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영동 옛 대공분실자리의 故 박종철 열사 영정사진
- 검사 안상수, 어느 정도 인정했었지만
- 알고보니, 허황되고 진실하지 못했다
- 당시 수사기록 보니 부글부글 끓어올라
- 박상옥 후보는 막내검사? 안상수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
- 박 후보자, 당시 수사의지 없었던 걸로 보여
- 3월초에야 추가고문경관 여부 알았다? 사실 아냐
- 대법관 장기 공백 막기위해 스스로 사퇴해야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5년 3월 30일 (월)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종부 (박종철 열사 형)
◇ 정관용> 지난주부터 꾸며드리고 있는 대법원 개혁 시리즈, 오늘 네 번째 시간 ‘대법관의 자격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 텐데요. 다음 주 화요일 4월 7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립니다. 후보지명 두 달여 만이고 그동안 청문회에 반대해 왔다가 찬성으로 돌아선 새정치민주연합은 ‘청문회는 열지만 대법관에 적절하지 않은 인사다, 철저히 검증하겠다’ 아직 그런 입장을 밝히고는 있습니다. 여러 차례 저희 방송에서 소개해 드린 바 있는데 박상옥 후보자가 평검사 시절에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사건을 수사하면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런 의혹이 일었기 때문이죠. 오늘 모신 분은 바로 그 박종철 열사의 친형입니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박종부 청년회장을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박종부> 안녕하십니까, 박종부입니다.
◇ 정관용> 박종철 열사와 몇 살 차이세요?
◆ 박종부> 7살 차이 납니다.
◇ 정관용> 차이가 좀 많이 나네요.
◆ 박종부> 네, 많이 나죠. 중간에 누이동생 한 명 있습니다.
◇ 정관용> 박종철 열사가 막내인가요?
◆ 박종부> 막내입니다.
◇ 정관용> 우리 박종부 회장께서는 맏이시고?
◆ 박종부> 제가 맏이죠.
◇ 정관용> 어떤 아이였습니까?
◆ 박종부> 집안에서는 마냥 귀여운 막내였죠. 저는 또 나름대로 학교생활 운동권에 좀 있기는 있었습니다만 졸업하고 취직하면서 동생은 또 학교로 들어간 그래서 같이 이렇게 어울릴 수 있는 시기가 그렇게 많이 겹치지는 않았습니다.
◇ 정관용> 하긴 7살 차이면 그렇죠.
◆ 박종부> 네, 그렇죠. 그래서 이야기를 해보면 많은 부분들, 공부도 많이 한 것 같고 좀 어떤 때는 제가 또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습니다, 사실요. (웃음)
◇ 정관용> 뭘 배우셨어요?
◆ 박종부> 예를 들어서 그 당시에 한 번씩 집에 가면 그 친구 하숙 아니면 자취방 이렇게 보면 책들이 저 같은 경우는 예전에 구하기 힘들었던 그 책들을 많이 구했더라고요.
◇ 정관용> 이른바 운동권책, 이념 서적 이런 것...
◆ 박종부> 네. 그 당시에 그 당시에 전태일 평전도 그 당시에 동생 책을 빌려서 읽고 그랬습니다.
◇ 정관용> 그때가 서울대 무슨 과, 몇 학년?
◆ 박종부> 언어학과 3학년 그리고 전체 학기로는 7학기 째에 그런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 정관용> 한 번 구속됐다가 풀려나오고 복학해서 다니고 있다가 체포돼서...
◆ 박종부> 그렇죠, 네.
◇ 정관용> 정식 체포도 아니었죠?
◆ 박종부> 아니죠, 체포가 아니고 그냥 강제연행이었죠.
◇ 정관용> 그렇게 끌려가 있는지도 모르셨죠?
◆ 박종부> 전혀 몰랐죠.
◇ 정관용> 그리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자마자 연락이 왔습니까? 어떻게 왔습니까?
◆ 박종부> 저는 이제 15일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 정관용> 1월 15일?
◆ 박종부> 1월 15일, 그렇죠.
◇ 정관용> 그 일이 있었던 건 14일?
◆ 박종부> 14일었고요. 15일에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새벽에 형사 몇 명이 제 자취방으로 찾아왔더군요.
◇ 정관용> 직접 왔어요?
◆ 박종부> 네. 동생한테 문제가 있으니까...
◇ 정관용> 그냥 문제가 있다?
◆ 박종부> 문제가 좀 있으니까 같이 가자.
◇ 정관용> 다른 얘기 안 하고 그냥 문제가 있다고만 했어요?
◆ 박종부> 네. 부산에서 아버지도 와 계신다. 도착했더니 아버지가 계시고 쭉 거기 경관들, 경찰공무원들이 쭉 진을 치고 있더군요. 아버지께서 저한테 막내가 죽었다.
◇ 정관용> 아... 아버지를 통해 처음 들으신 거예요?
◆ 박종부> 죽었다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저한테 처음 하셨습니다. 막내가 죽었단다. 어찌하면 좋겠냐.
◇ 정관용>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라는 것을 당시 경찰의 누군가가 설명을 했을 것 아닙니까?
◆ 박종부> 했습니다.
◇ 정관용> 누가? 제일 높은 사람 누굴 만나셨습니까?
◆ 박종부> 제가 이제 와서 기억해 보면 아마도 박처원.
◇ 정관용> 치안감?
◆ 박종부> 네, 박처원이 제일 윗자리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처원이 있었던 것 같고 그 이외에 박원택, 유정방도 같이 있었던 것 같고 조한경, 조한경은 제가 분명히 기억이 납니다. 그 조한경이 저한테...
◇ 정관용> 고문에 가담한 수사관 가운데 한 명이죠?
◆ 박종부> 네, 그게 조한경이었고. 조한경이 작은 조사실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두 명의 경관이 그래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저한테 설명을 하는 거예요.
◇ 정관용> 현장에서?
◆ 박종부> 현장에 저를 저만한 테이블에 제가 이렇게 앉아 있고 경관 두 명이 제 앞에 마주 앉습니다. 앉더니만 바로 책상을 쾅 내려칩니다. 제가 깜짝 놀랐죠. 그러니까 ‘그것 보시라고 이렇게 동생이 깜짝 놀라더니만 갑자기 쓰러지더라, 그러면서 죽었다’ 그러는 거예요.
◇ 정관용> 그렇게 말한 사람이 바로 조한경?
◆ 박종부> 제 기억에는 아마도 그 사람이 조한경인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정작 그 물고문에 가담했던 사람이죠?
◆ 박종부> 조한경이 주범 중에 한 명이죠. 그런데 이제 반장이고 자기는 물고문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5명의 경관 중에 제일 윗사람입니다. 5명이 직접 가담한 경관 중에 제일 윗사람입니다.
◇ 정관용> 그런데 박종부 회장께는 탁 치니 그렇게 됐다, 그렇게 말을 했다는 거죠.
◆ 박종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실제 신문발표에 그렇게 났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러고 나서 마침 부검하러 온 의사가 물이 많았다, 뭐 했다 이런 게 밝혀지게 되면서 한 꺼풀씩 한 꺼풀씩 벗겨지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벗겨지게 되는 과정을 사실 일반 국민들이나 우리 박종부 회장이나 똑같은 입장이죠?
◆ 박종부> 같은 입장이었고.
◇ 정관용> 누가 미리 와서 알려준 것 하나도 없었죠?
◆ 박종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박종부> 네.
◇ 정관용> 그때 검사가 누구였고 뭐 이런 것도 의식하셨어요, 안 하셨어요?
◆ 박종부> 전혀 못했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 세월이 흘러 흘러가면서 이번에 대법관 지명되기 전에 평상시에 그 당시 검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어요? 정말 솔직히 한번 말해 보세요. 이번에 대법관 지명되니까 새삼 생각이 드신 겁니까? 아니면 원내 내가 그 당시 검사들한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게 있습니까?
◆ 박종부> 안상수 당시 검사, 지금 창원시장 하고 계시죠. 안상수 검사로 거꾸로 올라가야 될 것 같습니다마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실제 87년 이후로 안상수 검사와 특별하게 친분을 가지고 지냈다고 보다는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당시 동생 사건에 성실하게 수사에 임했던 검사로서 어느 정도 존경심이라기보다는 어떤 어느 정도 인정은 해 주는 그런 상황은 일정 기간 지속이 되었습니다.
◇ 정관용> 중간에 책도 내고?
◆ 박종부> 책도 내고. 그랬던 것이 2008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안상수 당시 검사가 그동안에 해왔던 이야기들 그리고 책을 통해서 그 양반이 밝히고자 했던 것들이 사실은 상당 부분 허황되고 진실하지 못했다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 이후에 그 당시 수사에 참석했던 검사들, 물론 박상옥 검사는 그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수사팀에 대한 불신은 상당히 극에 달했던 상황이었고요.
◇ 정관용>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는 결론을 이렇게 냈습니다. ‘당시 검찰이 직무를 유기했다, 유족에게 사과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지적을 했거든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 박종부> 네, 그랬습니다.
◇ 정관용> 후에 혹시 사과 받으셨나요?
◆ 박종부> 전혀 일언반구 없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2008년 그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오히려 좋아했군요?
◆ 박종부> 좋아했다기보다는...
◇ 정관용> 최선을 다했다?
◆ 박종부> 최선을 다했다고 저희들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은.
◇ 정관용> 그나마 의문사한 사람도 많은데 고문경관들을 그래도 5명이나 잡아내고 그 지휘부도 처벌하고 했으니 그나마 잘했다?
◆ 박종부> 네.
◇ 정관용> 했는데 2008년 이후로 생각이 바뀌셨다?
◆ 박종부> 그렇습니다.
◇ 정관용> 처음 이런 사람이 대법관 후보자가 됐다더라는 보도를 접하시고 처음에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 박종부> 일단은 무조건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부터 하면서 박상옥 그러니까 안상수 검사가 그렇게 허황된 거짓으로 일관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박상옥 검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죠. 그래서 검찰청에 계속 요청을 했었고 그나마 일부 공개된 수사기록, 공판기록으로써 도움으로써...
◇ 정관용> 검찰청에 요청한 자료 공개는 다 안 됐죠, 결국은?
◆ 박종부> 6200페이지 정도 달하는 기록이 있다고 다른 경로를 통해서 들었습니다만 검찰청에서 공개적으로 공개한 기록은 1000여 페이지 정도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또한 1000페이지 정도 저희가 다른 경로를 통해서 받은 것이 있습니다.
◇ 정관용>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보관되어 있는?
◆ 박종부>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 자료들을 이렇게 쭉 검토해 보시니까 아까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런 조사결과를 내기 전까지는 안상수 검사의 책도 보고 해서 나름 최선을 다 했구나라고 생각하셨던 당시 수사팀의 어떤 모습이 있잖아요. 그것하고 진실화해위가 직무를 유기했다라고 하는 판단을 할 때 어떤 들었던 정보들이 있고 이번에 수사기록을 또 직접 보시면서 그 당시에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실제 그 당시 수사팀이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간단히 정리해서 청취자분한테 얘기해 준다면?
◆ 박종부> 똑같은 사건을 가지고 세 차례에 걸쳐서 수사하게 됩니다.
◇ 정관용> 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세 번 다 수사팀에?
◆ 박종부> 아닙니다, 1, 2차.
◇ 정관용> 두 번만 있었죠, 세 번째는 없었죠?
◆ 박종부>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어쨌든 88년에 이루어진 세 번째 수사결과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까지.
◆ 박종부> 구속이 됐죠.
◇ 정관용> 구속이 된 그런 과정이었죠. 그 1, 2차에 참여했는데 지금 말씀을 쭉 들어보면 수사팀이 수사검사가 노력을 해서 뭘 밝혀내고 처벌한 것이라기보다는 떠밀려서한 그런 과정이네요.
◆ 박종부> 그렇습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정황을 설명드리지 않더라도 이 전체적인 정황만 보더라도 검찰에서 한 일은 전혀 없었던 것이죠. 그냥 당시 상황에 떠밀려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한 수사.
◇ 정관용> 두 가지 논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 막내검사였다, 막내검사가 무슨 결정권이 있고 지휘권이 있겠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실무적으로 하는 거지. 그러니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너무 그렇게 뭐라 할 일 아니다. 우선 이 논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박종부> 그렇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수사기록을 보면 안상수 당시 수사검사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게 다 드러납니다. 1차 수사 때는 두 명의 고문경관 중에 한 명인 강진규를 담당해서 수사합니다.
◇ 정관용> 직접 수사했죠.
◆ 박종부> 직접 수사하죠. 그리고 나중에 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는 세 명 중에서 황정웅 그리고 방근곤을 당시 1차 수사 때 이 박상옥 후보자가 참고인으로서 그 두 사람을 조사합니다.
◇ 정관용> 아... 그런데 그 참고인한테는 전혀 그런 질문이 없어요?
◆ 박종부> 아주 엉터리로 그러니까 질문이란 자체가 아주 형식적인...
◇ 정관용> 예를 들어서 무엇을 묻는 거예요, 그러면?
◆ 박종부> 그러니까 황정웅과 방근곤이 당시 박종철이 고문을 당하고 그런 상태가 되었을 그 시간에 당신네들은 어디 있었니, 그러면 옆방에 무슨 사람을 조사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옆 방에 모 사람한테 당신을 조사하던 이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렇게 있었던 게 맞니, 만약에 이 조사를 받던 사람은 그 시간을 그러면 고문실에서 조사받고 있었던 시간을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사람들이 말한 시간을 이 시간에 이렇게 됐다는데 맞니 하면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걸로 조사 끝입니다. 이런 식이에요. 그리고 고문을 했다는 것이 그러니까 조사실에 CCTV 회로가, CCTV가 그 당시에 설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CCTV가 설치되어 있고 그것을 같이 볼 수 있는 그것이 이제 반장실 내지는 윗선의 처장실에 있었다면 그 사람들이 조사를 하는 과정을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 정관용> 그렇죠.
◆ 박종부> 그런데 이 사람들의 변명은 아무 마침 그때 CCTV 회로가 고장이 나서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러면 그걸로 끝입니다. 아, 그래요? 그걸로 끝입니다. 이게 조사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수사기록을 보면 정말 상당히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솔직히.
◇ 정관용> 그러니까 막내라서 별일 할 수 없었다가 아니라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중요한 고문경관들을 직접 수사했고 그런데 그 수사 할 때 기록을 하니까 아무런 의지가 안 보이더라?
◆ 박종부>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것보다도 전에 2차 수사에서 2명이 아니라 5명으로 바뀌지 않습니까? 그 2차 수사를 하게 된 과정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 이후잖아요?
◆ 박종부>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 폭로 이전에 안상수 검사는 먼저 구속된 2명으로부터 얘기를 들었잖아요.
◆ 박종부> 그렇습니다.
◇ 정관용> 고문한 사람이 더 있다는 걸?
◆ 박종부> 네.
◇ 정관용> 박상옥 당시 검사도 알았겠죠?
◆ 박종부> 박상옥 당시 검사도 3월 초에 이야기를 들었다고 자기 입으로 이야기했습니다.
◇ 정관용> 이야기했죠. 이야기를 들었고 고문한 경관이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가 있기 전에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확실한 거죠?
◆ 박종부> 그렇습니다.
◇ 정관용>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말이 없죠?
◆ 박종부> 그 당시 검사팀에서는 그러니까 안상수 검사가 주도로 수사계획을 재촉했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런데 그 수사계획에 대한 결재가 나지 않고 오히려 윗선에서 소위 말한 관계관 대책회의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 다물라 하는 그런 일방적인 지시만 내려왔다는 것이죠.
◇ 정관용> 그 점입니다. 아까 제가 두 가지 논리가 있습니다 했을 때 첫 번째가 막내 검사다, 실무적인 일만 했으니 뭐 어떤 결정권이 있었겠느냐, 이 거고 두 번째가 그 당시의 시대 상황입니다. 이게 87년 6월항쟁도 있기 전이에요. 극악했던 군사적 독재정권의 시기, 그 시점에서 검찰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옷 벗을 각오 안 하고 과연 그걸 할 수 있었겠느냐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박종부> 그러면 거꾸로 이런 질문을 드리면 어떨까요? 그 당시에 자기의 극한 상황까지 갈 것으로 각오하면서 이런 진실을 밝혀냈던 이부영 당시 전 의원 그리고 김승훈 신부님, 그 주변의 많은 분들, 교도관도 두 분이 포함되어 있었죠. 그런 분들은 검찰은 자기 옷만 벗으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분들은 그야말로 자기 생명을 담보로 하고 그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그런 분들과 너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죠.
◇ 정관용> 이제 청문회를 한답니다.
◆ 박종부> 네.
◇ 정관용> 박종부 회장께서 만약 그 자리에 가신다면 박상옥 후보자한테 제일 먼저 뭘 묻고 싶으세요?
◆ 박종부>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만... (웃음) 추가로 두 명 이외에 세 명이 더 있다는 그 상황을 언제 인지했는지 그것은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
◇ 정관용> 3월 초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게 진짜인지?
◆ 박종부> 그게 진짜가 아니거든요, 사실은. 수사기록을 보아도 그렇고 공판기록을 보아도 그렇게 최소한 조한경, 강진규 외에 최소한 한 명이 더 있다는 것을 이미 이름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공판기록에 나와요. 그런데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거든요, 지금. 방근곤이라고 그 공판기록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체를 부정하고 안상수 검사는 2월 27일에 알게 되었다고 그러고 안상수 검사로부터 3월 1일인지 3월 2일에 전해들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이부영 전 의원께서 교도소 안에서 밖으로 띄운 그 비둘기 서신에 보면 그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에 보면 2월 27일, 날짜까지 정확하게 적혀 있습니다. 2월 27일에 안상수 검사가 조한경과 강진규 두 명을 면담합니다. 그런데 조한경과 강진규 두 명으로부터 그 내용을 전해듣습니다. 전해듣는데 안상수 검사가 그 사람들에게 했던 이야기가 무엇이 더 좋은 길인지 당신들이 잘 판단해야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는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 정관용> 그걸 제일 먼저 묻고 싶다?
◆ 박종부>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묻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한테 뭘 말하고 싶으십니까?
◆ 박종부> 당시 수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은 이미 많이 밝혀져 있습니다. 당시에 수사를 제대로 못했던 것과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것에 대해서 국민에게 사과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언론에서 대법관의 장기 공백상태를 우려합니다만 그야말로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대법관의 장기 공백상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사퇴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네, 청문회에서 우리 박종부 회장께서 갖고 계신 그 궁금함들이 잘 드러날지 또 박상옥 후보자가 뭐라고 말을 할지 우선 같이 한번 들어보죠.
◆ 박종부> 네.
◇ 정관용> 본인이 사퇴하지 않나 들어봐야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 박종부> 네, 알겠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박종부>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관용> 박종철 열사의 친형, 전국민중민족유가족협의회 박종부 청년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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