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단독 GV상영회(맥스무비 제공).
"크리스 에반스는 강동원, 틸다 스윈튼은 오광록"
봉준호 감독이 영화 속 캐릭터들의 국적을 바꾼다면 어떻게 캐스팅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영화포털사이트 맥스무비는 17일 "지난 16일 오후 8시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봉준호 감독과 '설국열차' 원작자인 장 마르크 로셰트, 뱅자맹 르그랑이 참석한 '설국열차 GV 특별상영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영화 상영 이후 이동진 평론가의 사회로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다음이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 크리스 에반스는 강동원, 틸다 스윈튼은 오광록한국배우였다면 어떻게 캐스팅했을지 묻는 질문에 봉감독은 "나도 해봤던 생각이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메이슨 총리 역은 원래대로 다시 성을 남자로 바꿔서 오광록 선배가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틸다 스윈튼의 긴 연설을 오광록 선배가 한다면 느릿느릿한 말투 때문에 영화가 굉장히 길어질 것 같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봉 감독은 또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한 '커티스'는 꼭 근육질 배우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외롭고 가여운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강동원이 해보면 어떨까"라고 말해 관객들을 크게 술렁이게 만들었다.
이어 "도끼를 휘두르다가 자기 힘에 못 이겨 쓰러질 것 같은 강동원이 가냘픈 몸으로 크리스를 소화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오히려 하게 되면 더 멋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은 송강호가 연기한 남궁민수 역을 할만한 외국배우로 윌리엄 H. 메이시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꼽았다.
◈ 봉준호, 만화 '설국열차'를 보게 된 건 운명원작인 동명만화는 1970년대 자크 로브(스토리)와 알렉시스(작화)에 의해 처음 기획됐다. 하지만 1977년 알렉시스가 세상을 떠나고 이후 장 마르크 로셰트가 합류해 1984년 1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작품은 1986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하지만 1990년 자크 로브가 숨지면서 다시 연착 상태를 맞았다. 두 명의 작가를 먼저 보낸 장 마르크 로셰트는 소설가인 뱅자맹 르그랑과 함께 시리즈를 재개해 1999년 2권, 2000년 3권을 내놓았다.
봉 감독은 "7년 전에 만났던 원작자들과 영화를 이렇게 함께 보고, 관객들과 자리를 갖게 된 것이 참 신기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람의 인연과 작품의 운명은 참 신기한 것 같다. 1980년 프랑스에서 이 만화가 나왔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크리스 에반스는 아마 기저귀를 차고 있었을 것 같다. 틸다 스윈튼는 데릭 저먼과 영화를 찍고 있었을 것 같다. 박찬욱 감독님 경우 충무로에서 힘들게 연출부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출간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만화 설국열차를 몰랐다."
이어 봉 감독은 "한국에 있는 작은 출판사에서 이 만화를 출판하게 되고, 평소처럼 만화가게를 어슬렁거리다가 이 만화를 보게 된 나는 박찬욱 감독님에게 보여드리고 '이것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님은 흔쾌히 허락해줘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크리스 에반스는 어느새 근육질 남자가 되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 영화를 함께 완성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연 내지는 운명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 남궁민수, 도어락 회사에 다닌 근로자였다송강호가 연기한 남궁민수 캐릭터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밝혔다. 봉 감독은 "남궁민수 캐릭터 같은 경우 자세한 배경이 시나리오에 있었다. 영화에서는 대사들이 많이 생략이 되었는데 '경남실업'이라는 도어락 회사에 근무하다가 윌 포드의 눈에 띄어 설국열차에 탑승하는 설정으로 되어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남궁민수는 하이테크 엔지니어는 아니다. 전자칩을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허섭한 방법으로 문을 연다. 월 포드의 과거 다큐멘터리 장면에도 남궁민수 캐릭터를 넣을까 생각했는데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략됐다"고 덧붙였다.
◈ 앞칸 사람들이 꼬리칸 사람을 살려둔 이유는?
봉 감독은 앞쪽 칸 사람들이 꼬리칸 사람들을 살려둔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저렴한 바퀴벌레 사료를 주면서 꼬리칸 사람들을 왜 살려두는 것일까 궁금할 수 있는데 앞칸 사람들에게 꼬리칸은 저렴한 인력자원부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들을 봐도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아우스비치에 끌려가지 않고 오래 살았다. 그것과 같은 메카니즘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직업이 중요했다."
◈ 봉준호 감독,영어권 개봉 버전은 러닝타임 더 짧다설국열차의 해외 개봉 일정에 대해서도 밝혔다. 설국열차는 430억 원이 투입된 글로벌 프로젝트. 개봉 전에 해외 판권 판매로만 약 20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북미 지역 배급은 미국 메이저 배급사인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맡았다.
봉 감독은 "설국열차가 개봉되는 나라가 백 몇 십 개국이다. 오는 가을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개봉하고, 겨울엔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한국에서 본 설국열차 버전대로 상영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미국, 영국, 호주, 남아공 등 같은 영어권은 사정이 다르다. 영미권 나라들의 배급권을 가지고 있는 하비 와인스타인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3) '킬빌'(2003) '시네마천국'(1993) 등을 배급 제작하신 분인데, 본인의 관점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 물론 나도 고집이 세다. 서로 잘 협의하면서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밝혀 관객들을 폭소케 했다.
또한 봉 감독은 "영어권 개봉 버전의 상영시간이 더 길어질 일은 없다. 자막을 읽을 필요가 없으니 리듬이나 템포는 당연히 더 빨라지게 된다"며 "영화의 본질이나 스토리, 캐릭터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속도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 작업이 끝나야지 정확한 미국 개봉날짜가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