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장관, 미국 상무부 장관 면담. 산업통상자원부 제공한미 관세 후속 협상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앞두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액 현금 지불을 놓고 타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지만 외환 시장 민감성에 대해 양측이 이견을 좁히면서 정상들의 최종 결단만 남겨뒀다는 게 정부와 재계의 공통된 분위기다. 최근의 방미 협상 결과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2일 다시 미국으로 출국하는데, 남은 쟁점에 대한 막판 조율이 이번에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공정한 협상"…산업장관 "美측 우리 요구 받아들인 측면"
이날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 정부는 APEC 정상회의를 일주일여 앞두고 3500억달러 규모 대미 금융 패키지 관련 직접 투자 비중을 최대한 낮추는 것에 협상력을 집중하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 20일 미국 측의 전액 현금 투자 요구에 대해 "거기까지는 아니다"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상당 부분 미국 측에서 우리 측의 의견들을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3500억달러 규모 대미 금융 패키지에 대해 전액 현금 지불을 고집하자, 직접 투자는 5% 선에서 하되 나머지는 보증과 대출로 채우는 당초 구상안이 어렵다면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야 한다고 버텨왔다.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투자 비중을 한 자릿수까지 낮추는 것에 사활을 걸어왔다. 두 자릿수로 현금 투자 비중을 늘린다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분납하는 절충안을 제안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다만 두 자릿수까지 늘리는 것에 대해 재계에서는 분납하더라도 부담이 상당하다는 반응이다.
이 가운데 김 장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미국도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대신 적극적으로 합의를 마무리지으려는 제스처로 풀이된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주요국과의 무역협정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공정한 협정을 맺었다"고 언급하면서
APEC 기간 중 두 정상이 최종 합의안에 서명을 하는 극적 타결 가능성에 무게가 더욱 실린 상황이다.
통화스와프 대신 다른 안전판?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찾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오른쪽)과 여한구 통성교섭본부장이 19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타결 분위기가 고조되는 한편, 정부는 마지막 조율 과정에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7월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지만 대미 투자 패키지를 놓고 양측 간 이해가 완전히 달랐던 데 따른 경계심도 발동했다.
김 정책실장은 19일 "이번 방미 협의에서는 대부분의 쟁점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지만 조율이 필요한 남은 쟁점이 한두 가지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통화 스와프 체결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안전판에 대한 조율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PEC 정상회의에서 최대한 합의를 이뤄야 하지만 최소한의 상업적 합리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서명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합의문이라는 것은 양쪽 정상의 이름을 걸고 작성해야 하는 것"이라며 다소 여지를 남겨두는 모습을 보였다.
직접 투자 비중을 우리 정부가 원했던 만큼 낮추지 못하고 이익 배분도 일본에 준하는 수준(원금 회수 전 5 대 5, 회수 이후 9 대 1)에 머문다면 외환 시장 충격을 완화할 확실한 안전판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초 우리 정부는 무제한 통화 스와프 체결을 고수했지만 미국이 난색을 표명하면서 변칙적인 방식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과 미 재무부가 외환안정화기금(ESF)을 활용해 체결한다는 아르헨티나식 모델에 이어 한국 정부와 국책은행이 함께 특수목적법인(SPV)을 설립한 뒤 이 법인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 등도 거론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통화스와프 체결을 두고 논의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이 총재는 "연준(미 연방준비은행) 통화 스와프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와 전혀 부합하는 것이 아다. 그 얘기 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차선책으로 거론되던 미 재무부와의 통화스와프에 대해서도 "검토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통화스와프 대신 한국은행이 미국 재무부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고 한국 정부가 원화를 예치하는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외환시장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또다른 대안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게 정치권과 재계의 설명이다.
김용범·김정관, 李대통령 보고 후 긴급 재방미…막판 조율 관측
최근의 방미 협상 결과를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김 정책실장과 김 장관은 이날 다시 미국으로 출국한다. 김 정책실장은 미국에서 협의 진행 후 귀국한지 사흘 만에, 김 장관은 불과 이틀 만에 다시 방미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 관세 협상과 맞물린 대미 투자 관련 쟁점 협의를 진행했다.
김 정책실장과 김 장관의 재방미 결정은 전날 이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 후 오후 늦게 공지됐다. 이들은 이 대통령에게 러트닉 장관 등과의 세부 협상 진행 경과 등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은 쟁점 등에 대한 협상 방향이 이 자리에서 정해지면서 방미 결정도 긴급하게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여권 관계자는 "(한미 양국이) 의견을 좁혀가는 중"이라며 "쟁점에 대한 국내 논의가 필요했고, 입장을 정리하다가 출국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막판 조율을 위한 방미 결정이 이뤄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