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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40년…장성택과 김일성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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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위로 친족 입성, 3대 걸쳐 실각·복권 거듭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로 김정은 시대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군림해왔던 장성택(67)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일성 일가의 친족으로 총애를 받으면서도 과도한 권력에 대한 견제를 동시에 받으면서 정치적 부침을 이어왔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장성택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나온 뒤 1972년 김일성 주석의 딸이자 김정일의 여동생,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북한 로열패밀리에 입성했다.

장성택은 이를 바탕으로 평양시 당 지도원부터 출발해 김일성부터 김정일, 김정은 시대까지 3대에 걸쳐 2인자 또는 3인자의 위치를 지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바로 뒤에서 김정일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에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으로 공안과 사법기관을 총괄하는 것은 물론, 황금평 특구사업 등 외자유치에도 관여하면서 군과 당, 자금 등을 쥐고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초기에는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섭정정치’를 하고 있다는 외부의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같은 장성택의 급부상 속에서 그의 몰락은 이미 예견돼왔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장성택은 술과 노래, 춤을 즐기는 호방한 성격으로 알려져있다. 또 외자유치 등 대외사업을 맡으면서 서방세계의 물정에도 밝은 엘리트로서 김정일에게 북한의 개혁·개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10월에는 북한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방문해 남쪽의 경제발전상을 목도하고 연회석상에서 폭탄주를 연신 들이키다 만취해 한숨을 내쉬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런 성격을 간파한 탓인지 김일성은 딸 김경희와의 교제를 탐탁치 않게 여겨 대학 재학시절 원산 농과대학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또 1978년에는 평양의 외교부 초대소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모아놓고 연회를 열다 김정일의 눈 밖에나 강선제강소로 쫓겨난 적도 있다.

이어 2002년 1월에는 국가예산을 개인목적으로 사용하다 사회안정국에서 처벌을 받고 아내 김경희와 요양생활을 하기도 했고 2004년에도 실각설이 돌았다.

이와 관련해 김정일 위원장은 2005년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장성택이) 남조선에 가서 폭탄주를 먹고 몸을 버려 잠시 쉬도록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성택은 2년 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복권한 뒤 조용히 측근 역할에 충실했지만 김정일은 장성택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

김정일은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장성택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군부 강경파 리영호, 최룡해 등을 권력 상층에 배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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