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리 형님, 다승왕은 내가 먼저' 두산 유희관(왼쪽)은 15일 케이티와 잠실 홈 경기에서 역투를 펼치며 다승 단독 1위로 올라섰다. 함께 '느림의 미학'으로 주목받는 메이저리그 토론토의 마크 벌리도 못 이룬 다승왕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자료사진=두산,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유희왕' 유희관(29 · 두산)은 '한국의 마크 벌리'(36 · 토론토)로 통한다. 둘 다 시속 130km대 직구를 갖고도 각 리그 정상급 투수로 군림하는 게 비슷하다. 구속은 배팅볼 수준이지만 구위와 제구, 허를 찌르는 배합으로 타자들을 농락한다.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느림의 미학'이다.
다만 유희관은 벌리와 커리어를 비교하긴 어렵다. 2009년 데뷔해 군 제대 후인 2013년부터 비로소 빛을 본 유희관이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린 반면 벌리는 무려 15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다.
하지만 유희관은 벌리가 단 한번도 이루지 못한 대업에 도전한다. 바로 다승왕이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줄곧 '무관의 제왕'이었던 벌리보다 공은 느리지만 타이틀은 먼저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유희관은 15일 잠실에서 열린 케이티와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동안 안타 5개와 볼넷 1개만 내주며 무실점으로 막은 짠물투를 펼쳤다. 11-0 대승을 이끌며 시즌 12승째(2패)를 따냈다.
7월 타율 3할대, 최근 10경기 8승을 거둔 케이티의 상승세를 잠재웠다. 전날도 케이티는 두산에 8-1로 이겨 상대전 7전 전패 끝에 승리를 따낸 사기가 매서웠던 터였다. 그러나 유희관은 평소보다 더 느린 공으로 무서운 기세의 케이티 타선의 조급증을 이끌어냈다. 최고 구속이 불과 131km였지만 90km대 변화구를 적절히 구사해냈다.
▲'전반기 다승왕' 운과 실력 겸비전반기 다승왕이다. 이날 승수 쌓기에 실패, 11승(4패)에 머문 알프레도 피가로(삼성) 제치고 다승 단독 1위에 올랐다. 벌써 지난해 세운 개인 한 시즌 최다승과 타이를 이뤘다. 2013년 처음으로 10승(7패)를 거둔 유희관은 지난해 12승(9패)을 따냈다. 다승 6위였다.
이 정도면 올해 생애 첫 타이틀을 노릴 만하다. 평균자책점(ERA)도 4위(3.28)이다. 18경기에서 12승2패, 승률 1위(8할5푼7리)의 승운도 따랐지만 실력이 뒷받침됐다는 뜻이다. 후반기 다승왕 경쟁에서도 유리한 대목이다. 두산이 블론세이브 최다(13개)인 점이 불안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유희관의 승수 쌓기는 순항 중이다.
벌리는 10승 이상을 거둬온 지난 14년 동안 단 한번도 다승왕에 오르지 못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이던 데뷔 3년차 때 개인 최다승인 19승을 올렸지만 그해 아메리칸리그 4위였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05년 16승도 리그 5위였다. 꾸준했지만 특출났던 시즌이 없었던 셈이다.
벌리도 올해 무관의 한을 풀 가능성이 적잖다. 10승(5패)로 리그 다승 2위다. 공동 1위인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 댈러스 카이클(휴스턴)에 1승 차다. 다만 소속팀 토론토가 5할 승률 언저리에 머문 만큼 승운이 따를지 여부가 변수다.
유희관은 일단 "다승왕에 대한 욕심은 없다"면서 "그저 팀 성적만을 생각하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생애 첫 타이틀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과연 유희관이 '느림보 형님' 벌리보다 먼저 다승왕에 다다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