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장사는 멈췄지만, 폐업은 못했다…늘어난 '멈춰 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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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안양1번가, 카페·음식점 다수 문 닫아
'혹시'라는 희망에 폐업 결정 못한 자영업자들
저녁시간대 인계동 거리, 술집·식당까지 불 꺼져
폐업 지원은 있지만 휴업자는 정책 사각지대
폐업 100만 명 시대…휴업자는 통계 밖
자영업자들 "체감 위기는 숫자보다 훨씬 크다"

비교적 한적한 모습의 수원시 인계동 거리(왼쪽)과 안양시 안양1번가(오른쪽). 이준석 기자비교적 한적한 모습의 수원시 인계동 거리(왼쪽)과 안양시 안양1번가(오른쪽). 이준석 기자
16일 정오쯤 경기 안양시 안양1번가에는 점심시간임에도 문이 굳게 닫힌 카페와 음식점들이 눈에 띄었다.

'임대 문의'나 '폐업' 안내문은 보이지 않는다.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고, 유리문 너머로는 테이블과 의자, 계산대가 정리되지 않은 채다. 장사를 완전히 접은 흔적도, 다시 시작할 준비도 아닌 애매한 상태의 가게들이다.

카페를 운영하던 A씨는 지난해 말부터 가게 문을 닫았다. 매출이 급격히 줄면서 운영을 이어가기 어려워졌지만, 폐업 신고는 하지 않았다. 그는 "장사를 안 한 지는 몇 주주 됐지만, 폐업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점심시간에 문을 열어도 손님이 거의 없고, 그렇다고 가게를 정리하면 다시 시작할 기회 자체가 사라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A씨의 가게 안에는 커피 머신과 진열장이 그대로 놓여 있다. 원두 봉투와 컵도 치우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는 "혹시라도 다시 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손을 못 대고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7시쯤 경기지역 최대 번화가 중 한 곳으로 꼽히던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거리에도 비슷한 장면이 이어졌다.

퇴근한 직장인과 청년 손님들로 붐벼야 할 음식점과 술집 일부는 불이 꺼진 채였다. 이들 가게 안에는 테이블과 주방 집기, 술병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출입구 앞에는 대출 광고 전단지와 버려진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올해 초부터 휴업에 들어갔다는 음식점 사장 B씨는 "2년 전 중순 권리금 5천만 원을 내고 가게를 열었는데, 권리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임대 계약이 끝나게 생겼다"며 "이미 장사를 접기로 결심했지만, 권리금을 낼 임차인이 나타날 때까지만이라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은 '폐업' 중심…휴업은 선택지가 아닌 버팀목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인계동 거리의 한 음식점. 이준석 기자굳게 문이 닫혀 있는 인계동 거리의 한 음식점. 이준석 기자정부와 지자체, 금융권은 폐업하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철거 비용 지원이나 재기 상담, 금융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은 대부분 '폐업'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프랜차이즈 매장의 경우 계약 기간이 남아 있으면 중도 해지 위약금이나 간판·집기 철거 비용 부담이 뒤따르고,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자영업자들은 상권 침체로 권리금이 크게 떨어져 폐업과 동시에 손실을 확정 짓게 된다. 여기에 임대차 계약과 대출·보증 문제까지 겹치면 폐업은 선택이 아니라 결단에 가까워진다.

결국 자영업자들은 '지금 정리하는 손실'과 '버티며 감당하는 손실'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게 되고, 그 결과 장사를 멈춘 채 시간을 보내는 휴업 상태가 길어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폐업은 100만명 넘어섰지만…휴업자는 통계 밖


    자영업의 어려움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과 국세청에 따르면 2024년 폐업한 자영업자 수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고, 지난해 역시 1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자영업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폐업 신고를 하지 않고 가게 문을 닫은 휴업 자영업자는 폐업 통계에 포함되지 않고, 사업자등록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자영업자 수 통계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는 영업을 중단했지만 통계상으로는 여전히 '존재하는 가게'로 남는다.

자영업자들은 통계에 드러난 수치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위기가 훨씬 크다며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백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장은 "현재 우리나라 유통 구조는 쿠팡 같은 대형 독점 기업이 소상공인의 수익까지 가져가는 구조"라며 "정부가 대형 플랫폼 기업과 소상공인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창업 구조 자체의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창업의 문턱이 지나치게 낮은 것도 문제"라며 "프랜차이즈는 창업 희망자들에게 장미빛 전망만 제시하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은 교육을 통해 창업이 얼마나 힘들고 수익을 내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부터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상업지역 내 주거복합건축물의 비주거시설 의무 비율을 기존 20%에서 10%로 낮춘 것은 상가 과잉을 줄이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며 "이 같은 상가 공급 조절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자영업자들의 출혈 경쟁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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