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 속 민주당, 비정한 민주주의[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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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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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진 성남시장(노컷뉴스 자료사진)과 故장제원 의원 아들 용준씨(래퍼 노엘 인스타그램)신상진 성남시장(노컷뉴스 자료사진)과 故장제원 의원 아들 용준씨(래퍼 노엘 인스타그램)"장제원 의원이 아버지로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면 후안무치 조국에 지친 국민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지난 2019년,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이 페이스북에 장제원 의원을 겨냥해 썼던 글이다.

지금보다 더 신출내기였던 기자는 눈을 의심했다. 순진하게도, 신 의원 계정이 해킹된 건 아닐까 싶었다.

물론, 아들이 저지른 음주운전과 운전자 바꿔치기는 중범죄다. 훗날 징역형이 선고됐다.

다만 자식 문제로 곤욕을 치르던 같은 당 후배 의원에게 바로 이렇게 공개적으로 사퇴를 권한다는 게 의아했다. 그것도 '조국 전 장관 탓에 국민이 지쳤다'는 빈정까지 섞어서…. 권면이 정말 필요했다면 조용히 만나거나 전화로 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신 의원에게 물었더니 직접 작성한 글이 맞다고 했다. 총선을 앞둔 여의도의 문법은 그렇게 비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바로 그 '비정함' 덕에 민주주의가 '역동성'을 갖춘다는 역설을.

저 살자고 동료를 밀어내는 일이나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뛰어 내리는 일이 비겁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 또한 정치이고 유권자를 의식한 시도가 아닌가. 제 식구 지키기만 고집하다 민심과 멀어지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전 원내대표. 황진환 기자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전 원내대표. 황진환 기자반대로, 동료를 예우한답시고 꾸물거리다 '경직성'의 함정에 빠져버린 사례가 눈앞에 있다. 바로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대하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얘기다.

자녀 취업 특혜부터 공천 헌금까지 의혹은 파도 파도 끝이 없는데 그는 원내대표직 사퇴 이후 당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동료들이 '비를 같이 맞아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제명 당해도 탈당은 없다"며 버틴다.

이렇게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지만 출마자 몇 명만 '선당후사'를 에둘러 읖조릴 뿐 대부분 관망하는 분위기다. 의원들에게선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 줄 서는 데 바쁘다 보니 거기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는 한심한 변명까지 들린다.

이쯤 되니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공천 칼잡이' 출신으로서 이재명 대통령이나 자당 의원들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못 건드리는 것 아니냐'고 넘겨 짚는 사람이 제법 많아졌지만 누구 하나 대놓고 나서서 반박하지도 못 한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에게 '공천 헌금'을 건넸다는 자백성 탄원서를 작성한 전직 구의원 김모씨가 9일 서울경찰청 마포청사로 출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에게 '공천 헌금'을 건넸다는 자백성 탄원서를 작성한 전직 구의원 김모씨가 9일 서울경찰청 마포청사로 출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수사기관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세간에는 여당이 그에게 선을 긋지 않자  경찰이 눈치 보느라 소극적으로 수사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이미 퍼지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 관련 압수수색이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핵심 관련자들이 증거를 인멸하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김 전 원내대표의 차남과 수행비서, 의혹의 키맨인 이지희 동작구의원, 강선우 의원에게 1억 원을 건넸다 다시 받았다는 김경 서울시의원 모두 최근에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으로 의심된다.

정청래 대표는 당 윤리심판원에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한 감찰 조사를 지시했지만 그 대상에서 의혹의 가장 큰 줄기인 공천 헌금 문제가 담길 지도 불투명하다. 지시 단계에선 포함되지 않았었다. 심지어 김 전 원내대표는 이마저도 절차를 미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손절'이 언제나 옳은 카드가 되지는 않을 수 있다. 조직은 책임을 덜고 평판을 지킬 수 있겠지만, 자체 조사나 처분의 기회를 잃는다면 외려 의혹의 당사자에게만 좋은 꼴이 되기 때문이다. 범죄에 연루된 공무원의 사표를 정부가 당장 수리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 전술했듯 탈당이나 제명은 그 자체로 철저한 수사와 그에 관한 억측을 막기 위한 선결 과제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이 사안은 이미 민주당을 통째로 뒤흔들 암덩어리가 됐다. 이대로라면 출마자를 비롯한 구성원들에게 '힘만 있으면 공천헌금 따위는 가벼이 여겨도 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지도부가 내건 '공천개혁' 구상이 그저 한가하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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