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에도 '최고가 동결'…소비·물가 딜레마에 갇힌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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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최고가격 또 동결…휘발유 1934원·경유 1923원 유지

내리면 '소비 폭증', 올리면 '물가 쇼크'…정책 운신 폭 좁아
KDI "물가 0.8%p 인하 효과 분명하나 재정 부담 고려해야"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미국과 이란의 휴전 연장으로 국제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정부는 4차 최고가격 동결을 결정했다. 가격을 내리자니 에너지 절감 기조가 흔들리고, 올리자니 민생 물가가 치솟을 수 있어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세 번째 최고가격 동결…"국제유가·민생 등 종합 고려"


산업통상부는 24일 0시부터 2주간 적용될 4차 최고가격을 현행 3차 가격과 동일하게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도매가는 리터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을 유지한다. 2차 발표 이후 세 차례 연속 동결이다.

정부는 불확실한 중동 정세와 서민 경제 부담을 이번 결정의 주된 배경으로 꼽았다. 산업부 남경모 장관정책보좌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소비 절감 효과와 서민 경제의 부담, 물가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며 "고유가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 부담 경감을 위해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유가 통제에 효과적이라는 점도 강조한 바 있다. 주요국과 비교해 국내 석유 제품 가격의 등락 폭이 안정적인 수준이라는 것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21일 기준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전쟁 전 대비 각각 18.4%, 25% 상승했다. 이는 일본(7.28%·9.40%)보다는 높지만, 유럽(휘발유 17%·경유 30%)과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최고가격제가 적용되지 않았을 경우와 비교하면 인하 효과는 유종별로 최대 970원에 달한다. 산업부는 최고가격제 미시행 시 휘발유는 리터당 약 2200원, 경유는 2800원, 등유는 2500원까지 치솟았을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가격보다 각각 260원, 870원, 970원 낮은 수준에서 가격이 억제되고 있는 셈이다.


인상도 인하도 어려운 '정책의 딜레마'…소비와 물가 사이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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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번 동결 결정 이면에는 정책적 운신의 폭이 좁아진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제로 발표 직전까지 관계 부처 내에서는 휘발유 가격의 인상 여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지표상으로는 인상 요인이 적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연장으로 국제 유가가 하락 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산업부 집계 결과 최근 2주간 국제 석유제품 가격은 휘발유 -8%, 경유 -14%, 등유 -2%의 변동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가격을 내릴 경우 '에너지 절감'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전체 소비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2% 줄었으나, 가격 발표 시점을 전후해 소비가 일시적으로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기름) 소비를 줄여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늘고 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렇다고 재정 부담을 이유로 가격을 올리기엔 물가 압박이 너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최고가격제는 지난달 소비자물가를 최대 0.8%p 낮추는 효과를 냈다. 특히 경유는 화물차나 농기계 등 생계형 수요가 많아 가격 인상이 곧장 민생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남 정책보좌관은 "소비 절감을 고려하기는 했다"면서도 "다른 서민 경제 부담, 물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깊어지는 재정 부담…'출구전략' 목소리 나오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최고가격제가 한시적 대응책인 만큼, 이제는 출구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동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가격 차액을 메워야 하는 정부의 재정적 한계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마창석 KDI 연구위원은 "국제 유가 급등기에 가격을 고정하면 재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물가 억제 효과는 분명하지만 재정 부담 우려를 충분히 고려해 제도 유지 여부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정부는 제도 폐지에 선을 그었다. 남 정책보좌관은 "중동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해 당장 폐지를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며 "향후 미국과 이란의 휴전이 진전되고 호르무즈 봉쇄가 풀리고 국제 유가가 안정된다고 판단되면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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