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원자력(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면서, 안보 아젠다가 더 이상 보수 정당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확산하고 있다.
호주의 원자력 잠수함 프로그램인 '오커스(AUKUS, 호주·미국·영국 안보 협의체)'처럼 고비용·장기 사업 등 여러 난관이 예상되지만, 일단 건조 승인 자체가 '한미 기술동맹 도약의 분수령'이라는 점에서 큰 성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李정부 '원자력 잠수함' 美 승인에…공식 입장도 못 낸 국힘
3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이 공식적으로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외교·안보적 성과라는 게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의 공통된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다음날인 3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나는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훨씬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원자력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핵연료'가 필요한 핵추진 잠수함 건조 자체를 승인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요청에 화답한 셈이다.
한미 원자력 협정 13조는 한국으로 이전된 미국의 원자력 기술에 대해 '어떠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협정의 개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한국은 미국의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지난해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국방안보 측면에서 상당한 쾌거"라고 평가했고, 같은 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원자력 잠수함 추진 과정에서 미국과 상충하는 것이 있겠지만, 차질 없이 진행돼서 우리가 도입하면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가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러한 소식을 반기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등 국민의힘 대선 주자 대부분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공통 공약으로 낸 바 있다.
대표적 군사 전문가인 유용원 의원 역시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개인 소견임을 전제로 어제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요청을 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승인한 것은 잘했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 이런 이슈는 대국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한 국민의힘 의원도 통화에서 "정부·여당 내의 반미 선동이 많이 줄었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목소리를 많이 낮췄다"며 협상 타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도 "원자력 잠수함은 그동안 우리 공론장에서 보편적으로 많이 나왔던 얘기"라며 "누가 집권해도 공통 과제처럼 해야 될 일이고, 이를 모르는 유력 정치인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원자력 잠수함 건조 승인이라는 성과에 대해, 이튿날 열린 최고위원회의 종료 뒤에도 여전히 공식 입장을 내지 못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핵추진 잠수함 승인에 대한 당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확인되는 대로 말하겠다"고 말했다.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도 당 회의에서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회의에서는 관세 협상, 민주당 최민희 의원 축의금 논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관련 국감 증인 채택 문제 등을 주로 다뤘다.
문재인 정부의 미사일 사거리 지침 폐기 이후, 진보 성향 정권이 다시금 핵추진 잠수함 승인이라는 안보 성과까지 따 내면서 보수정당이 흔히 외쳐 왔던 '안보는 보수'라는 구호가 점차 힘을 잃는 셈이다.
'자주국방'으로 '미사일·잠수함' 가져온 민주…野선 '노력 쌓인 것' 반박도
 이른바 '괴물 탄도미사일'로 불리는 현무-5. 연합뉴스
이른바 '괴물 탄도미사일'로 불리는 현무-5. 연합뉴스앞서 문재인 정부는 2021년 5월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사일 사거리 지침' 폐기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한국은 탄도미사일은 물론 우주 발사체 개발과 관련된 모든 제약을 벗었고, 이른바 '괴물 미사일'이라 불리는 '현무-5'의 전력화로 이어진 바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362사업'이란 이름으로 진행됐던 핵추진 잠수함 사업도 이재명 정부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동력을 얻게 됐다.
물론 보수 정부에서 이뤄낸 성과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워싱턴 선언'으로 미국의 핵 작전 기획에 우리가 참여하는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킨 바 있다. 
그러나 핵무기의 실제 사용 권한은 미국 대통령만이 가지고 있는 데다, '자체 국방력 강화' 및 산업 등 측면에서는 원자력 잠수함 보유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1차장을 지냈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보수 진영에선 실제로 군사력을 증강하기보단 극우 선동을 하거나, 미국에 정정당당히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굴종적 경향이 있다"며 "민주 진영에선 한미동맹은 중요하지만, 유사시 우리가 직접 싸울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때문에 미국과 거래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협상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처음부터 '핵무기 제조' 등을 주창한 반면, 민주당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대선 때부터 미국 측과 물밑에서 이야기했다"며 "단, 오해를 막기 위해 한미 정상 간의 신뢰를 확실히 쌓은 뒤에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외교적 노력은 진보·보수와 관계없이 '정부의 성과'로 봐야 한다는 반박도 나온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국민의힘 김건 의원은 "국가 안보에 관한 사항이기에 보수·진보와 관계없이 정부가 연속적으로 계속 노력한 결과"라며 "미사일 사거리 지침의 경우 2010, 2012년 2차례 이명박 정부에서 개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서) 해제까지 이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원자력 잠수함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지속해서 냈지만 민주당은 대선 공약으로 내지도 않았다. 야당의 그러한 노력까지 쌓여 이번 성과를 이룬 것"이라면서도 "협상이 타결되는 시점에 누가 정권을 잡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