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청와대 새 대변인에 민경욱 전 KBS 앵커가 임명됐다. 석 달 전까지 KBS앵커였고 지난 주에도 보도국 간부이던 사람이 언제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코드를 맞춰 왔기에 대통령을 대변한다는 것인지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기자들이 대변인의 역할이 무어라 생각하느냐고 묻자 민 대변인은 "대변인이 뭘 해야 할지 말씀드릴 정도로 아직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다. 생각하는 바는 있다"고 답변을 피했다.
민 대변인은 대변인 임명 발표 하루 전날 밤 9시 뉴스에서 '데스크 분석'이라는 코너에 출연해 논평도 했다. 임명 발표 당일 아침에는 문화부장으로 편집회의까지 참석했다.
청와대 대변인으로서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기자들이 전화번호를 묻자 "이 전화의 번호를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쓰는 거라 반납할 수 있다"며 가르쳐 주지 않았다.
민경욱 청와대 신임 대변인. (자료사진)
◈ 안타깝다 그들만의 KBS…KBS 기자들도 이번 일을 두고 "언론사 뉴스 핵심 인물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정권과 손을 잡은 사례는 한국 언론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라 지적하고 있다.
KBS 윤리강령 위반도 논란이다. KBS윤리강령 1조 3항에는 "KBS인 중 TV 및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그리고 정치 관련 취재 및 제작 담당자는 공영방송 KBS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KBS는 "윤리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치활동'이란 국회의원 등 선출직이나 당적을 가지고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 청와대 대변인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이므로 '정치 활동'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KBS 사측의 이런 해명은 KBS의 보도내용하고도 상반된다. 2012년 2월 25일 KBS '미디어 비평'에서 앵커와 기자의 대담 내용이다, 제목은 '언론인 정치진출, 현실과 한계'.
KBS. (자료사진)
◇ (앵커) "최근 언론인 출신 고위 공직자들이 불명예 퇴진하는 경우가 잇따르면서 언론인들의 정치진출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 또는 고위공직자 이른바 폴리널리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의 문제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KBS도 분명 정당정치인, 고위공직자를 묶어서 '폴리널리스트'라고 불렀다. KBS 프로그램을 계속해 들어보자.
◆ (기자) "폴리널리스트는 오랜 취재 경험을 통해 얻은 전문성과 현실감각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변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상당수 폴리널리스트들은 정치부 재직 경험을 포함해 언론직을 정계 진출 등을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했다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지점에서 지난 2011년 9월 '위키리크스' 사건이 떠오른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본국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에 KBS 시사보도팀 민경욱 기자로부터 얻은 2007년 대통령선거 관련 정보가 실려 있어 문제가 됐다. 미 대사관 비밀전문의 마지막이 하이라이트.
"민경욱은 다큐멘터리를 위해 조사를 하는 한 달 동안 이명박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완전히 설득 당했다. 이 다큐는 이명박이 아주 좋아할 만한 것."
계속해서 KBS 보도내용.
◇ (앵커) 권·언 유착의 폐해로 연결될 수도 있는 폴리널리스트의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현실적으로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 (기자) 네. 현행 공직선거법에는 언론인이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3개월 전에 해당 언론사를 그만둬야 하는 경과 규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징적인 규정일 뿐 권·언 유착을 근절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닙니다. 선출직이 아닌 임명직의 경우는 그나마 이 같은 경과 규정도 없는 상황입니다.
현실적으로 최근 언론인들의 정계 진출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언론사에서 정계로 진출하거나 반대로 정계에서 언론사로 복귀하는 경우 관련 경과 규정을 더 실효성 있게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흔히들 언론을 항해 권력을 감시하는 '워치독' 즉 감시견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감시견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이용해 스스로 권력이 되고자 한다면 언론은 곧 신뢰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청와대. (자료사진)
◈ 산천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어…현직 언론인으로서 대통령의 대변인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사례도 한국언론사에 남아 있다. 경향신문 김경래 전 편집국장의 일화. 1971년 11월 편집국장을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로 불려 갔다. 박정희 대통령이 악수를 하며 대뜸 물었다.
"요즘 신문사 재미있소? 나와 함께 일할 생각 없소? 대변인을 맡아 주시오. 일주일 정도 시간을 줄 테니 생각해보고 연락 주시오."
김경래 씨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나는 갈팡질팡했다. '걸핏하면 기사 문제로 여기저기 끌려 다니는 신문사 국장 그만 두고 감투나 써볼까?'…'무슨 소리! 아무리 힘들어도 20년 지켜온 정도를 가야지.' 결국 조언을 구했다. 함석헌 선생에게 갔는데 언론의 행태를 질타하는 바람에 말도 못 꺼냈다. 최석채 조선일보 주필은 "나 같으면 안 가겠네"라고 했다. 나의 멘토 오소백 선생은 "그걸 말이라고 해!"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존경하던 홍종인 선생을 찾았다. 역정을 냈다. "너마저 간다는 거냐? 도대체 기자라는 사람들이 왜들 그러나." 나는 마음을 정했다. 언론인의 길을 지키겠다고. 일주일 뒤 박 대통령을 다시 찾았다. "각하, 아무래도 저는 신문사에 남는 것이 편할 것 같습니다. 원래 배운 게 신문밖에 없어서."
◈ 최석채 주필은 국제언론인협회가 창립 50년을 맞아 20세기 언론자유 수호에 기여한 인물로 선정한 언론인. 국제언론인협회는 "자유언론의 강력한 옹호자였으며 오랜 언론인 생활 동안 모든 형태의 부정에 반대하는 탁월한 용기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오소백 선생은 8개 일간지를 옮기며 사회부장을 지내 영원한 사회부장으로 불리는 대기자. 몸 담은 신문사에서마다 외부의 부당한 압력과 사주의 간섭에 맞선 것으로 유명하다.
홍종인 선생은 일제 강점기 학창 시절에 독립만세운동으로 퇴학당한 뒤 신문기자가 되어 조선일보 주필 등을 거친 대기자로 애칭 '홍박'으로 불린다. 1974년 기자들의 자유언론수호 선언을 지지하며 정부의 탄압으로 광고가 끊긴 동아일보에 자비를 들여 최초의 의견광고를 실어 자유언론수호 운동에 불을 지핀 일화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