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악의적인 차명거래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하겠다는 내용의 금융실명법 개정안이 오는 29일 본격시행에 들어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긴급명령 형태로 전격 시행에 들어간 지 21년 만에 금융실명제가 제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번에 시행되는 금융실명법은 악의적 목적의 차명거래는 명의를 빌린 사람, 빌려준 사람, 거래를 알선중개한 금융사 직원들에 대해 형사처벌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존 금융실명법은 '금융회사 등은 거래자의 실지명의로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는 조항만 있었을 뿐, 차명거래의 당사자와 명의 대여자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처벌조항도 금융거래의 비밀보장과 관련한 행위에만 적용됐을 뿐 차명거래에 대해서는 처벌조항 자체가 없었다. 이에 따라 거액의 불법 차명거래가 적발돼도 금융실명법이 아닌 조세범 처벌법 등으로 형사처벌이 이뤄졌다.
하지만 새로 개정된 금융실명법은 불법적 차명거래를 적시하고 그 소유주, 명의 대여자, 금융기관 직원에 대한 처벌조항도 신설했다.
새 금융실명법의 핵심은 '탈세 등 악의적 목적의 차명거래는 형사처벌하되 불법목적이 아닌 선의의 차명거래는 현재와 같이 허용한다'는 점이다.
악의적 목적의 차명거래란 불법재산의 은닉, 자금세탁 행위, 공중협박자금조달 행위, 강제집행 면탈 등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금융거래를 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부모가 자녀명의로 면세한도 이상의 예금을 들어주거나 채무를 갚지 않으려고 아내나 친인척 명의로 재산을 은닉하는 행위 등은 모두 탈세를 위한 차명거래인만큼 악의적 목적의 차명거래로 규정, 형사처벌 대상이다. 징역 5년 이하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한 생계형 저축 등 세금우대 금융상품의 가입한도를 피하기 위해 차명거래를 하는 행위도 불법 차명거래에 해당한다.
반면 선의의 차명거래는 현행처럼 허용되는데, ▲ 계·부녀회·동창회 등 친목모임의 회비를 관리하기 위해 대표자(회장, 총무, 간사 등)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는 행위 ▲ 문중, 교회 등 임의단체 금융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대표자(회장, 총무, 간사 등)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는 행위 ▲ 미성년 자녀의 금융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부모명의 계좌에 예금하는 행위 등은 선의의 차명거래로 규정된다.
형사처벌 조항이 도입된 개정 금융실명법 시행을 앞두고 각 은행에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하나은행 PB사업부 상속증여센터 방효석 변호사는 "문의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며 "자녀 명의의 예금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가장 많다"고 전했다.
부모가 자녀명의로 예금을 들 경우도 역시 차명거래로서, 증여세 감면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증여세 포탈 목적의 악의적 차명거래가 돼 처벌을 받게 된다. 증여세 감면범위(10년간 합산금액)는 배우자는 6억 원까지, 성년 자녀는 5,000만 원, 미성년 자녀 2,000만 원, 부모 3,000만 원, 기타 친족은 500만 원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성년 자녀 명의로 예금을 8,000만 원 들어 놓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 처벌을 받지 않으려면 5,000만 원까지만 자녀명의로 예금을 들어놓고 나머지 3,000만 원은 본인 명의로 예금을 돌려놓던가, 기타 금융상품에 가입해야 한다. 아니면 아예 증여세를 납부함으로써 자녀에게 8,000만 원 전체를 합법적으로 증여하는 것도 차명거래를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금융거래에서는 선의의 금융거래와 악의의 금융거래를 무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다. 방 변호사는 "(개정법에)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며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부모가 학자금 명목으로 미성년 자녀이름으로 3,000~4,000만 원을 예금해 놓을 경우 이는 본질적으로 증여로서, 차명거래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번에 시행되는 법이 일반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조세포탈액이 적어도 5억 원은 돼야 처벌을 받는다"며 "증여세 범위를 약간 넘어서는 차명거래는 적발돼도 가산세를 낼 뿐이지 형사처벌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