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성폭력 가해자의 판결문에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친절히(?) 기재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재판부가 형사 배상명령 신청을 규정대로 처리했다가 생긴 결과여서 법률개정 등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2년 8월 6일 새벽 A(25·여)씨는 생면부지의 B(30)씨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폭력을 당했다.
A씨는 B씨를 고소하고 재판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에 대한 형사 배상명령도 신청했다.
배상명령이란 형사 사건의 피해자가 범인의 재판 과정에서 민사적인 손해배상 명령까지 받아 낼 수 있는 제도다.
A씨는 B씨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합의해 애써 잊기로 마음먹었지만, 지난 고통을 다시 들쑤신 건 법원이었다.
B씨의 1심 판결문에 A씨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까지 기재해 B씨에게 송부한 것이다.
B씨는 합의를 이유로 성폭력 범죄에 대해 공소기각, 형사 배상명령 신청은 각하 판결을 받았지만 별도의 절도죄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지난해 10월 이런 내용을 담은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배상명령 신청인란에 A씨의 인적사항을 상세히 기재했다.
주민번호까지 성폭력 가해자에게 알려준 법원의 조치 탓에 A씨는 이사를 해도 추적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됐다.
A씨는 여성의 전화, 민변 등의 도움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 등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광주지법에 냈다.
법원은 소송 중 A씨 측에 답변서를 통해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송촉진법), 대법원 예규 등을 근거로 처리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배상명령 신청인을 명확히 밝히려면 인적사항을 기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상명령 신청이 각하돼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인 신청인의 주민번호까지 상대방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얻기가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수사 또는 재판을 담당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공무원 등은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등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