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 후속협상 열쇠는 '안보적 합리성'[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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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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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내 건조' 진의 묻자 美국방 "긴밀한 협조" 원론적 답변
시간, 비용, 역량, 운용 측면에서 '국내 건조' 타당성 설득 논리 충분
낙후한 필리조선소에 잠수함 건조 신규투자는 배보다 배꼽 큰 형국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보유에 동의하면서도 '미국내 건조'라는 조건을 걸어놓았다. 아직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진심이라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안보협의차 방한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긴밀한 협조'를 약속했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그는 잠수함 건조 방식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원론적 답변을 했을 뿐이다.
 
자주국방의 숙원과도 같은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실현하려면 더 뜸 들일 여유가 없다. 어렵게 얻어낸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을 고리삼아 어떻게든 속히 기정사실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시정연설에서 핵연료 공급 협의의 '진전'을 언급하고, 이어진 국무회의에서 우리 기술로도 핵잠 건조가 가능하다는 보고가 나온 것은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우리가 정녕 희망하는 것은 국내 기술력으로 자체 건조할 터이니 미국은 단지 핵연료 조달에 따른 족쇄만 풀어 달라는 단순 간략한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핵추진잠수함 협정'(가칭) 신설과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의 두 갈래로 일이 진행되는 게 순서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재처리 허용과 군사 목적 활용과 관련한 협정 개정이 관건이다. 
 
문제는 미국 내 뿌리깊고 완고한 핵 비확산주의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했다고 해도 국무부를 필두로 한 이들의 높은 벽을 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관세협상 타결의 바탕이 된 '상업적 합리성'을 원용한다면 충분한 설득 논리와 명분이 주어진다. 이는 시간, 비용, 역량, 운용의 어느 모로 보더라도 한국 내 건조가 결단코 합당하다는 게 요점이다. 
 
시간 측면에선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미국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할 경우, 막대한 설비 투자와 환경평가, 미국 방산업체 지정 절차 등에 따른 지연이 불가피하다. 
 
지난달 22일 경남 거제의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진수되는 3600톤급 장보고(KSS)‑Ⅲ Batch‑Ⅱ 1번함 장영실함. 연합뉴스지난달 22일 경남 거제의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진수되는 3600톤급 장보고(KSS)‑Ⅲ Batch‑Ⅱ 1번함 장영실함. 연합뉴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필리 조선소 방문 경험을 소개하며 미국 내 건조는 "우리한테 전혀 득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비용 측면에선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국내에 잘 갖춰진 생산설비를 놔두고, 잠수함 1척도 만들어본 적 없는 필리 조선소에 중복 투자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큰 형국이다. 
 
필리를 인수한 한화 입장에서도 계획에 없던 잠수함 건조 설비를 추가 투자하고, 이를 위한 미국 방산업체 지정으로 통제와 간섭을 받는 것은 경영 측면의 또 다른 비용이다. 무엇보다 속도가 장점인 K-방산으로선 전혀 뜻밖에 시간과 비용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역량 측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꼭 필리 조선소가 아니더라도 미국 내 건조를 고집하기 어렵다. 
 
그가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미국의 조선업 쇠락 때문이다. 인력도 없고 시설도 낙후한 필리에서 무턱대고 핵잠수함을 만들라는 것은 누가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워싱턴 주류의 완고한 비확산주의 입장에선 미국의 독점적 핵기술 유출을 염려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측이 거듭 확인하는 바는 핵기술이 아니라 핵연료 제한만 풀어달라는 것이다.
 
운용 측면도 마찬가지다. 설령 이런 모든 난관을 무릅쓰고 용케 잠수함을 만들더라도 창정비나 유지‧보수 때마다 미국 동부해안까지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한다. 이만저만한 비효율이 아닌 셈이다.
 
상업적 합리성의 핵심은 '윈-윈'도 '제로섬'도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안보적 합리성도 다를 바 없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건조'를 계속 고집하며 역사적 합의를 결과적으로 원점으로 돌린다면 그 후폭풍은 엄청날 것이다. 설마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 그 정도일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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