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강서 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2차 주민토론회'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주민토론회가 열렸다. 이미 1차 때 파행을 겪은 뒤라 더욱 중요한 토론회 자리였다. 이날도 어김없이
주민들의 반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간절히 사정하고 읍소 했다. 구걸하듯 애원도 해봤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지역구 국회의원 공약인 한방병원 설립을 원했다.
마이크를 잡은 최대현 씨가 간곡히 호소했다. 그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서 큰절을 올렸다.
토론을 이어가지만 결론이 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순간 장민희 씨가 무릎을 꿇었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제발 아이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주위에 있던 어머니들도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쇼 하지 마!”
지켜보던 주민들이 비아냥거리며 독설을 쏟아냈다. 특수학교는 절대 설립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무릎 꿇은 어머니와 반대하는 주민들.
해당 장면은 언론을 타고 대한민국 전역에 퍼졌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논란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지역 이기주의에 분노했다.
모르고 있었던 현실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여론은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님의 편에 서게 됐다.
어머니들의 작은 날갯짓이 기적을 낳았다.
2차 주민토론회가 끝나자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는 어머니들.
학교가 설립되더라도 가장 먼저 무릎 꿇은 정 씨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딸 혜련이는 이미 성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그녀는 토론회에 갔다. 자신의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를 돕기 위해서였다. 정 씨와 함께 무릎을 꿇었던 어머니
모두 그녀와 비슷한 처지였다.
사실 정 씨의 딸인 혜련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그녀도 이런 토론회에 올 시간이 없었다. 매일 바로 옆에서 자식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시도
눈 뗄 수 없는 장애 학생 특성상 그녀의 일과는 모두 딸에게 맞춰져 있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12년의 정규 교육과정을 끝낼 때 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서울에서 단 한곳의 특수학교도 개교한 곳이 없었다. 딸이 어릴 때 겪은 어려움과 다를 게 없었다. 세상이 급변했다는데 장애인
교육은
제자리였던 것.
내 아이는 비록 혜택 받지 못했지만 다음 세대 장애인 아이들에게는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 자신이 겪은 아픔을 똑같이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 정신없이 바빠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미안함.
장애인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누구보다도 그 마음을 잘 아는 그녀였다. 현실은 엄마를 강하게 만들었고 무릎까지 꿇을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이다.
혜련이는 세 자매 중 둘째다. 두 살 터울 자매들이라 초등학교부터 줄 곳 함께 학교에 다녔다. 덕분에 초·중·고 모두 일반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장애인 아이는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을 오간다. 고학년이 될 수록 일반학급의 수업은 장애 아이가 따라가 갈 수 없는 수준으로 변해있다.
물론 혜련이의 학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린 이야기, 날씨가 더워서 체육 수업이 취소됐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홀로 운동장에 남겨졌던 이야기. 힘들었던 그녀의 학창시절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 속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멍하게 보낸 시간이었다.
만약 특수학교에 갔더라면 더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때문에 엄마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녀와 함께
무릎 꿇은 엄마들 대부분은 그녀와 사정이 비슷했다.
혜련이는 올 해 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강서구 직업재활센터 보호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대부분은 단순·반복적인 임가공일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면 월급 14만 원이 나온다. 그중 6만 원은 밥값으로 작업장에 내야 한다. 실제 수입은 8만 원인 셈이다. (최저임금법
7조를 보면 정신·신체장애로 근로능력 현저히 낮은 자는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한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근무 조건이지만 장애인 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는 이조차도 감사한 일이다. 우리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고
있으니까.
작업장에서 혜련이는 차분하다. 느리지만 주어진 일은 정확하게 한다. 종종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웃음도 짓는다. 쉬는 시간에는 미소도 보이며 장난도
친다.
밝고 활발한 혜련이. 올 해 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하루 7시간 씩 일하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딸이 조금씩 변하는 게 느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씩 퇴화하는 느낌이다.
학교에 다닐 때는 새로운 것을 보고 배워서 점점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반면 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보호작업장에서 단순·반복된 일만 하다 보니 지적
수준이나 운동신경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작업장에서도 교육과 동아리 모임이 있지만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
간단하지만 몸을 쓰다 보니 집에 오면 피곤해한다. 곧바로 잠드는 날도 많다. 자연스럽게 활동량은 적어지고 몸무게는 늘어난다. 날씬하던 딸은 아랫배에
살이 살짝 붙었다.
보호작업장을 나가지 않는 장애인은 집안에만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살이 더 많이 찔 수 있다. 성인 장애인의 최대 고민은 비만이 됐다.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일하는 혜련이. 그나마 작업장에서 일 할 수 있는 발달 장애인은 많지 않다.
부모로서 고민이 많다.
어린 장애인 학생을 위한 시설도 부족한 편이지만 성인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전무한 수준이다. 사설 교육기관에서 치료 할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장애 아이가 성인이 된 시점이 부모의 은퇴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은퇴 한 부모의 경제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형제나 자매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부모의 생활력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장애 자녀의 생활력도 멈춘다. 부모 없이, 성인 장애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발달장애인 아이가 커 갈수록 부모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아직 우리 사회는 성인 장애인을 품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 사회와 단절된 시설, 또는 고독한 가정이 현재 대한민국 장애인 노후의
현실이다. 부모의 인생도 자식의 인생도 집 밖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성인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한다. 하루 24시간, 그리고 평생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본인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자식 걱정이 크다.
실제 모든 것을 끝낸 부모들도 있다.
지인이 이런 선택을 할 경우 같은 성인 장애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심적 고통은 이로 말할 수 없다.
다른 성인 장애인과 함께하는난타 수업이 있던 날.
혜련이는 채를 두드리는 내내 웃고 있었다.
리듬에 맞춰 율동도 했다.
밝고 해맑은 표정,
혜련이의 표정이 계속 될 수 있기를...
장애인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지막 소원이 있다.
단 하루만 더.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편안하게 눈 감을 텐데
너보다 단 하루만 더...
인터뷰 : 장민희 씨(혜련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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