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연일 초미의 관심을 받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 검찰 특별수사팀의 팀장인 문무일 검사장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수사팀이 구성된 뒤 한동안 기자들과 연락을 끊다시피 한 그가 17일 이례적으로 취재기자들에게 티타임을 요청했다.
기자들과 만난 문 검사장은 대뜸 "수사팀 구성원들이 고생을 엄청 했다. 압수수색을 통해 나온 자료들을 분석하느라 잠도 못 자고 일해 왔는데… '오늘 같은 일'은 제가 정말…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문 검사장이 말한 '오늘 같은 일'은 어떤 일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날 아침 조선일보가 "특별수사팀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한 내역을 담은 로비 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특히 이 장부에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았던 새정치민주연합 중진인 K의원과 C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에 대한 로비 자료가 포함됐다고 상세하게 서술했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가자 야권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김성수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사안의 본질을 흐리려는 검찰의 치고 빠지기식 언론 플레이가 또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검찰을 비난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자료사진)
보도가 나간 뒤 수사팀 관계자는 "특정언론 보도된 그와 같은 형태의, 형태가 추정되는 자료는 현재까지 수사팀이 눈으로 확인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형태의 장부가 실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검찰이 장부를 확보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 검사장이 분노한 부분은 이 지점이다.
'성완종 리스트'가 가진 파급력 때문에 각 언론사들이 엄청난 취재경쟁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수사팀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없는 사실로 음해 받는 것에 대해 밋밋하게 대응할 수 없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수사팀이 솔직한 바람이다"고 강조했다.
'치고 빠지기식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야당의 비난에 대해서도 "우리가 해 놓은 결과를 보고 평가받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과정에서 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얘기하면 정말 저희로서는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성완종 전 회장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없다는 '태생적 난관'을 업고 수사에 착수한 특별수사팀으로서는 수많은 이권집단들이 의도적으로 흘리고 다니는 음해와도 싸워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한 셈이다.
특별수사팀은 '성완종 리스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력뿐만 아니라 언론과 국민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저희는 늘 귀인(貴人)의 도움을 바라며 한칸 한칸 수사해 나가고 있다"며 협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