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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죽음의 死神이 덮친 마을…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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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불산가스 누출 현장을 가다①] 재앙이 시작됐다

지난달 27일 순도 99.8%의 불산가스가 바람을 타고 공장 옆 마을로 흘러들었다. 20톤에 달하는 양이었다. 사고 이후 5명이 사망하고 공장도 잠정 폐쇄됐지만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연기를 마신 소방관, 경찰과 마을 주민들은 사건 발생 열흘이 넘도록 원인 모를 발진과 두통,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당국의 대처는 안이하다. 하루 만에 주민 대피령을 해제해놓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CBS는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이후 공장과 그 주변 마을에 드리워진 '재앙의 그림자'와 사지(死地)에 방치된 주민들, 공장 근로자들의 실태를 심층 취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재앙이 시작됐다
2. 감춰진 진실
3. 사지(死地)에서의 하루하루
4. 예견된 인재…대안은?


포도농가

 

산을 넘어 다가오는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10번째 박스에 포도를 다 채울 무렵이었다.

포도 비닐하우스에서 200m 떨어진 구미 4산업단지에서 펑 소리가 나더니 '요상한 연기'가 스멀스멀 마을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추석을 앞두고 아들, 딸과 함께 출하할 포도를 따던 마을 주민 김 모(63,여) 씨는 언덕을 넘어오는 허연 기둥이 단순한 화재 연기가 아님을 직감했다.

"저게 뭐꼬. 야야 불이 났는데 왜 저런 허연 연기가 일어나노?"

2012년 9월 27일 오후 3시 43분 구미 4공단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불산가스 누출. 재앙의 시작이었다.



◈ 그대로 말라버린 농작물, 과실수들…살아남은 건 사람뿐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공장을 삼키고 마을을 뒤덮은 불산 연기는 죽음의 사신처럼 마을의 푸른 생명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나뭇잎은 핏빛으로 변했고 수확을 앞둔 멜론과 포도는 제초제를 뿌린 것처럼 순식간에 말라 비틀어졌다.

오로지 사람만이 매캐한 냄새 속에서 숨죽인 채 재앙을 견뎌내고 있었다.

566세대 1178명이 모여 사는 구미시 봉산리, 임천리 마을에는 7일 현재 벼 76ha, 포도 27ha 등 모두 212ha의 피해를 봤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피해는 숫자 그 이상이다. 노인들은 사고 발생 이후 9일 만에 지급된 방진마스크를 입에 매달고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전쟁이 따로 없다카이. 그날 불차 오고 이카길래 나는 그냥 불 끄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카고 좀 있다가 펑 하디만 연기가 오는기야."

순식간에 쑥대밭이 된 마을 상황이 못마땅한 듯 주민 정 모(70,여) 씨는 혀를 끌끌 찼다. 정 씨는 말을 할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봉산리

 

◈ 야생 쥐, 새도 죽어나가…전문가들 "상황 생각보다 심각"

발진, 두통, 눈 따가움 등을 호소하는 주민들은 결국 지난 6일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대피령이 해제된 지 9일만의 일이다.

"평소 먹고 있는 약과 옷가지를 챙겨서 버스에 오르라"는 마을 이장의 단호한 안내멘트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정부를 성토하던 주민 박 모(63) 씨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내는 여기 더 몬있는다 속도 안 좋고 머리도 아프고. 봐라, 몸에 두들두들한 것도 생깃다. 아이고 무시라."

동네 곳곳에서 들쥐와 새가 죽은 채 발견된 것도 주민들의 엑소더스에 불을 붙였다.

지난 4일 임천리 주민 박 모(53) 씨가 집 근처 야산에서 죽어있는 들쥐 2마리와 박새 1마리를 발견했다.

"내 여기 평생 살면서 죽어 있는 쥐는 처음 봤어요. 우리 집이 고양이를 키와 가 쥐는 얼씬도 몬하는데 차 세와놓은 데 앞에 딱 죽어 있는기라. 아마도 연기 났을 때 밖에서 마시고 와 여기서 죽은 거 같애요."

쥐새

 

임천리에서 죽은 채 발견된 박새와 집쥐 1마리에 대한 진상조사를 시작한 경북대 수의학과 김길수 교수는 야생 동물의 죽음과 불산과의 연관성을 조심스럽게 의심하고 있다.

야생쥐뿐 아니라 조류까지 죽은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라는 것.

"예상하기 싫지만 이런 현상이 확대된다면 사람에게까지 심각한 영향이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이 인지를 못 하고 불산 가스에 접촉이 됐다가 나온 사고라면 상황이 심각한거죠."

대피령이 발효됐다 하루 만에 해제된 이후 급기야 주민들의 자발적인 엑소더스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관계 당국은 "조사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고 이후 매일 마을을 찾아 주민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해온 녹색연합 이재혁 위원장은 "괜찮다"를 연발하는 공무원들의 안이한 인식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자각증상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처음엔 눈이나 목이 따갑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점점 자각증세가 없어지는 현상이 나타나요. 불산의 특징 중 하나가 신경이 마비되는 거에요. 그래서 못 느끼는 겁니다. 마을 주민들이 당장 피해 지역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영상제작]= 노컷TV 민구홍 기자(www.nocutnews.co.kr/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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