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개에 이르는 공공기관은 지난해 정부예산보다 많은 570조 원의 예산을 집행한 국가 경제의 중추다.
이들 공공기관 운영 전반에 대해 관리 감독하는 기구가 바로 ‘공공기관 운영위원회(공운위)’인데 이 핵심적인 기구가 허수아비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 회의록 없이 서면결의...‘공공기관운영위’ 기재부 안 95% 원안가결
공적 목적으로 조직된 기관들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정부로부터 감시를 받기 때문에 ‘지정’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공공기관 ‘지정’을 하는 곳이 바로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다.
모든 공공기관의 경영, 인사, 혁신, 경영평가 등 운영 전반을 심의 의결하는 공공기관 컨트롤타워 같은 기구다.
공운위는 정부부처가 공공기관과 유착될 수 있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공공기관을 관리 감독토록 민간 전문가를 포함해 2007년 기재부 산하에 비상임 조직이다.
그런데 이 공운위가 파행적으로 운영돼 온 사실이 확인됐다.
2008-2013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회의 현황. (자료: 2008-2013 공운위 회의록)
CBS가 최근 5년 동안 열린 운영위 회의록 76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 상정된 안건 가운데 부결시킨 안건은 단 한건도 없었다. 상정된 안건 302건 가운데 95%가 기재부가 올린 원안대로 가결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운위 위원을 역임한 A씨는 "담당부처에서 안건을 내면 그것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정도의 '요식적인 위원회'였다"고 증언했다.
전직 공운위원 B씨 역시 "위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공운위가 거수기 역할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운위가 기재부의 들러리를 서게 된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위원장인 기재부 장관을 포함해 각 부처 차관급 등 관료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위촉돼 온 민간 위원들이다.
전직 공운위 위원들은 산더미 같은 안건을 회의 당일 날 전달받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B씨는 “공공기관 임원 임명 안건의 경우 수많은 임원들을 그 자리에서 안건으로 받아서 검토하게 되는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 수 있겠냐”며 “안건에 대해 논의를 하고 말고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전직 공운위 위원들은 심지어 회의록도 제대로 남겨지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쟁점이 될 만한 문제의 경우는 민간위원들이 문제제기를 하면 정부쪽에서 '양해해 달라'고 하고 회의록에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해당 안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해 ‘이런 이야기는 회의록에 꼭 남겨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장관이 위원장이지만 차관이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서면으로 중요 안건을 의결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전직 공운위원 C씨는 “회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밖에 열리지 않는데도 회의를 여는 대신 서면으로 심사를 해달라는 경우도 있어서 민간 위원들이 서면심사는 못하겠다고 보이콧 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법으로 보장된 위원들의 임기도 정권이 바뀌면 휴지조각이 됐다.
전직 공운위원 D씨는 “정권이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표를 내라고 연락이 왔었다”며 “법으로 보장된 임기를 지키겠다며 버틴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구질구질해서 그냥 사표를 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위원까지 임명할 정도니깐 공공기관장 임명할 때도 윗분의 뜻이라면 다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공공기관운영위’ 파행 눈감고 공기업 개혁 한다? 朴정부 진심 의심공기업 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기재부의 들러리 조직으로 전락한 공운위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입법부의 고위 인사는 “공운위는 공공기관 운영에 있어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기재부가 안건을 던져주면 통과시켜서 안건의 밀실 딱지를 떼 줌으로써 정통성을 부여해 주는 들러리 기구로 전락했다”며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운위가 일을 제대로 하도록 손발과 같은 사무처 조직을 구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공기업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박근혜 정부는 공운위를 이렇게 놔둔 채 사실상 관료들로 구성된 ‘공공기관정상화 협의회’라는 회의체를 공운위 산하 기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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