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미국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핵심 우방인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 냉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 등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보좌관인 에토 세이치(衛藤晟一) 참의원은 최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실망했다'며 반발한 미국에 대해 "오히려 우리쪽이 실망했다"며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에 앞서 아베 총리가 임명한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 NHK 방송 경영위원도 2차대전 때 미군의 도쿄 대공습과 원폭투하는 "대학살이며 도쿄재판은 이를 얼버무리기 위한 재판"이었다고 발언, 주일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터무니없는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INYT는 아베 총리의 측근들이 미국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포함해 민족주의적인 발언을 잇달아 쏟아내면서 미국과 일본 정부 간의 냉각 관계가 심화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대니얼 스나이더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부소장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아베 총리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태도에 전환점이 됐다"며 "아베 총리의 전후 일본 재건 시도를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일본 다쿠쇼쿠(拓殖)대학의 가와카미 타카시 교수는 "지금이 미-일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며 "일본은 고립감을 느끼고 있고 일부 국민은 일본이 미국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국 관료들은 미국의 또다른 핵심 우방인 한국에서 일고 있는 일본 우경화에 대한 두려움을 아베 총리가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불만 때문에 주일 미국 대사관이 이례적으로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반면, 일본 관료들은 미국 정부가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 등과 관련해 일본 정부에 우호적인 입장을 명확히 취하지 않는데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에 보상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등 양국 균열이 심화할 조짐이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데이비드 필링 아시아 담당 편집장도 이날 칼럼에서 미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공식적으로 '실망'(disappointment)을 밝힌 점, 미국 버지니아주 의원들의 일본해·동해 병기 입법화 추진 등을 양국 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증거로 제시했다.
필링 편집장은 전직 백악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일본을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오키나와 미 공군기지 이전, 방위비 증강 등 미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행보가 미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양국 관계가 여전히 견고하다며 현재의 경색된 관계는 금세 회복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짐 센슨브레너(공화·위스콘신) 미 하원의원은 INYT에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유감스런 발언은 항상 나올 수 있다"면서 "이번 일은 잘 처리해서 극복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