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국정조사가 23일 53일간의 일정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사건에 대한 국조특위 소속 여야 위원들간 명확한 인식차이 때문에 결과 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다. 세 차례의 청문회와 각종 기관보고 등에서 나온 증언은 오히려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따라 CBS노컷뉴스는 국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언론의 시각에서 국정조사 보고서를 써보기로 했다. 몇 차례 나눠 게재될 이 보고서는 국회 청문회 속기록과 수사기관의 사건 기록, 경찰 감찰보고서 등 공식적으로 생성된 기록물 등에 근거해 핵심 쟁점들에 대한 양측의 상반된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편집자 주]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에 대한 민주당의 감금·인권유린 의혹과 국정원 전 직원들에 대한 민주당의 매관매직 의혹은 새누리당의 요구로 국정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들로, 사안 자체를 따지자면 '비본질적'이다. 때문에 '여권의 물타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게다가 검증을 하기에는 기본적 사실관계가 미비했다. 검찰 수사가 완료된 다른 국정조사 항목과 달리 이들 의혹은 수사가 완료되지 않았거나(감금), 수사가 끝났어도 기소 내용에 포함되지 않은(매관매직) 상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여직원 김씨가 감금당했다던 시기 집안에서 댓글 삭제 등 증거인멸을 자행한 사실이 수사로 확인되면서 '감금론'의 설득력은 퇴색했다. 이 상황을 야당은 '셀프감금', '(감금이 아닌) 잠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특성은 국정조사에서 새누리당이 목표한 '대선개입 대(對) 감금·매관매직' 식의 대치 구도가 성립하는 데 한계로 작용했다.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역삼동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증거자료를 수집을 지켜보고 있다. 황진환기자
◈감금당했다더니 증거 인멸
"경찰력을 동원해서 공포에 떨고 있는 김하영 직원을 구출했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어요."(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19일 2차 청문회)
새누리당은 여직원 김씨의 '여성성'을 강조하면서 감금론을 폈다. 김씨도 "가족도 (집에) 들어오지 못했고, 음식물을 전해주는 것조차 원활히 협조되지 않았다. 정말 위급하고 무서웠던 공포스러웠던 상황"이란 진술로 호응했다.
김씨는 선거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지난해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약 43시간을 자신의 오피스텔에 머물면서 집 앞에 모인 민주당 당직자들과 대치했다. 그는 사건 초기 경찰·선관위 단속반을 "나는 국정원 직원이 아니다"라는 거짓말로 집에서 내보낸 다음, 경찰의 뒤이은 수사 협조 요구에 내내 불응했다.
그런데 연약하게 공포에 떨고만 있었다는 김씨는 대치 기간 범죄 증거를 적극적으로 인멸한 정황이 드러난 상태다. 피동적 감금이 아니라 증거 인멸 시간을 벌 목적의 '셀프감금'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단 검찰은 지난 6월 수사결과 발표 때 "김씨 컴퓨터에서 12월 11일 이후 파일이 많이 삭제됐다"고 밝힌 바 있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도 2차 청문회에서 김씨의 컴퓨터를 분석 중이던 지난해 12월 15일 경찰 분석관들의 대화가 담긴 CCTV를 상영하면서 김씨를 추궁했다. 분석관들의 대화 내용은 "김씨가 개인 자료와 문서·그림 파일을 삭제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는 것이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16일 1차 청문회에서 "댓글이 심각하지 않다면 왜 여직원이 컴퓨터를 당장 제출하지 않고, 이틀 동안……. 뭐 했나, 이틀 동안? 증거인멸 했다"고 강조했다.
2차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로부터 몇차례 "'감금' 때 게시글 등을 삭제했느냐"는 질의를 받은 김씨는 시종일관 "답변드리기 곤란하다"고 회피했다.
◈경찰이 지켜보는 상황도 감금인가"권은희 증인은 '경찰서 민원실에 있는 상황에서도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면 경우에 따라서 감금이 된다' 이런 판례 알고 계십니까."(새누리당 경대수 의원, 2차 청문회)
새누리당의 가장 효과적인 논거는, 경찰의 현장 장악력이 불법소지를 원천봉쇄할 만큼 충분치 못했다는 것이다.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감금은 유형·무형적 방법으로 다 일어날 수 있다"고, 이성한 경찰청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 앞에) 있지는 못했던 것으로 안다"고 각각 수긍했다.
그렇더라도 당시 현장을 공권력 부재의 공간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민주당 관계자의 일부 일탈이 통제되지 못했어도 경찰은 13~68명이 현장 대기 중이었고, 김씨의 요구사항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정작 자신의 신고로 4차례나 출동한 경찰의 도움을 김씨는 스스로 거절했다.
권은희 과장은 2차 청문회에서 "여직원 김씨는 나와 계속 통화를 진행 중이었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있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또한 (김씨의 112신고로) 도곡지구대 직원이 출동해서 통로를 열어주겠다는 답변을 했다. 이렇게 봤을 때 당시 상황으로서는 감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민기 의원도 1차 청문회에서 "경찰이 가서 '나와라. 통로를 열어주겠다' 해도 나오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전화로) 언론 인터뷰하고 플레이를 다 했다. 이걸 감금으로 볼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경찰의 당시 판단도 '감금으로 단정할 수 없다'였다. 1차 청문회에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주거침입은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감금과 관련해서는 계속 수사를 해봐야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수차례 진술했다. 형법상 주거침입죄는 감금죄보다 형량이 낮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 황진환기자
◈감금이 맞다면, 위법성 조각 여부는"당시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현행범이라는 증거가 없어서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물리력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고 인터뷰까지 했었거든요. 민주당은 소명자료는 하나도 제출 안 한 상태였지요, 그 당시에"(새누리당 권성동 의원, 지난달 25일 경찰청 기관보고)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은 누구든지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은 여직원 김씨가 범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범행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고, 경찰에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오피스텔 대치는 불법이라는 게 새누리당의 입장이다.
관건은 당시 경찰의 판단이다. 당시 경찰은 김씨의 선거법 위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김용판 전 청장은 1차 청문회에서 "이것은 그야말로 대선과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민주당 당직자를 포함해서 언론도 그렇고 워낙 예민한 게 많았기 때문에 경찰이 물리력으로 어떻게 (민주당을 해산)할 상황은 아니라고 당시 보고받았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민주당의 행위가 감금이란 범죄의 구성요건을 갖췄더라도,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지적도 있다. 사건을 공직선거법상 사회단체에 부여된 선거부정 감시 활동권의 행사로 본다면 정당행위(사회상규에 부합하는 행위)라는 얘기다. 더구나 이 사건은 형식상 경찰의 입회 하에 이뤄진 측면도 있다.
참고인으로 2차 청문회에 출석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일단 감금죄의 적용은 무리라고 생각했다"며 "밖에 있는 주체가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공권력의 집행자였다. 그렇다면 문을 열어 달라는 요청에 응했어야 한다. 더구나 김씨가 한명의 일반 시민이 아니고, 같은 국가 공권력에 속해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이라면"이라고 진술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민주당 강기정 의원도 "그날 거의 내가 있던 동안에는 선관위 직원과 경찰이 거의 함께 그 복도에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민주당은 경찰·선관위의 지휘에 따랐다고 보는 게 맞다"고 발언했다.
한 현직 판사는 CBS와의 통화에서 "범죄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라도 이를 불법선거 감시라는 '사회상규에 부합하는 행위'로 본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면서 "현행범은 물론이지만, 범죄를 저지른 뒤 숨어있는 사람의 도주를 막기 위해 그의 활동을 제한했다면 사회상규에 위배될 게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언제 어떻게 관직을 팔았을까"국정원 전 직원 김모씨를 고발한 회계책임자가 대화 녹취록을 경찰에 제출했습니다. '이제 정권이 바뀌면 국정원 실장자리 준다' 이런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지난달 25일 경찰청 기관보고)
새누리당의 두 번째 맞불 카드는 매관매직 의혹이었다. 민주당이 국정원 전 직원 김씨에게 국정원 기조실장 자리를 약속하고 댓글활동 관련 정보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씨와 사건 당시 현직이던 정모씨가 공모해 여직원 김씨를 미행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조명철 의원이 언급한 선거법 위반 고발 사건에서 김씨는 벌금 200만원을 지난 3월 확정받았는데, 이는 국정조사 사안과는 다른 내용이다.
전 직원 김씨와 정씨는 민주당에 국정원 정보를 유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다. 공소장에는 여직원 김씨를 미행한 내역 등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정작 전 직원 김씨가 민주당으로부터 무슨 대가를 약속받았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검찰 관계자도 "김씨 본인은 물론, 참고인이나 제3자한테서도 '김씨가 대선과 관련해 직을 제공받기로 했다'는 진술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구체적 매관매직 행태를 규명해야 할 새누리당은 딱히 새로운 정보를 내놓지 못한 채 변죽만 울렸다.
이장우 의원은 전 직원 김씨를 상대로 "고교 동문회 카페에 '2012년 백원우 의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박지원이 김상욱을 공직자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위험을 무릅쓰고 DJ정권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고 돼 있다. 애당초 국정원에 있을 때부터 정치에 개입하고 정치 공작에 관여했지 않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김씨가 "박지원 대표에게 묻지 왜 나한테 묻느냐"고 받아쳤지만, 야당과의 유착이나 매관매직의 실상 등에 대한 추가 공세 없이 질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