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를 앞두고 간첩혐의로 기소된 홍모 씨에 대해 법원이 5일 무죄를 선고하자 공안당국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사건에 이은 무죄판결이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간첩사건의 성격상 법원의 잇따른 무죄판결은 이례적이라는 법조계의 평이다.
1심재판부는 ▶합동심문센터에서 홍 씨에 대한 조사를 하기전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 등 피의자 권리고지가 이뤄지지 않은점 ▶검찰·국정원 수사에서 역시 피의자 권리고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피의자권리가 제대로 고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성된 홍 씨의 자필 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 등 검찰이 제출한 문서의 증거능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홍씨가 공안당국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비자발적으로 자백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홍 씨의 진술 외에 검찰측이 제출한 기타 증거에 대해서도 '간접·정황 증거들'이라며 배척했다.
검찰도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한듯 선고가 내려진뒤 곧바로 윤웅걸 2차장검사가 기자회견을 자처해 1심 재판부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 합심센터는 정식 수사가 아니라 행정절차이기 때문에 피의자 권리고지의 대상이 아니며 ▶ 검찰·국정원 수사에서 피의자는 충분히 자신의 권리를 숙지하고 있었고 ▶ 7차례에 걸친 조사과정이 녹화되지 않은 것은 제반여건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차장검사는 ""실체적 진실 발견보다 지나친 형식 논리로 증거를 판단하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례적으로 법원판결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무죄 판결이 앞선 '유우성 간첩사건 증거조작'의 예고된 후폭풍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법원은 홍 씨 사건에서 간첩사건에 대해 '좀더 엄정한 증거능력의 입증'을 공안당국에 요구한 셈이다.
홍 씨의 변호를 맡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의 장경욱 변호사는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이후에 법원이 (공안사건의) 자백에 대한 전면적인 검증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법원이 암묵적으로 인정했던 합동심문센터(합심센터)의 행정조사 결과에 대해 '정식수사에 준하는' 증거수집 절차를 요구한 것도 유우성 사건에서 유 씨의 동생 가려 씨에 대한 합심센터 심문과정 문제가 불거진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유우성 사건에서 '국가정보원에 의한 증거 조작'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데 대한 법원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유우성 사건 이후 공안당국의 간첩사건에 대한 증거수집 절차 시스템상에 어떤 개선이나 변화도 없었다는데 있다.
검찰측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사건을 담당한 윤 차장검사도 "이렇게 가다가는 모든 간첩을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검찰측은 '안보 사범에 대한 기본권을 어느 정도 제약해 가면서까지 진상 규명에 무게를 두는 것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이같은 추세는 정보·수사기관에 대한 범국민적 신뢰가 바탕이 되야 한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실추된 국가정보원의 신뢰를 회복할 수준의 강력한 개혁과 함께 간첩사건 증거 수집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법원-검찰 갈등 차원이 아닌 국가 안보시스템의 근본적인 재점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