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에서도 여론이 엇갈리고 있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공식화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감성호소' 카드를 들고 나왔다.
집단자위권 논의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일본인의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집단자위권 등에 관한 기본적 방향성을 밝힌 기자회견에서 일본인을 태운 선박을 보호하는 문제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분쟁 상황에서 피난 중인 일본인을 태운 미군 선박이 일본 근해에서 공격당하더라도 일본인이 직접 공격당하지 않으면 자위대가 이 배를 보호할 수 없는 게 현재 일본 헌법의 해석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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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는 연간 외국에 나가는 일본인이 1천800만 명이나 된다는 점을 거론하고서 '여러분의 자녀, 어머니가 이 배에 탄 일본인이 될 수 있다'며 집단자위권이 누구에게나 밀접한 주제임을 부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또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 중인 자위대가 현재의 헌법 해석으로는 현지에서 활동하는 일본 비정부기구 요원이나 외국 PKO 요원이 무장 집단으로부터 공격당해도 보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평화 구축을 위해 함께 땀을 흘렸음에도 도와달라도 연락이 와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이들 두 가지 사례를 설명할 때 국가수반의 회견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관련 상황을 다룬 그림판까지 활용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총리인 나에게는 국민의 생명을 지킬 책임이 있다"며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대부분을 사정권에 두고 있고 도쿄, 오사카, 여러분의 집도 예외는 아니다"고 북한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집단자위권 구상을 추진하는 것이 일본의 재무장, 군국주의화로 이어진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박을 시도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을 "오해"라고 평가하고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 때도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론이 있었지만 5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보면 오히려 조약 개정으로 전쟁 억지력이 높아졌다며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업적을 대놓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자문기구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이하 안보 간담회)의 보고서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같은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일본이 유엔의 결의에 따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을 의식한 듯 이라크전 참가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언급에는 안보 간담회의 논의와 토론이 요식 행위이고 정부의 결론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비판을 고려해 차별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현행 헌법이 집단·개별에 관계없이 자위를 위한 무력행사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안보 간담회의 보고서에 대해 "지금까지의 헌법해석과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아 정부로서는 채택할 수 없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는 이날 집단자위권, 집단안전보장, 무력 공격 이전 단계인 회색지대(그레이존) 사태 등에 관해 세부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현재의 헌법 해석과 안전보장 체계가 지닌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정책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안보 이슈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집단자위권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이런 전략이 합리적인 설득 방식이 아니라는 비판도 나왔다.
교도통신은 일본인이 탄 미국 선박 보호는 그간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반복해 주장한 '공해상에서의 미국 함선 보호'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고케쓰 아쓰시 야마구치대 부학장은 "일본인이 타고 있는데도 자위대가 도와주기 어려운 것이 괜찮으냐고 정에 호소해 국민의 이해를 얻으려는 수법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 외무성 국제정보국장을 지낸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享) 씨는 "미군의 함정은 전투를 최우선시하는데 외국에 있는 일본인이 미군 함선으로 피난하는 가정 자체가 생각하기 어렵다"고 논평했다.
군사평론가 마에다 데쓰오(前田哲男) 씨는 자위대가 PKO에서 타국 부대 등을 지원하지 못한다는 문제는 집단안전보장 활동에서의 무기 사용 기준에 관한 문제이며 많은 일본인이 집단자위권과 집단안전보장을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두 가지 사례를 동시에 제시해 혼동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