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주토피아 2'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잖아." 최근 개봉한 영화 '주토피아2'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는 경쾌하게 흘러갔다. 자막은 숱하게 바뀌었다. 이 문장은 유독 남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악당과 맞선다. 스스로 선택한 위험이었다.
현실의 일터는 다르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정의를 수호하려고 출근하지 않는다. 월급을 받는다. 맡은 일을 한다. 하루를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자아를 실현하는 도구다.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일하다 죽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지난 2020년 10월, 쿠팡 대구 물류센터. 심야 노동을 마친 장덕준씨는 집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5년이 흘렀다. 죽음은 과거형이 되지 못했다. 최근 제주에서 쿠팡 배송 업무를 하던 오승용씨가 또다시 숨졌다. 이름이 달라졌다. 지역도 바뀌었다. 과로와 방치라는 풍경은 그대로다.
반복은 개인의 불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2020년 이후 쿠팡에서 하청을 포함해 노동자 3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산재 신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신청 자체가 방해됐다는 증언도 있다. 기업의 공식 통계와는 별개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위험의 크기를 보여준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쿠팡을 상대로 한 연석 청문회가 열렸다. 가혹한 야간 노동이 다뤄졌다. 산재 처리 과정에서의 비협조가 공론화됐다. 은폐 정황이 담긴 내부 자료도 공개됐다. 기업의 책임 회피 문제가 정면으로 논의됐다. 한 개인의 불운이나 우연으로 치부되던 사망들이 비로소 구조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쿠팡 배송·물류 현장은 장시간 노동과 속도 압박이 일상화된 구조다. 하루 평균 200~300건의 배송을 소화한다. 10시간 이상 연속 근무가 반복된다. 휴게 시간은 있지만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어렵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다는 압박을 받는다. 속도가 느려지면 물량이 줄어든다. 물량이 줄면 수입이 감소한다. 선택지는 없다. 스마트폰 클릭 몇 번이면 새벽 배송이 도착한다. 그 편리함은 누군가의 밤을 전제로 작동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류영주 기자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청문회 이후 말했다. "고쳐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쳐 쓸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사고가 잦다는 지적이 아니다. 비극을 멈추기 위한 점검과 개선의 의지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쿠팡의 대응 방식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회와 정부,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가 이어질 때마다 대규모 대관 조직을 통해 압박을 관리해 왔다. 개별 사안은 해명으로 쪼갰다. 구조적 문제 제기는 법률 검토와 소송의 영역으로 밀어냈다. 현장의 위험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보다 관리의 대상이 됐다.
장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CBS 라디오 '주말엔 CBS'에 출연해 이런 현실을 '쿠팡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법과 감시의 망이 제대로 닿지 않는 권력이 일터를 지배한다는 의미다. 쿠팡에서 노동자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배송을 위한 '부품'이자 '업무 단위'로 취급됐다.
고용노동부는 대규모 합동 수사와 감독에 착수했다. 위장 도급 여부를 조사한다. 산재 신청 방해 정황을 규명한다. 안전 조치 미비를 점검한다. 특정 기업을 징벌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는 관행을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박종민 기자
스스로 위험을 선택하는 것과 피할 수 없는 위험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는 것은 다르다. 영화 속 영웅은 위험을 알고 뛰어든다. 현실의 노동자에게는 퇴로가 없다. 빨간 뚜껑으로 하루를 달래며 버틸 뿐이다. 속도와 효율이 절대 경쟁력이 된 구조에서 위험은 관리되지 않는다. 가장 약한 곳으로 흘러내린다. 끝에서 사람이 죽는다.
'어쩔 수 없는 사고'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위험은 여러 차례 예견됐다. 경고도 반복됐다. 현장은 멈추지 않았다. 왜 경고는 작동하지 않았을까. 하청 구조로 책임이 분산됐기 때문일까.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쳤기 때문일까. 성장과 효율 앞에서 안전이 협상 가능한 가치로 취급됐기 때문일까. 필요한 것은 사후 해명이 아니다.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끝까지 따지는 일이다.
산업재해로 매년 수백 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되찾아야 할 것은 거창한 성공 신화가 아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 가장 보편적인 권리다. 당연한 상식이 개인의 요행과 운에 맡겨져 있다.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질문을 꺼내 든다.
이 질문에서 CBS 연간 기획 '오늘도 다녀왔습니다'가 출발한다. 산업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는 데서 시작해, 사람이 일터와 일상에서 온전히 자기 발로 돌아올 수 있는 사회적 기준을 다시 묻는다. 길 위의 사고와 일상의 참사를 기록하며, 우리 사회가 사람의 '귀환'을 어디까지 책임지고 있는지 추적할 예정이다.
누가 쓰러졌는지를 기록하는 연대기를 넘어야 한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지를 말해야 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오늘도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가 당연해지는 사회를 향해, 이 질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