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동시 반발'…노란봉투법 시행령 정비 '삐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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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창구단일화 틀 안에서 '분리' 허용" 시행령 통해 절충안 내놨지만…
법조계 "창구단일화 절차 적용 강제, 법리적 의문"
노동계 "교섭 봉쇄하는 오징어게임" vs 경영계 "단일화 제도 형해화"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 2·3조)의 하위 법령이 입법예고 첫날부터 냉혹한 평가를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겠다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내 분리 허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법학계의 우려 섞인 시선은 물론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으로부터 동시에 비판 받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란봉투법 시행령 개정안은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노란봉투법의 취지를 절충한 결과다.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틀을 유지하고, 대신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교섭단위를 분리함으로써 하청 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절충안'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번 시행령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노란봉투법의 '확대된 사용자 정의'와 '기존 교섭 제도' 간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내년 3월 시행되는 노란봉투법은 원하청 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을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현행법상 원칙인 교섭창구 단일화를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하청 노조는 원청과 교섭하기 위해 원청 정규직 노조 등 사업장 내 모든 노조와 섞여 교섭 창구 단일화해야 한다.

이 경우 조합원 수가 적고, 조직이 약한 하청 노조는 거대 원청 노조에 밀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 노란봉투법의 취지가 희석되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고심 끝에 '창구단일화'라는 뼈대는 남겨두되, 노동위원회를 통해 '별도 방'을 배정해주는(교섭단위 분리) 우회로를 뚫어주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우회로에 노사 모두 반발하는 모습이다.

勞使 모두 비판…"교섭회피권 부여" vs "단일화 형해화"

노동계는 이번 시행령을 사실상의 '교섭 허가제'이자 '봉쇄 조치'로 규정하고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양경수 위원장은 전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1차로 원청과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고, 2차로 하청 내에서의 창구단일화 절차를 또다시 거치라고 한다"며 "두 번 세 번에 걸쳐 사용자들이 교섭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위원장은 "교섭 자리에 앉기까지는 또다시 수년이 걸릴 수밖에 없고, 보수적인 법원에 의해 교섭권을 얻을 수 있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사자인 금속노조 이상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장은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긴 시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거라도 어디야' 라며 만족했었다"면서도 "노동부 시행령은 이러한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는 행위"라고 했다. 공공운수노조 김선종 부위원장 역시 "연세대와 세브란스병원 등 수십 개의 사업장과 하청업체가 얽혀 있는데, 정부는 어떠한 기준도 없이 이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려 한다"며 "현장 혼란을 폭발적으로 확대시킬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손잡고'도 성명을 통해 "노동부의 시행령은 제도적 절차로 벽을 세우고, 그 벽을 하나하나 깨부숴야만 간신히 교섭을 쟁취할 수 있는 거대한 '오징어게임'의 룰 안에 노동자들을 몰아넣는 것"이라며 "당초 노조법 개정의 불을 지핀 '사용자의 책임'이 실종됐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화하는 손경식 경총 회장. 연합뉴스대화하는 손경식 경총 회장. 연합뉴스
정부가 눈치를 살폈던 경영계조차 등을 돌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노동계와 정반대의 이유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섭단위 분리를 너무 쉽게 허용해줘서 산업 현장의 혼란을 키운다는 것이다.

경총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신설된 시행령의 교섭단위 분리 결정기준은 기존의 노조법에 규정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등을 구체화하는 수준을 넘어서 노동조합 간 갈등 유발 및 당사자의 의사까지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이렇게 모법의 위임 범위를 넘어서 무분별하게 교섭단위 분리 결정기준을 확대할 경우, 15년간 유지되어온 원청 단위의 교섭창구 단일화가 형해화되어 산업현장의 막대한 혼란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법리적 모순 지적도…정부 시행령에 오히려 '혼란'

심지어 법리적으로도 모순이란 지적까지 나온다.

노동법 전문가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귀천 교수는 "현행 노조법상 창구단일화 절차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 두 개 이상 노조가 있을 때 적용되는 것"이라며 "여러 개 하청사업들과 원청사업 내에 있는 노조 모두에게 창구단일화 절차를 적용하도록 강제한다는 게, 과연 시행령을 근거로 할 수 있는 것인지 법리적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기존 중노위 판정이나 행정법원 판결처럼, 하나의 하청 사업 내에 복수노조가 있다면 거기서(하청 단위) 단일화를 한 후, 바로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비판했다. 상위법인 노조법이 예정하지 않은 '기업 간 강제 병합'을 시행령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서울고법은 현대제철 판결에서 "원청은 하청 노조와 개별적으로 교섭할 의무가 있다"며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직접 교섭을 인정했다. 중노위 역시 2021년 판정에서 "하청 단계에서 단일화를 거쳤다면 원청 단계에서 다시 단일화할 필요 없다"고 해석한 바 있다.

정부가 내놓은 고육지책은 노동계에는 '교섭권 박탈'로, 경영계에는 '제도 붕괴'로 읽히며 사면초가에 빠진 모양새다. 정부는 내년 1월 5일까지 입법예고를 하고, 추가 의견수렴을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시행령 발표에도 혼란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서 민주노총 등 또 전문가들에서 일부 비판이 있는 걸로 잘 알고 있다"며 "세상에 어디에도 완벽한 제도는 없고 특히 노사 관계에서 법 제도를 뛰어넘는 자산은 신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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