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시험 비리에 휘말린 한국농어촌공사와 시험 문제를 출제한 산하 기관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한국생산성본부가 승진시험 문제 유출 사건의 책임을 두고 서로 선 긋기에 나서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사건 직후 한국생산성본부 산하 A개발원 센터장이 경찰에 구속되자 “2002년부터 2011년까지 9회에 걸쳐 농어촌공사 승진시험 출제 등의 업무를 진행한 A개발원과 전 센터장 엄모 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농어촌공사는 또 엄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엄 씨는 이 기간 개발원 센터장으로 근무하며 최근 구속된 농어촌공사 직원 윤모(52) 씨 등에게 승진시험 문제를 넘겨주고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농어촌공사는 소송 제기 이유로 개발원과의 승진시험 위탁계약에서 ‘문제 유출 등의 사유로 시험에 차질이 생길 시 개발원이 모든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농어촌공사 직원 2명이 이 사건에 연루돼 이미 구속됐음에도 문제 유출의 책임을 개발원에게만 돌리는 셈.
구속된 직원 2명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 구속된 것에 대한 성찰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함께 한다는 의미로 연루된 직원 2명을 직위 해제했다”며 “소송의 이유는 잘못을 미루자는 것이 아니라 시험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엄 씨가 속했던 한국생산성본부도 책임을 미루기는 마찬가지.
생산성본부는 사건 직후 “문제가 되고 있는 A개발원은 본부가 출자한 자회사로 경영 전반에 있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번 사건과 생산성본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못 박았다.
자회사지만, 남이라는 뜻.
특히 생산성본부는 “일정 부분 책임을 통감하지만, 사건은 농어촌공사 내부 브로커 윤 씨의 지속적인 회유에 개발원 직원이 매수당해 유착 관계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로 돈을 받고 문제를 넘겨주고 유출한 자기반성 없이 농어촌공사와 마찬가지로 ‘네 탓’ 으로 만 돌리고 있는 셈이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관계자는 “청렴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공공기관이 비리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식의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며 “비리에 대한 잘못과 책임을 따지기 전에 자기반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