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거지맵' 전국 순위 1위에 오른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식당.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식당 안 자리가 가득 차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지은 기자"거지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오픈채팅방 '거지방'에서 한 참여자가 무지출을 응원하며 이렇게 외쳤다. 거지팅은 '거지'와 '화이팅'의 합성어다. 다른 '거지방'에서는 "요즘 물가 오르고 살기도 팍팍한데 우리끼리 으쌰으쌰 하자"는 말이 나왔다.
고물가 시대에 중동 전쟁 등으로 경제가 더욱 불안정해지면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스로를 '거지'라 부르는 이들이 '거지방'에 모여 서로의 지출을 평가하고, '거지맵'을 통해 1만 원 이하 메뉴를 파는 식당을 공유하고 찾아가는 등 생활비 아끼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4천 원에 든든"…'거지맵'으로 식당 찾는다
'거지맵' 웹사이트 캡처"4천 원에 든든하게 잘 먹고 나와서 기분이 좋아요"
23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온 최민지(31)씨는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식비라도 아끼려고 한다. '거지맵'이나 SNS에서 저렴하고 맛있는 곳이라고 해서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거지맵'은 8천원 이하의 저가 식당 정보를 지도 형태로 알려주는 서비스다. 지난달 20일 웹사이트로 시작됐고, 이달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출시됐다. 23일 기준 웹과 앱의 누적 이용자 수는 146만 명을 기록했다.
'거지맵' 전국 순위 1위에 등록된 서울 서대문구 한 식당의 4천 원짜리 기본 메뉴. 김지은 기자이곳은 '거지맵' 전국 순위 1위에 오른 식당이다. 건물 밖에는 '돈가스 4천 원' 이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이른 점심시간임에도 혼자 방문한 손님들끼리는 좁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야 할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자리가 없어 밖에서 잠시 기다리는 손님들이 생기기도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돈가스 1장을 주문하고 4천 원을 계산한 지 1분도 안 돼 두툼한 돈가스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4천 원이라는 가격에도 한 끼로는 충분한 돈가스 1장, 샐러드, 밥과 국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전날(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식당도 빈자리 없이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곳 역시 '거지맵'에 등록된 식당으로, 국밥은 6천 원, 정식 메뉴는 9천 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온 송아영(32)씨는 "요즘 물가에, 특히 강남에서 9천 원 정도에 든든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며 "이 근처를 자주 오는데 '거지맵'에도 보이길래 미리 저장을 해뒀다"고 말했다.
거지맵에서는 식당의 가격, 메뉴부터 현금 결제가 더 싸다는 등의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식당별 댓글로 의견과 변동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거지맵을 만든 최성수(34)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거지방'에서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아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중에서도 식비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저렴한 식당 정보를 한 번에 시각화해서 보여주면 사람들이 유용하게 쓸 수 있겠구나 싶어서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절약하려는 사람들이 거지맵을 활용해 저렴하면서도 건강한 식사를 했으면 좋겠고, 절약을 통해 건강하게 자산 형성을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거지방'에 모여 "할인쿠폰 있다" "직접 만들어 먹자"
오픈채팅방 '거지방'에서 참여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픈채팅방 캡처SNS 오픈채팅방을 통해 운영되는 '거지방'도 꾸준히 인기다. 지금도 '거지방'을 검색하면 10대, 40대, 여성, 소비습관 고치기 등 다양한 채팅방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서로의 지출을 평가하고, 돈을 아낄 방법을 조언하는 대화가 오간다.
한 거지방에서는 누군가 "지하철에서 피자 냄새가 난다. 먹고 싶지만 브랜드 피자는 너무 비싸다"고 하자 다른 참여자가 "나는 그래서 어제 고구마 사서 삶아놨다. 직접 고구마피자 만들어 먹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참여자들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피자 반죽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묻는 등 관심을 보였다.
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데 사치일까"를 묻자 "오늘 배달앱에서 포털 사이트 포인트로 주문하면 6천 원 할인쿠폰을 준다"고 저렴하게 먹을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었다.
각자 내고 있는 통신사 요금을 캡처해 보내고, 이에 대해 평가하기도 했다. 3만 원 수준의 요금을 낸다는 한 참여자를 향해 "왜 이렇게 비싼 걸 쓰냐"며 알뜰폰을 추천하는 참여자도 있었다. 또 선택 약정 등 통신 요금을 더 저렴하게 이용할 방법을 나누기도 했다.
자칫 궁상맞아 보일 수 있는 순간을 유머와 응원으로 승화한 모습이었다.
무지출·저소비 챌린지도…"고물가 버티는 연대"
무지출, 저소비 챌린지가 이뤄지는 '거지방'의 대화 내용. 오픈채팅방 캡처SNS를 통해 '무지출, 저소비 챌린지'도 활발히 이뤄진다. 해당 챌린지를 중점으로 하는 한 거지방에서는 매달 지출 금액과 다음 달 목표 지출액을 공유한다. 채팅을 통해 그날의 무지출, 저소비를 인증하기도 한다.
한 참여자는 편의점 샌드위치와 삼각김밥 사진을 보내며 "오늘 점심은 2개 합쳐서 1660원 썼다"고 하자 다른 참여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싸게 샀는지' 등을 물으며 칭찬했고, "편의점 멤버십 할인, 구독 쿠폰, 나라사랑카드 중복할인으로 결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식자재를 대량으로 사는 등 알뜰하게 먹는 방법도 공유한다. 거지방에서는 "대용량 오트밀과 아몬드를 사서 먹으면 6개월 간다", "쌀도 5kg 보다 10kg 더 싸서 생각해봐야겠다"는 대화가 오갔다.
또 한 참여자는 "샐러드는 인터넷에서 500g이나 1kg 팩을 사고, 채소는 나물이나 볶음 가능한 것을 사서 상할 것 같을 땐 비빔밥을 해 먹는다. 애호박, 양파, 감자 등은 총총 썰어 볶아서 바로 냉동 보관한다. 짜장, 마파두부, 볶음밥 등에 활용하면 된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거지방', '무지출 챌린지' 등의 인기는 소비자 유행이 변화한 현상이며, 고물가 시대에 힘들게 돈을 아끼는 이들의 연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명예교수는 "예전에는 SNS상에서 명품, 과소비 등을 자랑하는 'YOLO', '플렉스'가 유행했는데, 요즘은 그런 과시를 오히려 부정적으로 본다"며 "대신 '내가 아껴서 부를 이만큼 축적했다', '투자에 성공했다'는 것이 더 긍정적으로 평가받게 된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고물가에 너무 오래 시달리고 청년들은 취업도 잘 안되는 상황에서 돈을 아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같이 극복하자'는 마음으로 연대하는 현명한 방식"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