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0년 전 '처치곤란 유명인'은 잔반통 뒤지는 노숙인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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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인 혈통으로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재북 화교'. 북한을 탈출해 자유와 번영을 찾아 남한으로 왔지만, 곧 '유령'이 되었다. '무국적자'로 판정돼 극심한 빈곤 속에 삶 전체를 부인 받고 있다. 잔반통을 뒤져 끼니를 때운 노숙인,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신분도 없이 세상을 떠난 엄마의 장례를 치른 무국적의 아들. 수십 년째 방치된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들의 이야기다.

[유령이 된 탈북자들①]
재북 화교 출신 '무국적자' 김천일씨
2004년 한국 들어왔지만 탈북민 인정 안 돼
다수 언론 조명했지만 결국 길거리에 내몰려

지난 2007년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갇혀있을 당시의 김천일씨와 얼마 전 길거리에서 노숙했던 현재의 김천일씨.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박수연 기자지난 2007년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갇혀있을 당시의 김천일씨와 얼마 전 길거리에서 노숙했던 현재의 김천일씨.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박수연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단독]20년 전 '처치곤란 유명인'은 잔반통 뒤지는 노숙인이 됐다
(계속)
"배가 너무 고파 안 되겠어서 여기서 '짬밥'(음식물쓰레기)을 꺼내 먹었어요. 까만 비닐봉지에 (음식물쓰레기를) 담아서 저쪽 공원에 가서 먹고, 거기서 잠도 자고 했죠. 오늘은 통이 비어 있네요."

깃이 빳빳하게 다려진 회색 자켓을 걸친 김천일(63)씨가 길거리에 놓인 허리춤 높이의 대형 음식물쓰레기 수거통 앞에 서서 말했다. 그는 수거통의 주황색 뚜껑을 직접 열어가며 지난 2월 찬바람이 세게 불던 길거리에서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천일씨는 취재진을 인근 공원과 한 대형마트 내 화장실로 이끌었다. 매섭게 춥던 밤을 흘려보낸 곳들이다. 딱딱한 공원 벤치에 새우처럼 누워서, 화장실 변기에 앉아 허리를 잔뜩 말아 웅크린 채 겨우 잠을 청했다고 했다.

"어찌나 춥던지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가 '두두두' 떨렸어요. 지금은 괜찮지만, 그때 다리가 엄청 부어서 (노숙을)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랬죠. 지금도 가끔 잠에서 일어날 때가 가장 두려워요. 여기가 밖인가, 안인가 혼동이 돼요."

재북 화교 출신 '무국적자' 김천일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동구 길동에서 CBS노컷뉴스 취재진에게 자신이 노숙할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수연 기자재북 화교 출신 '무국적자' 김천일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동구 길동에서 CBS노컷뉴스 취재진에게 자신이 노숙할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수연 기자
천일씨는 재북 화교 출신 '무국적자'다. 그는 1992년 탈북해 2004년 어렵사리 한국에 들어왔지만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미 천일씨의 이야기가 세간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2007년 말에서 2008년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등 그의 딱한 처지를 다수 언론이 보도해 유명세를 탔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의 기구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와 여러 전문가들이 천일씨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적극적인 국적 판정 절차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올해 초 서울 강동구 길동 인근을 떠돌며 노숙인이 된 사연은 무엇일까. 김씨의 지난 20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北에서 '짜개바지'와 놀던 아이

김천일씨는 북한 평양에서 중국인 혈통 부친과 북한 주민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족사진 속 앞줄이 그의 부모님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김천일씨는 북한 평양에서 중국인 혈통 부친과 북한 주민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족사진 속 앞줄이 그의 부모님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제공
천일씨는 북한에서 중국인 혈통 아버지와 평양시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지만, 3살 때 동해바다와 맞닿은 함경북도 경성군으로 이사했다.

종종 옆집의 '짜개바지'(어릴 적부터 매우 친했던 소꿉친구를 뜻하는 북한말) 친구와 강가에 놀러 가 그물이나 손으로 물고기를 잡았던 유년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가족이나 친척과 바닷가에 놀러 가 조개를 줍기도 했다. 그때 그는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북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될 때쯤 그는 부친에 의해 북한 내 화교 신분을 얻었다고 한다. '김화걸'이라는 중국식 이름도 생겼다. 천일씨는 "아버지는 해방 후에 북한에 들어가서 평양에서 번역원으로 일했다"며 "이후 아버지가 정치적 숙청을 당하게 되면서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화교로 신분을 바꿔줬다"고 설명했다.
김천일씨가 지난 4월10일 경기도 광명시의 한 교회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수연 기자김천일씨가 지난 4월10일 경기도 광명시의 한 교회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수연 기자
북한엔 천일씨와 같은 화교가 많을 땐 3만 명까지 이르렀다가 현재는 5천 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 걸로 추산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기 북한화교 사회의 실태'(이정희), '북한 화교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연구'(이휘성) 등 관련 연구와 탈북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까지 북한 땅에 남아 있는 재북 화교들은 대부분 해방 전후로 북한땅에 이주해 2~3세까지 쭉 떠나지 않고 거주하는 경우라고 한다.

북한은 1950~60년대 대대적으로 화교들을 귀화시켰다. 이후 1970~80년쯤부터는 다시 화교 출신들이 국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천일씨처럼 태어날 땐 북한 국적을 받고 태어난 화교 출신들의 자녀들도 부모에 의해 화교 신분을 취득하기도 했다.

고려대 남성욱 북한학과 교수는 "북중 관계의 변화에 따라 화교들에 대한 정책도 계속 달라진 것"이라며 "화교면 좋은 대우를 받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북한은 순수혈통주의가 강해서 오히려 화교들을 굉장히 안 좋게 차별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 본국에서는 이들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특성상 북한 국적을 얻은 적 있던 부모 세대의 경우 중국에서의 신분인 '호구'를 상실했거나, 자녀들의 경우 본국에 기록이 없어 국적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北 탈출, 韓 추방, 中 거부

2007년부터 여러 언론이 김천일씨의 기구한 사연을 보도했다. 한겨레·경기일보·SBS·쿠키뉴스·연합뉴스 보도 캡처2007년부터 여러 언론이 김천일씨의 기구한 사연을 보도했다. 한겨레·경기일보·SBS·쿠키뉴스·연합뉴스 보도 캡처
천일씨 역시 1992년 통제가 일상이었던 북한을 떠나기로 결심한 뒤 중국에 도착했지만 국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한국행을 꿈꿨지만 10년 가까이 여러 차례 주중한국대사관을 찾아 도움을 요청해도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다 2004년 연길에서 다른 탈북자들 18명 일행과 만나게 되면서 몽골을 거쳐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천일씨는 "탈북민으로 인정돼 한국 국적을 받고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탈북민 인정 여부를 가리는 정부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옮겨졌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부친이 중국인 혈통이라는 사실을 말하자 조사관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곧 천일씨는 중국인으로 판정돼 법무부로 인계됐다. "어머니가 북한 사람이고, 나 역시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홀로 출입국관리소에 남겨졌다.

한국 정부는 곧장 천일씨를 중국으로 추방 조치했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두 번째' 그를 거부했다. 중국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그를 한국으로 다시 강제송환한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시 한국땅에 돌아왔다.

처치곤란. 그의 처지가 딱 그랬다. 천일씨는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갇혔다. 작은 수용시설에서 보낸 세월만 1년이 넘었다. 중간중간 '보호일시해제 조치'로 풀려나기도 했으나 보증 철회 등의 이유로 다시 수용되길 반복하다 2007년이 2월이 돼서야 완전히 풀려났다.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들어온 지 2년여 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요 일간지와 방송국에서 천일씨의 기구한 사연을 전하기 시작했다. 천일씨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당시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을 피력했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관심은 곧 사그라들었고, 그는 무방비로 우리 사회에 던져졌다.

'무국적자'가 살아온 인생

김천일씨의 외국인등록증엔 'STATELESS'(무국적)이라고 적혀 있다. 박수연 기자김천일씨의 외국인등록증엔 'STATELESS'(무국적)이라고 적혀 있다. 박수연 기자
한국 정부가 판정한 그의 국적은 '무국적'. 그는 외국인등록증을 받았고, 거기엔 'STATELESS'(무국적)라고 적혔다. 마지못해 건네진 판정 서류와 함께 그는 한국땅에서의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됐다.

무국적자 신분으론 취업도 쉽지 않았다. 공사장 일용직을 전전하다 다른 노동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고, 밀린 일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했다. 은행 계좌 발급 등 일상에서도 각종 어려움이 뒤따랐다. 6개월 이상 체류 외국인에 대한 건강보험 지역가입 의무화가 시행된 2019년 이전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아파 병원에도 가지 못했다.

특히 체류증 연장이 김씨에겐 가장 큰 고통이었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마다 체류증을 연장해야 하는데 신원 보증인이 필요하고, 거주 확인서 등을 제출해야 했다. 신원보증을 부탁할 때 어김없이 차가운 시선들이 돌아왔다. 연장이 안 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늘 불안함에 시달렸다. 천일씨는 이런 과정이 "트라우마였다"고 했다.
김화걸씨는 현재 경기도 광명시의 한 교회의 도움을 받아 사진 속 좁은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다. 박수연 기자김화걸씨는 현재 경기도 광명시의 한 교회의 도움을 받아 사진 속 좁은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다. 박수연 기자
급기야 지난해 걱정은 현실이 됐다. 거주하던 고시원장이 거주 확인서 서명을 거부하면서 그는 체류증 연장 시기를 놓쳤다. 즉각 벌금이 부과됐고, 천일씨는 일단 일을 해서 벌금부터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벌금은 또 쌓였고, 휴대전화 통신까지 막혔다.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는 결국 고시원비를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그렇게 지난 2월 길거리로 쫓겨나 노숙인으로 전락했다.

북한에서 온 30명의 유령

탈북자 출신인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이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수연 기자탈북자 출신인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이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수연 기자
탈북자 지원 단체인 탈북난민인권연합에 따르면, 천일씨처럼 탈북해 국내에 들어왔으나 '무국적'으로 판정된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는 약 30명 정도다.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만난 이들은 대부분 김씨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은 그동안 천일씨를 비롯해 다수의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들을 지원하며 법무부 등에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해왔다. 김 회장의 말이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에 항의했지만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기르는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중국 글씨로 자기 이름도 쓸 줄 몰라요. 북한 사람인데 중국인 혈통이란 이유로 탈북민 판정에서 아예 배제돼 온 겁니다. 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이제 법무부나 출입국관리소는 반성하고 이들이 최소 사람답게는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천일씨는 현재 경기도 광명의 한 교회에서 보호받고 있다. 김씨는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여전히 한국에 온 걸 후회하진 않는다"면서 "당장 한국 국적을 받진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지원이라도 받아 살아갈 수 있게 정부가 배려해 주길 부탁드린다"고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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