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기 전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김두우 전 홍보수석님께
수석님, 오늘 저는 2만 8,000원을 주고 '대통령의 시간'을 구매했습니다. 회고록이 나오기도 전에 워낙 언론들이 앞다퉈 책 내용을 전하길래 이미 저는 직관적으로 '이 책은 반드시 사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던 게 사실입니다.
남들은 다 알려진 얘기 굳이 살 필요가 있겠냐고 말렸지만 '별책 부록'까지 준다는 말을 듣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해 구매자 행렬에 당당히 몸을 실었습니다. 사실 부록이 없어도 사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라는 부제의 별책부록은 기대 밖으로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읽어보니 수석님 말씀대로 대통령과 참모들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를 독자에게 주셔서 정말 유익했습니다. 참모들 중 "오늘 대통령께 깨졌다"고 하면, 다른 참모들이 "내 사람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니 축하할 일이다"라며 인사를 건넸다면서요. 수직적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수평적인 인간관계, 제가 늘 기대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별책의 부제라고 보니 'MB정부 봉숭아학당 참모회의'라고 달으셨네요. "언론은 우리를 '봉숭아학당'이라 비꼬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내부에는 활달한 토론 문화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지요. 활달한 토론 문화를 봉숭아학당이라고 폄하하는 그런 언론은 반드시 문 닫게 해야 합니다. 굳이 왜 부제를 이렇게 겸손하게 다셨을까. 저는 존경심으로 책장을 넘겼습니다.
◇ 그런데 '서머타임제 격론'이 벌어졌네요2009년 7월 28일 국무회의에 '서머타임제 시행 추진 방안'이 안건으로 올라왔다면서요. 책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국무회의 내용을 아래에 잠시 짧게 옮겨보겠습니다. 아~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봉숭아학당'이었습니다. 부제의 깊은 의미를 지금에서야 깨달은거죠. 대한민국의 중심은 동경 127도인데 현재 일본을 관통하고 있는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와는 약 30분 정도 차이가 나서 우리나라에서 '서머타임' 얘기하는 건 어찌됐든 이해가 되는데 이걸 일본이 안하니까 하면 안 된다는 논리, 대체 어디 대목에서 웃으라는 말입니까.
서머타임제 격론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설명 잘 들었습니다. 근데 이게 서머타임 실시를 전제로 한 얘기예요. 아니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란 얘기예요. 난 강하게 반대합니다. 권 실장도 반대라고 들었는데…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 ……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 서머타임제는 노동시간의 연장입니다. 그리고 대낮에 퇴근하면 식당과 술집들이 장사가 안돼요. 이게 말이 됩니까.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 윤 장관님, 오해마세요. 서머타임제를 실시한다고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게 아닙니다. 똑같이 퇴근이 오후 6시예요.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 성급하게 하지 말고 한 달 정도 연구를 더 해서 검토합시다.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 사실 저도 반대입니다. 대통령의 이미지가 근면 성실한 건 알겠는데 강제로 서머타임을 밀어붙이면 '한 시간 일을 더 시키려 한다'는 정치적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 : 국제사회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같은 시간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금융 거래 쪽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일본이 서머타임을 도입하는가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 일본이 하는 것을 기다리자고요? 일본은 정책적 의지도 없고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정치세력도 없어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 일본도 결국 무산이 됐는데 반대 측 논리를 보니 2조엔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 : 서마타임으로 생체 리듬을 깨서 심장 발작 가능성이 커진다느니 하는 식의 괴담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 술을 먹어야 영업이 되는 문화는 1970~80년대부터 쭉 이어져 왔어요. 나는 이제는 그런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서머타임제를 실시해야한다는 입장이지만 성급히 하지 말고 천천히 추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
◇ 'MB 날씨'로 이제 신격화까지 하십니까
수석님. 2010년 6월, 한창 진행 중이었던 '4대강 살리기 공사'가 자칫 우기와 겹쳐 피해가 있을까봐 전전긍긍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일부 참모들이 "날씨는 대통령 편"이라면서 낙관론을 펴셨다고 하던데요.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니 이건 진짜 웃자고 하신 말씀이시죠? 거북이 등짝 갈라지는 걸로 나라의 운명을 점쳤던 '신정국가' 얘기 하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기자생활 25년 해서 배우신 게 고작 '용비어천가'라는 말씀은 아니신거죠. 참모들이 대통령을 신격화 한 에피소드는 개콘 '봉숭아학당' 아이템 그 이상이라고 단언하고도 남습니다.
MB 날씨 |
2003년 5월 25일 하이서울 페스티벌때 새벽에는 비가 내렸지만 오전 9시 거짓말 같이 비가 그쳤다.
2003년 7월 1일 청계천 착공식 때도 비가 온다고 했지만 행사를 모두 마치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19일 울산 석유비축기지 준공식 때 비가 왔지만 대통령이 행사장에 도착하자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졌다.
2010년 5월 30일 제주에서 한일중 정상회의가 있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씨는 정상회의 개막과 함께 바람도 멈추고 화창하게 개었다.
2016년 6월 18일 경남 거제시에서 있었던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준공식 때도 비가 내렸지만 대통령 도착하기 5분 전 비가 그치고 화창해졌다.
2010년 11월 6월 18일 서울 G20 정상회의 때는 황사가 심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행사 전날 거짓말처럼 황사가 그쳤다. |
수석님, 800페이지 가까운 본서에다 이렇게 재미까지 더해진 부록까지 내시느라 얼마나 욕보셨습니까. 아직 날이 춥습니다. 몸 건강하시구요. 저는 그냥 박근혜 정부에 대해 쓰시겠다던 '대통령의 시간 2권' 출간 소식을 오매불망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