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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꿈이었다. 멧돼지에게 친구가 죽던 날의 기억. 이장 김재호(58)씨의 이불이 축축이 젖어있었다.
3개월 전 이장 김씨는 멧돼지에게 40년지기 친구를 잃었다.
지난 8월 29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죽전마을 주민 황모(67)씨의 밭에 수컷 멧돼지가 나타난 시각은 오후 4시 30분쯤.
올무에 걸려 버둥거리던 길이 1m70cm 무게 200kg의 거대 멧돼지는 자신을 잡으려던 수렵협회 회원 임모(58)씨의 다리와 목을 물었다. 10cm가 넘는 멧돼지의 송곳니가 임씨의 목과 다리를 관통했다.
경찰이 쏜 총알 세 발을 맞은 후 멧돼지는 사살됐고 멧돼지에게 7m 가량 끌려간 임씨는 결국 숨졌다.
벌써 세달이 지났지만 죽전마을에는 아직도 멧돼지 공포가 짙게 드러워져 있다.
이장 김씨는 종종 친구가 죽은 그 날의 꿈을 꾼다. 밭일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시골 사람 대부분 80,90살입니다. 촌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어 산에 가서 멧돼지를 잡습니까."
김 씨는 "멧돼지를 막으려고 온갖 행동을 다 한다"며 "멧돼지가 그물에 한 번 걸리면 오지 않는다는 얘기에 바다에 있는 낚시 그물을 밭에 둘러치기도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야생 멧돼지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개체수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농촌 지역은 물론 도심 주택가까지 내려온 멧돼지에 사람이 다치는 피해도 발생하는 상황이다.
13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지난 2009년 121억에서 지난해 131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중 멧돼지로 인한 피해는 2009년 53억에서 지난해 63억으로 10억원 가량 늘어났다.
도심 출몰로 인한 인명 피해도 증가추세다.
2008년 15건에 달하던 서울시내 멧돼지 출현 신고 건수는 지난해 10월 67건으로 급증했다.
지난달 7일 충북 제천시 의림동 주택가에서 출근하던 시민이 멧돼지에게 왼쪽 다리는 물리는가 하면 지난 6일에는 대전 주택가에 야생 멧돼지가 출몰해 주민 2명이 부상을 당했다.
멧돼지가 달리는 새마을호 열차에 뛰어들거나 서울 올림픽대로에 나타나 퇴근길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도심 출현 멧돼지는 외로운 수컷? 정부 '포획틀 설치' 나섰지만...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짝짓기 경쟁에서 밀려난 수컷 멧돼지가 행동 반경을 넓히면서 민가로 내려온다'고 분석하고 있다.
영역에서 쫓겨난 수컷이 먹을 것을 찾아 내려오면서 도심에까지 출몰한다는 것이다.
북한산국립공원 최병기 자원보존과장은 "힘센 수컷이 나타날 경우 힘에 밀린 수컷은 다른 지역으로 내려오거나 이동해야 한다"며 "도심에 내려오는 멧돼지도 이와 같은 이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잦아지면서 정부도 '멧돼지 잡기'에 나섰다.
지난 6일 환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주요 지점에 '멧돼지 포획틀'을 설치해 도심 출현 멧돼지 피해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총기 사용이 어려운 특별시와 광역시 등 도심 주변에 포획틀을 설치한 뒤 먹이로 유인해 멧돼지를 잡는다는 것.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달 관련분야 전문가 등이 모여 긴급대책회의를 연 결과 포획틀 설치가 멧돼지를 잡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의견이 모아졌다"며 "경찰, 소방협회와 함께 멧돼지 기동대책반을 상시 운영해 포획 예방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포획틀 설치는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한국야생동식물협의회 최경철 차장은 "예민한 멧돼지 특성상 쇠로 된 포획틀 안에 결코 자발적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며 "멧돼지 습성을 따져볼 때 포획틀 설치는 효과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차장은 "멧돼지를 들어오게 하려면 유인책이 있어야 하는데 지자체 공무원이 매일 산속에 들어가 음식물을 갖다놓을 수 있냐"며 "이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못박았다.
멧돼지 출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 지역 주민은 "멧돼지에게 다치거나 밭을 망친 사람이 수두룩한데 정부는 너무 무심한 것 같다"며 "개체수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