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크리스 브라이언트 영국 산업통상부 부장관이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 타결을 발표한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한국과 영국이 자동차, K-푸드 등 주력 수출품의 원산지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영국 고속철을 포함한 정부조달 시장도 추가 개방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을 타결했다.
산업통상부는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크리스 브라이언트 영국 산업통상부 통상담당 장관이 한·영 FTA 개선 협상을 마무리하고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상은 2023년 초 시작된 이후 약 2년여 만에 결실을 맺었다.
이번 개선 협상의 핵심은 원산지 기준 완화다. 산업부는 "한영 FTA 원 협정에서 상품 시장을 대부분 개방해 이번에 추가 개방은 논의하지 않았다"며 "우리 주력 수출품에 적용되던 엄격한 원산지 기준을 완화하고, 정부조달, 서비스 등 분야에서 성과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대영 수출의 36%를 차지한 자동차의 경우,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요구되던 부가가치(부품 등 재료 비중) 기준이 기존 55%에서 25%로 대폭 낮아졌다. 기존에는 당사국(한국)에서 55% 이상의 부가가치가 발생했음을 증명해야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 개선 협상으로 그 기준이 대폭 완화된 것이다.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특히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제조 과정에 투입되는 리튬·흑연 등 수입 원료의 가격에 따라 산출되는 부가가치가 크게 달라져 원산지 기준 충족이 어려웠는데, 이번 기준 완화로 한국 전기차 기업의 FTA 관세 혜택 적용이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K-뷰티와 K-푸드 등 유망 소비재의 원산지 기준도 완화됐다. 화장품 등 화학제품은 당사국에서 화학반응·정제·혼합 등 공정이 이뤄질 경우 무관세가 적용된다. 만두·떡볶이·김밥·김치 등 가공식품도 주요 원재료를 제3국에서 조달하더라도 국내에서 생산하면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진 밀가루나 채소 원료를 수입했다면 최대 30%의 관세를 내야 했다.
영국 고속철 시장의 추가 개방도 이번 협상의 주요 성과로 꼽힌다. 그동안 우리 측만 개방해왔던 불균형을 해소하고, 유럽 고속철 시장 진출을 모색해온 우리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종시·북아일랜드 주택 행정부 등 주요 기관과 광고·세무·번역 등 서비스 조달 시장도 추가 개방된다.
공급망 협력도 체계화됐다. 양국은 희토류, 요소수, 배터리 등 핵심 원자재 공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망 협력 챕터를 신설하고, 교란 발생 시 10일 이내 긴급회의를 여는 핫라인을 운영하기로 했다.
디지털 규범과 AI 협력도 대폭 강화됐다. 디지털 규범 분야에서는 국경 간 데이터 이전 자유화, 컴퓨팅 설비 등의 현지화 요구 금지, 소스 코드 제출 요구 금지, 온라인 소비자 보호 규범 등 신규 규범을 대폭 반영했다. AI 분야에서는 기술 선도국인 영국과의 상세 협력 방안을 마련하고, 기업 간 연구개발 강화 및 관련 투자 증진, AI 육성을 위한 정책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업 인력 이동을 가로막던 비자 제도도 손질됐다. 영국 내 제조공장 설립을 돕기 위해 파견된 한국 엔지니어와 설비 유지·보수 인력의 원활한 입국을 지원하고, 영어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 비자 유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협력업체 인력도 서비스 계약을 통해 영국에 파견할 수 있게 해, 과거 조지아주 사태 등 해외 투자 과정에서 발생했던 인력 비자 문제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AI, 자율주행차, 생명공학, 첨단 제조 분야 협력을 논의하는 '한·영 혁신위원회'를 신설해 기술 협력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투자자 보호 분야에서는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S)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규범도 도입됐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개선 협상 타결 이후 양국 취재진과 질의응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여 본부장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통상 환경에서 자유무역 질서를 공고히 하고, 유럽의 핵심 파트너인 영국과의 경제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법률 검토와 국회 비준 등 협정 발효 절차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