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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잘 쏘고 말 잘 탔던 안중근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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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해성씨 인터뷰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0년 10월 26일 (화)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소설가 서해성


안중근

 



▶정관용>네. 먼저 오늘로 101주년을 맞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그 의미, 또 인간 안중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오늘 모신 분은 소설가 서해성씨, 전화로 모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서해성>네. 안녕하세요.

▶정관용>안중근 의사가 좀 잘못 알려져 있다. 우리 서해성씨는 그렇게 주장하고 계시죠?

▷서해성>네. 잘못 알려져 있다기보다 조금 왜곡되었다. 왜 그러냐 하면 사실 안중근이라는 사람이 우리가 작년 100주년 때만 해도 안중근이 굉장히 거룩하고 위대한 사람, 이렇게들 흔히 얘기하거든요. 그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분이 굉장히 사상가이신 것처럼.

▶정관용>사상가가 아닌가요, 그럼?

▷서해성>그렇게들 묘사를 하시는데 사실 그런 건 좀 지나친 과장이거든요. 그게 주로 이제 안중근을 기록한 사람들이 주로 문인들이죠. 비행동가들이죠.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사실이 안중근이 진짜 했던 것은 행동이거든요. 우리 역사에서 안중근이 남게 된 이유가 무엇이죠? 혼자 앉아서 글 쓰고 말하고 그런 게 아니라 행동했기 때문이거든요, 사실은.

▶정관용>당연하죠.

▷서해성>그 대목인데 자꾸 이제 안중근의 다른 대목들을 강조하는 거죠. 안중근의 성장기만 하더라도 안중근은 주먹을 잘 쓰는 사람이었어요, 사실은요. 그리고 술도 잘 마셨고 말타기도 잘했고. 요즘 말로는 뭔가요. 스피드족이고 사격장 다니고 카페 다니는 청년이었다는 거죠.

▶정관용>잘 놀던...

▷서해성>예.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사람인데 이제 그런 사람이 어느 시기를 맞이했을 때 자기가 갖고 있는 그 재주들을 가장 잘 들어맞게 쓴 거죠. 그 시대에 이제 말 잘 타고 또 술 잘 마셨다는 얘기는 사람을 잘 사귀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다른 한편으로 얘기하면. 그리고 또 총도 잘 쏘고. 만약에 지금 총 잘 쏘는 사람 별로 쓸모없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 총을 잘 쐈기 때문에...

▶정관용>총 정말 잘 쐈어요?

▷서해성>총을 정말 잘 쐈습니다. 그 당시에 1909년도 이토 히로부미 총을 쏠 때 벨기에제 총이거든요. 브라우닝이라고 하는 세계적으로 총을 잘 만드는 브라우닝이라는 사람이 만든 벨기에 퍼블릭 내셔널이라고 하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에서 만든 총입니다. 그 당시에 세계 최첨단의 대개 권총은 6혈포라고 그러는데 이 총은 6혈포가 아니라 7혈포였습니다. 그러니까 7연발이라는 얘기입니다. 7연발에 한발을 약실에 장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8발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두발씩 연속으로 올라오는, 스프링 장치가 있는 그런 총이었습니다. 당대 최고로 좋은 총에 당대 최고의 명사수가 그 총을 들었기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가 연속적으로 세 발을 발사했는데 세 발이 다 그 사람에게 명중되었던 거죠.

▶정관용>하긴 권총으로 정확히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서해성>정말 총을 잘 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 드린 이유는 ‘아, 총을 잘 쐈으니 우리가 총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이 말하는 게 아니고요. 그 사람은 몸으로 세계를 증명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정관용>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주먹을 잘 썼다. 술 잘 마셨다. 말타기도 잘했다. 총도 잘 쐈다. 이런 게 다 기록에 남아 있습니까?

▷서해성>기록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정관용>주로 어떤 자료들이에요?

▷서해성>안응칠 차서전이라고 그래서 당신이 이제 옥에서 쓰신 그 기록으로 봐도 그렇고 그걸 증언하는 분들의 증언도 그렇고 명백하게 그런 것들을 자주 잘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정관용>거룩한 이미지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건가요?

▷서해성>거룩한 이미지... 우리가 생각하는 관점하고는 다르다. 왜냐면 이분을 기록한 사람들이 주로 문인 숭상주의적으로 기록하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은요.

▶정관용>왜요?

▷서해성> 왜 그러냐면 주로 기록한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인간들입니다. 하나는 행동하고 싶었으나 행동하지 못한 인간들이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 문을 숭상하는, 먹물의 향기에 사는 사람들, 우리 같은 지식인들이죠.

▶정관용>서해성씨도 소설가인데..

▷서해성>그렇죠. 우리가 바로 그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자꾸 문학의 빛깔을 자꾸 칠해주려고 사실 그런 게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깐...

▶정관용>사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이런 거는 상당히 유명한 거 아닙니까?

▷서해성>이런 동양평화론이 사실 그렇게 훌륭한 저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면 그건 사실 후쿠자오 유키치가 얘기하는 동양평화론에 상당 부분 내용이 있는 거거든요. 이 내용을 처음 쓴 것도 아니고요, 안중근 의사께서. 동양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중국을 대치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훌륭했다기보다는 사실 안중근이 진짜 훌륭한 건 안중근이 많은 오류가 있었거든요. 대표적인 오류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서해성>가령 국내에 진공작전을 해서 들어왔어요, 안중근이요. 그 당시 많은 젊은이들 이끌고 들어왔는데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안중근이 너무 너무 그릇이 큰 사람이어서 일본 순사를 잡았는데 순사 뺨을 때리고 일본말로 혼을 내주고 “돌아가라.” 그랬어요. “다시 돌아오지 마라.” 그리고. 한국, 당시는 대한제국이죠. “조선을 침략하면 되겠느냐.” 그러니까 포로들이 당연히 안 그러겠다고 그러겠죠. 그런데 그 사람들 그냥 갔겠습니까. 다시 큰 부대에 신고해가지고 다시 토벌을 시작했죠. 수많은 자기 동료들이 죽었죠. 그러니까 안중근은 보통사람하고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하고는 굉장히 다르고 아주 그릇이 큰 사람이었죠. 일본 사람도 그런 거에 응할 줄 알았죠, 사실은.

▶정관용>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실수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서해성>그렇죠. 돌이켜보면 실수인거죠. 그런데 제 얘기는 이런 겁니다. 대개 사람들은 보면 그런 걸 정당화하려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안중근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명백하게 갚아야겠다. 그럼 뭡니까. 바로 자기가 생각했던 그 동안... 사실 안중근 1905년 을사년이, 우리로서는 을사보호조약인데 러일전쟁에서 사실 일본을 지지했거든요. 그 당시에 안중근만 지지한 게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을 지지했어요. 그 이유가 뭐였냐면 러일전쟁이 끝나면 조선이 독립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정관용>그렇게 생각한 부분들이 많죠.

▷서해성>그러니까 그것이 지금도 이렇게 보면 오류란 말입니다, 그것이. 그런데 그런 오류가 ‘아, 나의 오류였구나.’ 생각했을 때 인간이 오류를 인정하고 인정해야 오류를 넘어설 수 있지 않습니까.

▶정관용>그러면서...

▷서해성>그게 바로 이등박문을 죽인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는 거죠. 나의 오류를.

▶정관용>과거 자기가 잘못 판단했던 것에 대한 반성.

▷서해성>그렇죠. ‘이런 건데 내가 속았구나.’ 그랬으니까 정말 위대한 사람이죠. 이런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우리 위인전기에는 어렸을 때부터 안중근 의사 어렸을 때부터 읽을 전기, 농담해서 말씀드리면 돌 하나 던지면 솔방울 두 개 떨어지고 새 죽고. 예를 들면 이런 얘기들로 이루어졌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는 안중근이 될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될 수 없도록 만드는 거죠.

▶정관용>모든 걸 다 잘했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얘기로군요. 직업은 뭐였어요?

▷서해성>안중근요? 직업은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셨죠, 사실은요. 전전했다는 표현이 나쁘게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학교도 세우시고 이런 것들만 주로 알려져 있는데요. 당연히 좋은 일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석탄장수도 하셨고요.

▶정관용>석탄장수.

▷서해성>사실 굉장히 모던한 직업이죠. 그러니까 안중근 의사가 물정을 몰랐다. 이렇게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한 때는 도박기계도 돌리셨어요.

▶정관용>도박기계요?

▷서해성>이렇게 추첨하는 추첨식 도박기계, 만인계라고 하는 도박기계도 돌렸는데. 그게 기계가 고장이 나가지고. 그 당시에 그걸 도박기계라고 별로 생각을 안 한 거죠, 사실. 돈 버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셨겠죠, 그 당시에. 그 기계가 고장이 나자 혼쭐이 났습니다. 왜냐면 기계가 고장 나면 뭐가 되겠습니까. 사기가 됩니까, 안 됩니까.

▶정관용>그 도박기계라는 게 예를 들어서 어떤 겁니까?

▷서해성>추첨제.

▶정관용>빠찡고 이런 거 비슷한 겁니까? ▷서해성>아니요. 그 당시 그렇게 발달한 기계는 없었죠. 통 속에 있는 공 같은 게 돌아가는데 그걸 집어내서 맞추는 건데 그런 걸 하는데 그 기계가 고장이 나면 오해 받겠습니까, 안 받겠습니까.

▶정관용>오해를 받죠.

▷서해성>오해 받죠. 그래서 목숨이 잃을 뻔한 적도 있었어요.

▶정관용>길거리에서 도박기계 돌리는 것으로 직업을 했던 적도 있다. ▷서해성>그렇죠. 다양한 형태의 경험들을 하면서 그 양반이 세상에 대한 물정이 트이신 거고 그런 것들이 결국은 이등박문을 처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을 때 담대하고 그리고 주저함이 없고 그럴 수 있었던 중요한 근거였다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까 성장기 때 가졌던 그런 씩씩함 그리고 그런 기상 그리고 지식에 대한 관심, 세상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최종적으로, 특히 무엇보다도 자신의 오류를 뛰어 넘으려고 했던 그 점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으로 완성했다. 그런데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문숭상주의자들에 의해서 안중근이 그렇게 기록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실은 친일파에 의해서 기록된 안중근입니다.

▶정관용>그 게요?

▷서해성>왜냐면 그 뒤에 한국이 해방된 뒤 주로 기록한 사람들 친일문학을 했던 사람들인데요. 그 사람들로서는 안중근이 다시 나오는 게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안 좋죠. 왜 그러냐면 바로 자기들 테러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중근이 테러리스트여서 품격을 낮춰서 말씀드리려는 게 전혀 아닙니다.

▶정관용>그래서 사상가, 지식인, 그런 쪽의 이미지로만.

▷서해성>자꾸 그런 쪽으로 가는 측면이 있는 거죠. 행동하는 자, 행동하는 자가 한반도, 해방이후에 자꾸 없어져 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그전에 사실 이런 분들 다 이봉창, 윤봉길, 안중근, 이분들이 행동파이지 그분들이 사상을 개척하신 분들이 아니잖아요, 사실은요. 자꾸 그런데 그분들을 사상을 갖다 붙이는 이유는 사실 공부 안 하면 사상도 못한다. 이렇게 말하려는 의도가 내면에 상당 부분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정관용>오늘이 의거 101주년이고 올해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되는 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말씀하신 핵심은 안중근 의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른바 행동하는 삶, 이렇게 기려야 한다.

▷서해성>예. 지금까지 했던 부분을 조금 좀 더 적극적으로 안중근 의사의 삶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실 청소년기에 조금 성장할 때 좀 오류 있는 청년들이라도 안중근 의사처럼 얼마든지 될 수 있으니 좀 너그럽게 생각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도 동시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정관용>우리 위인전 전체적으로 다시 뜯어봐야 될 거 같아요. 오늘 서해성씨 말씀 들어보니까.

▷서해성>우리 위인들은 우리가 도저히 따라가서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죠.

▶정관용>소설가 서해성씨,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 새로운 해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대목을 잘 지적을 해주셨네요. 여기까지 말씀 듣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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