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교육
장애인 교육에서 전문가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바로 통합교육이다.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을 함께 교육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허물없이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 통합교육의 최종 목표이다. 선진국에서도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의 분리교육보다 통합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급속한 발전을 이뤘지만 성장이라는 목표 때문에 복지는 뒤로 밀렸다. 그중에서도 장애인은 우선순위가
더 낮을 수밖에 없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한 사회가 분위기 속에서 장애인들이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회는 자연스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시스템으로 정착됐다.
한 장애인이 휠체어에 앉아 국회 본회의 장면을 지켜보면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있다. © 노컷뉴스
교육도 분리됐다.
정규 교육과정은 일반학교와 특수학교로 나뉘어져 있다. 통합교육을 하는 일반학교에는 장애인 학생을 위해 특수학급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교육 여건상
장애인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저학년일 때는 장애 학생이 일반학교에서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장애인 아이와 일반 아이의 격차는 심해진다. 초등교육에서 중등교육으로
넘어갈수록 특수학급은 줄어든다.
교육은 점점 학생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보다 차이를 확인하는 구조로 변한다. 입시라는 벽도 생긴다. 하나, 둘 장애인 아이들이 통합교육에서 이탈해가고
비장애 학생들은 장애인 친구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것은 힘든 일이 됐다. 간혹 눈에 들어와도 그저 몸과 마음이 불편한 사람으로만 바라봤다. 아직 제대로 된 공감은 형성되지
않았다.
일반인과 다른 행동, 늘 도와줘야 한다는 부담감.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지독한 타인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인식은 희미해졌다.
어느 연령이 되면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집 안에서 나오지 않거나 장애인 보육 시설로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에 장애인이 없는 줄 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애인의 모습 © 노컷뉴스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함께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얽히고설키는
시간.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익힐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통합교육이 중요하지만 현재 정규교육 시스템은 일반학교 위주이기 때문에 장애 학생이 함께하기 힘든 구조다. 입시 위주의 교육체계가 잡혀
있는 이상 변화도 쉽지 않다.
현재 현실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역통합’ 교육이다.
일반학교 학생들이 특수학교에 가서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체험학습이나 봉사활동 방식으로 특수학교 학생과 함께 어울리는 장을 만들어 장애인
친구의 일상을 이해하게 하면 학업에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다. 동시에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다.
학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학부모는 자녀에게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함께하는 구성원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자녀가 자애 학생을 올바른 가치관으로
바라보고 대할 수 있도록 지도해줘야 한다. 부모가 가지는 편견이 자녀에게 그대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은 어떨까?
이번 서울시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논란만 들여다보더라도 그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인구 천만 명이 사는 서울의 경우 장애아동 수도 다른 도시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특수학교 설립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인근 마곡지구는 도시가 개발되면서 대규모 아파트와 근린시설이 들어왔다. 초·중·고 학교도
함께 들어왔다. 하지만 특수학교는 들어오지 않았다. 도시 계획 때부터 특수학교는 논의에서 빠져있다.
어릴때부터 장애인과 함께하는 환경을 만들면 장애인 낯설지가 않다
왜 그런 것일까?
새 주택지구가 들어서면 규모를 고려해 초·중·고 학교 설립을 검토한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안에 학교가 들어서 있는 것도 이런 정책이 반영된 것.
하지만 특수학교는 검토하지 않는다. 일반 학교와 달리 법령에서 빠져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구 신내지구 개발 때도 서울시 교육청이 주택공사 측에 특수학교 설립을 요청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며 주택공사 측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시개발 뒤 학교 설립이 진행되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만약 도시계획 때부터 특수학교가 포함돼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먼저 불필요한 지역 이기주의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복지관 사례를 보더라도 사전 계획에 따라 장애인 보육시설이 설립됐을 경우
지역주민의 반발은 거의 없었다. 실제 생활에서도 불편함이 거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커뮤니티 속에서도 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아파트에 경로당이 있듯 일정 규모 이상의 커뮤니티 속에 장애인
시설을 함께 두는 것이다. 이곳에서 장애인의 재활과 교육이 이뤄지고 나아가 일반인도 함께 참여하는 교육으로 정착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편견
속에 숨어 있는 장애인들을 밖으로 끌어 내고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장애는 선천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상 장애는 우리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
함께하고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이해가 부족했을 수 있다.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그들의 행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지식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이 더욱 멀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일상 속에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듯이 장애인도 한 명의 사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개성이 많을 뿐이다.
장애인 아이를 둔 이은자 서울장애인부모회 부대표는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과도기로 보고 있다. 그동안 집 안에서 숨어 지냈던 장애인들이 당당하게
집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것. 장애인 학교 설립 문제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된 지금은 더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특별한 시기를 겪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잘해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장애인을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함께할 시간이 필요하다.
장애인과 장애인 부모, 우리 모두 함께, 그리고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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