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유통업계 1위 쿠팡이 지난해 연매출 41조 원, 영업이익 6천억 원을 올리는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노동환경과 공정거래, 윤리경영 측면에선 여전히 '스타트업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4일 관련 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쿠팡 관련 사안이 여야 의원들의 집중 질의 대상이 됐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와우멤버십 가격 인상 유도, 알고리즘 조작 혐의, 공공기관 출신 영입 논란 등 다방면의 논란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며 사실상 '쿠팡 국감'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취업규칙 변경…'검사의 눈물'로 논란 확대
고용노동부는 최근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가 일용직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취업규칙을 변경한 사실에 대해 법 위반 여부를 본격 검토 중이다. 해당 사안은 사건을 수사한 현직 부장검사가 상관의 수사방해 외압을 눈물로 폭로하며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누구보다 공명정대해야 할 사정기관의 공직자들이 질서 유지와 사회 기강 확립에 쓰라고 맡긴 공적 권한을 동원해 누가 봐도 명백한 불법을 덮어버리거나, 없는 사건을 조작하고 만들어서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된 규칙은 일정 기간 일하지 않으면 그 전 근속기간을 모두 '리셋'해 퇴직금 지급 기준을 새롭게 산정하는 조항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정종철 CFS대표는 국정감사장에서 해당 규정을 원상 복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를 중심으로 '사후 수습'식 태도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노동부는 쿠팡의 취업규칙 원상복구 전까지 조사를 계속해 연내 위법성 판단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쿠팡에 대해 와우멤버십 가격 인상 동의 유도, 끼워팔기, 최혜대우 강요, 배달 수수료 부당 부과 등 의 위법 소지를 지적하며 제재에 착수했다. 최근 3년간 쿠팡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누적 과징금은 약 1628억 원으로, 전체 기업 중 가장 많다.
택배기사 과로사 논란 지속…노사 판단은 충돌
황진환 기자쿠팡 택배기사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도 재차 도마에 올랐다. 지난 1일에 대구 지역에서 쿠팡 주간 배송을 하던 택배 대리점 소속 A(45)씨가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이송 후 5일 사망하자 과로사 논란이 제기됐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 15일 노동부 국감에서 "특별 근로감독이 필요한지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택배노조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택배기사 679명 대상 온라인 설문 결과를 제시했다. 설문 결과 이들의 82%가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했고, 응답자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도 11시간이 넘었다. 평균 휴식시간은 23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측은 노조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주 5일 근무 비율이 주 6일 비율에 비해 더 높고, 3일 이상 휴가를 사용한 기사도 절반을 넘는다고 강조했다.
CLS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에 "이번 택배노조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CLS 위탁배송업체 택배기사의 휴무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이 확인됐다"며 "매일 전체 CLS 위탁배송기사 3명 중 1명은 휴무를 취하고 있으며, 하루 6000명 이상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한국물류과학기술학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CLS 택배기사의 62%는 주 5일 이하로 배송하고 있는 반면, 대기업 타 택배사는 1~5%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측 간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어, 노사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정감사 증인출석도 불발…"사회적 책임도 생각해야"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최근 쿠팡을 둘러싼 논란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원인 중 하나란 시각도 일각에서 나온다. 쿠팡의 실질적인 경영자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지만, '친족의 경영참여가 없다' 등 예외 사유에 해당돼 올해까지도 총수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
공정위는 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돼도 규제 강도에 큰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경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국회나 시민사회가 규정하기 쉽지 않고, 실질적 지배자의 책임회피 소지도 생길 수 있다.
실제로 김 의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음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한국 사업은 박대준 대표가 주도하고 있고, 김 의장은 현재 글로벌 비즈니스를 담당하며 해외 거주 중이라는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오는 28일 정무위 종합감사에서도 증인으로 채택돼 있다.
쿠팡은 특히 지난 5월 이후 노동부 등 공직자 출신 인사 10여 명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가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노동·공정거래 이슈에서 최소 규제선만 지키며 위기를 모면하려는 포석으로 본다. 한 정부 당국자는 "쿠팡은 몸집이 거대해진 대기업인데, 행동은 스타트업처럼 행동한다"며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이젠 사회적 책임도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