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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육성] "가슴에 빨간약이라도 바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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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故 최정수 군 어머니 김정숙 씨,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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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故 최정수 군 어머니 김정숙 씨 (사진=권민철 기자)

 

김정숙(46) 씨에게 아들 최정수 군은 '보물' 같은 존재였다.

맞벌이 하는 부모 밑에서 5살 어린 동생을 부모처럼 돌보던 아이. 중학교 3학년 때 태권도 4단까지 딸 정도로 무엇이든 스스로 하던 아이. 고1 때 체격이 185㎝(키)에 85㎏(몸무게), 290㎝(발크기)로 주변의 시샘을 한눈에 받았던 그런 아이였다.

회사동료들도 자신의 아이가 정수 반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다.

그런 아들이 지금은 없다.

김 씨는 '없다'는 말이 그렇게 무섭고 힘든 말인지 몰랐다고 했다.

아이는 어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떠났다.

아이 없는 하루 하루가 무겁게 짓눌리지만 상담도 치료도 받지 않고 있다. 그 누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치료해 줄 수 있겠냐는 거다.

어디가 아프냐는 말에 그녀는 아픈 것도 사치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가슴에 빨간약이라도 바르고 싶다며 눈물을 삼켰다.

▶ 무엇이 직장에 머물수 없게 만드나?

- 너무너무 그리운 거다. 아이가 보고 싶은데 뛰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너무너무 심하게 들고 내 아이가 없는데 없다는 그말이 정말 이렇게 무섭고 힘든 말인지 몰랐다. 내 아이가 없는데 내가 여기에 왜 있어야 되나. 저는 뭐 '없다'라는 말이 이렇게 무서운 말인지 정말 몰랐다. 정말 어른들한테 너무 많은 걸 가르쳐주고 간 아이들이라…

저희 아이가 작년에 올라오면서 우리가족은 자기가 군대 가있을 때 빼고는 헤어져 있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얘기를 한…(흐느낌) 그런데 꼭 있어야 될 자리에 그 아이가 없어서…(눈물)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 만나는 게 무지 힘들다.

▶ 어디가 제일 아픈가?

- 제가 농담으로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아프다는 말도 사치라고 얘기 했다. 아프다는 말도 사치라고… 여기 가슴에 빨간약을 바르고 싶다고…

▶ 어떻게 해야 나을까?

- 안 나은다. 그 아이가 오질 않으면 나을 수도 낫지도 않는 불치병…(흐느낌) 나아서도 안 되고. 부모들이 힘든 거는 솔직히 별로 힘든 거 아니다. 제일 힘들고 아픈 거는 그 아이들이지. 제 생각은 그렇다. 부모들이 힘들고 아픈 거는 힘든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라고. 제일로 힘들고 아픈 거는 그 아이들이지

▶ 못살고 갔으니까?

- 아니 못 산것도 못 산거지만 오고 싶었을 텐데. 오고 싶었을 텐데. 제가 사고 당일 날 아이하고 통화를 했었다. 오고 싶었을 텐데.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집에 오고 싶었을 텐데. 이렇게 덩치도 크고 그런 녀석이 어른 취급을 하는 부모한테 울면서 한말이 하나 있는데 '엄마, 아빠 저 이렇게 등치도 크고 키도 크지만 저도 16살 똑같은 어린 아이에요' 그렇게 얘기한 적이 한번 있었는데 '저 이제 16살 밖에 안먹어요' 그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큰 아이고 그러다 보니 부모들이 생각하는 기대치나 그리고 워낙 얘기하는 거나 외형적인 모습이나 전부 어른에 가까우니까 생각하는 것도 어른은 어른이었는데 어른들하고 대화가 되는 친구였다. '저도 이래도 16살밖에 안먹었어요' 그랬던 게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

정말 그때는 16살이고 여행 갔을 때는 딱 생일이 지나서 우리아이 3월 1일생이다. 아이는 크고 엄마가 아이를 이렇게 예쁘게 낳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수술을 하게 됐는데 저희가 아이한테 뭘 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저희가 생일날은 거의 다 일을 하잖아? 그래서 아이는 생일날은 일하지 말고 쉬라고 3.1절 국경일이라고 일하지 말고 쉬라고. 특히 남자아이니까 이 다음에 어른이 되고 가장이 돼서도 일을 하니까 자기 생일날은 일하지 말고 쉬라고. 그렇게 생일을 정해서 아이를 낳는데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그럴 생일을 만들어 줬더라.

▶ 형제는?

- 네. 4살 6개월 터울지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동생을 하나 낳아달라고 그래서 자기는 여동생 말고 남동생을 낳아달라고 자기는 오빠 말고 형이 하고 싶다고 그래서 이 친구는 외형적으로는 큰데 동생은 왜소하다.

작년에 중학교 1학년 입학할라고 교복을 준비해놨는데 교복을 사가지고 오면 보통들은 그걸 입을 당사자가 주섬주섬 입어보는데 정수는 교복을 처음서부터 끝까지 동생한테 입혀주더라. 왜그러냐 그랬더니 교복은 이렇게 입는 거야 형이 알려주는 거야 그러고. 교복을 다 입혀주고 사진을 찍더라…(울음) 동생이 작고 왜소하니까 항상 아이고 내 새끼 하면서 데리고 다니곤 했다.

▶ 상실감이 크겠다. 직장 동료들도 자기 일처럼 아파해주고 했는데도…

- 그래서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야되겠다. 직장을 그만 둬야 겠다는 생각이 이만큼 차오르고 있다. 다 똑같으시겠지만 지금도 3월이라서 출근하다보면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또 3월이라 새내기 아이들 있잖나.

특히 단원고 교복 입은 아이들 중에 혹시라도 그 사이에 우리 아이가 껴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도 1학년 입학했을 때 저렇게 하고 갔는데 저렇게 밝은 모습으로 가방 메고 갔는데 그런 것들 그리고 얼마나 좋다고 히히덕 거리고 깔깔 거리고 다녔는데 운전하다가 이렇게 이렇게 자연적으로 자동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이름표 잘 달고 다녔는데 그런 아이가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된 거다. 학생이 교복입고 이름표 달고 다니는 건 당연한 건데 그런 모습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런 거에…

▶ 애 아버지는 직장일 하시나?

- 작년 내내 여기 쫓아 다니시다가 여기 가족대책위 쫓아다니시다가 1월 초부터 출근을 하셨는데 작년 한 12월부터 출근은 하셨는데 그때 너무 정신없이 국회니 어디니 쫓아다녔던 이제 그런 것들이 출근을 하면서 본인도 모르게 가져오는 상실감이나 뭐 그런 것들 그리고 열심히 쫓아다닐 때는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거기에만 뭐 올인 해서 쫓아다니다 보니까 못 느꼈을 뭐 그런 것들이 좀 있으신가보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농담으로 오춘기라고 얘기하는데 같은 느낌이다. 사소한 거에 화내고 분노하고 상대방을 어떤 말을 했는데 그 말이 평상시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었는데 그 말에 막 흥분하고 격앙되고 그런 표현을 잘 안하시는 분인데 지난주에는 우리 정수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눈물) 얘기하고 제가 그냥 단호하게 잘라서 얘기했다. 못 온다고 오고 싶은데 못 온다고. 아빠가 자리에서 잘 지켜줘야 된다고 그랬더니 자기도 따라서 가고 싶다고…(눈물) 얘기하더라.

작은 아이하고도 너무너무 사이가 좋은 아빤데 큰 아이가 없는 빈자리가 너무나도 커서 자기도 가고 싶다고 그러더라. 거기에 제가 위로랍시고 말을 하면 더 안 될거 같아서 우리는 가도 못 만난다고 얘기했다.

왜냐면 이 아이들은 뭐 작게는 16년 개월수 저기한 아이들은 17년인데 저희 아이는 17년 한달 보름 이 아이들은 정말 우리아이 기준으로 17년 한 달 보름을 살고 가면서 잘못한 것도 하나도 없고 다 착하고 예쁘게 있다가 여행 간다고 좋아가지고 명품지갑 아꼈던 거 그거 들고 갔는데 어른들은 그 이쁜 아이들을 하나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너무 많기 때문에 가도 못 만난다고 이렇게 만날 수가 없다고…(눈물) 저희 집 기도 제목이 요즘 뭔지 알려드릴까요? 다른 거 다 괜찮은데 치매는 걸리지 말자고…

▶ 애 잊을까봐?

- 저희가 갔을 때 그 아이 못 알아 볼까봐.

▶ 둘째가 살아있어야 되는 이유가 되는 거잖나?

- 물론 작은 애를 보고 살아야 하지 않냐고 말씀들은 다 그렇게 하시는데. 물론 그 아이를 보고 사는데 보면 볼수록 더 가슴이 아파진다. 간 아이 가고 없는 이 아이도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고 그리고 항상 같이 침대에서 장난치고 컴퓨터를 할 때도 같이 장난치고 형이 하면 옆에 있다가 내 차례는 언제 되나 기다렸다가. 아니면 샤워도 항상 같이… 형이 야자 끝나고 오면 기다렸다가 항상 샤워도 같이 하고 나이 차이가 좀 있다 보니까…

처음에는 샤워를 안 하더라 사고 났을 때 저도 예민해서 왜 샤워를 안 하는 거에 대해서 몇 번 얘기를 했는데 아이가 저한테 얘기를 잘 하는 친구였는데도 그냥 안하고 싶다고 얘기를 하더라. 그럼 알았다고 나중에 한달인가 지나서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물소리만 계속 나고 아이가 뭐 저기하니까 이제 그런 마음이 많이 드는거다. 이러다가 쟤도 혹시 쟤도 잘못 되는 거 아닐까. 이런 일로가 아니라 아이를 밖에 내놓기도 힘들다.

학교 갈 때도 교실 앞에 까지 데려다 줘야될 거 같고… 저희는 전혀 자기 일은 자기가 딱딱 알아서 하게 엄마나 아빠가 특히 아이들 교육 같은데는 제가 좀 그런 편인데. 본인들 일은 본인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숙제, 준비물도 제가 다 갖다주거나 이런거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본인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하는데 자기 운동화나 실내화서부터 전부. (이제는) 밖에 내놓기가 무서운거다. 그 아이도 잃을 거 같아서…

저희가 뭐 아무리 순서가 없다고 하더라도 제 아이들이 먼저 이렇게 될 거라는 생각은 어느 부모님도 하신 적이 없다. 한 적이 없는데 이제는 당연히 네 식구였다가 세 식구가 됐는데 이 두식구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러다 내가 혼자 남는 건 아닐까? 그래서 저희 아이들 항상 이렇게 화장실 문 욕실 문을 열어놓고 씻었는데 살짝 문 열고 보니까 물만 틀어놓고 울고 있더라…(울음)

아이들이 앉아서 씻을 때 형은 초록색 개구리 의자, 동생은 노란색 개구리 의자를 거기에 앉아서 씻었는데 자기 의자에 앉아서 초록색 개구리 의자를 마주보고 씻었는데 거기를 쳐다보면서 물만 틀어놓고 울더라…(눈물) 모른척 하고 밖에 나와서 있으니까 그 아이도 모른 척 하고 씻고 나오는데 그런 모습들이 서로 보고 견디기가 너무 힘든 거다.

그냥 그냥 막내고 꼬맹이었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자기도 어른처럼 행동을 해야 되니까 저는 상담을 안 받지만 작은 아이는 자기도 상담을 안 받는다고 안 받겠다고. 강제로 떼쓰는 걸 제가 사실은 엄마도 나가서 상담을 받아야 되는 상황인데 엄마가 나갈 수 있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대신 너는 학교에서 상담을 하니까 그럼 니가 받아서 엄마한테 좀 알려달라고 그러면 엄마도 상담 받는 효과가 있지 않겠냐고 엄마를 위해서 좀 해주면 안되겠느냐고 하니깐 그렇게 고집 부리던 아이가 알겠다고 상담을 받으러 가더라.

갔다 오면 제가 한 번씩 넌지시 오늘은 뭐 어땠어? 그러면 음악치료사 선생님이 옆에 붙으셨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엄마는 정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이 아이한테 한말이 '정우야 우리는 몸이 어디가 아파도 다 고칠 수가 있어 엄마, 아빠는 그래 정우가 이 다음에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몸이 아픈건 고칠 수 있는데 마음이 아프거나 정신이 아픈 거는 고칠 수가 없어 엄마가 고쳐줄 수도 없고 그리고 그건 형아가 바라는 일은 아닌거 같아 니 생각은 어때? 엄마 생각은 이래' 그랬더니 자기도 그렇다고 얘기를 하더라.

그 상담하시는 선생님한테 아이가 방어를 하는 거다 자기는 괜찮은데 엄마가 너무너무 걱정이라고 그러니까 아이가 학교에 가서 앉아있어도 또래 친구들하고 떠들고 놀 때 그럴 때 빼고는 자기도 잠재의식 속에 있다는 거다. 엄마가 어떻게 하고 계실까? 이러다 엄마가 죽는건 아닐까? 엄마가 죽을까봐 걱정이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열다섯 살 된 이 아이 소원이 뭔지 아는가? 자긴 오래 사는 게 소원이라더라. 그 이유는 엄마, 아빠가 형아가 없어서 너무너무 힘들고 매일매일 우니까 자기는 오래사는 게 소원이라고 얘기하더라. 저는 작은 아이한테 얘기했다. 엄마는 울고 싶을 때 울 거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우리엄마가 지금 형아 생각이 나시는구나. 그냥 엄마가 무슨일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은 않고 그냥 엄마가 지금 형 생각이 나시나보다. 그냥 너는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엄마는 앞으로도 울고 싶을 때 울 거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소리 지를 거고 화내고 싶을 때 화낼 거야. 그러니까 너도 엄마한테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너가 화나고 싶을 때 화내고 소리지르고 싶을 때 소리지르고 울고 싶을 때 울고 뭐 이것 때문에 속상해요. 저것 때문에 속상해요. 엄마가 어떻게 할까봐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속상한 얘기를 안하거나 울지 않는다거나 그렇게 하는 거는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거 같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걱정이 되면 절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엄마한테 털어놓을 수 없으면 담임선생님이나 아니면 그 상담선생님이나 이런 분들한테 니가 털어놓고 얘기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질거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우리 그렇게 할까? 그랬더니 엄마가 좋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얘기를 하더라.

지금도 제가 퇴근해서 들어가면 항상 '정수야 엄마왔다' 이러고 퇴근을 했었다. 그러면 큰 아이가 뭘 하고 있든지 간에 항상 나와서 가방 받아주고 안아주고 지금은 그걸 작은아이가 하고 있고 그리고 아이 방에 들어가서 아이 옷을 붙들고 울고 있으면 작은 아이가 와서 이렇게 하고 간다. 아무말도 않고 등만 토닥토닥 하고 간다.

▶ 상담 같은 건 받으시나?

- 저는 안받는다.

▶ 왜?

- 이 슬픔은 이 아픔은 이런 슬픔이나 아픔을 같이 가지고 있는 이 부모님들 이외에는 어느 누구하고도 나눈다거나 얘기를 해서 덜어진다거나 그 분의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마음에 와 닿는다거나 그게 합리적으로 된다라는 생각은 저는 전혀 안한다. 그냥 저는 제가 가는 그날까지 끝까지 아파야 된다고 생각하고 절대 그걸로 덜어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부딪혀서 피가 나면 피가 나는 데로 상처가 나면 상처가 나는 데로 곪으면 곪는 데로 그렇게 지내야 된다라는 생각…

▶ 다른 가족도 그러길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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