 법안 처리 과정이 그랬다. 그의 친정은 새누리당이다. 이장우 의원처럼 "의장이 직권 상정을 하지 않으면 해임결의안을 낼 수도 있다"는 등의 무례한 언행은 정 의장 설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장우 의원은 국회의장의 권위와 국회법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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