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했는데 왜 또 태워요?"…쓰레기가 말하는 '재활용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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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 
 매일같이 라벨을 떼고, 비닐을 펼쳐 말리고, 종이를 묶는다. 우리는 '재활용률 86%'라는 숫자에 안도하며, '환경을 지켰다'는 뿌듯함으로 하루를 마친다. 그러나 이 모든 분리배출의 결과가 결국 소각로로 들어간다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실 소속 문관식 보좌관(공학박사)이 펴낸 신간 '재활용의 거짓말'은 바로 이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ESG·순환경제 정책 설계와 법 개정에 참여해 온 환경정책 전문가로 '2023 올해의 환경인상' 수상자이기도 한 ​ 저자는 "분리배출의 실천이 아니라, 왜 줄이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활용의 거짓말'은 한국 사회의 '재활용 신화'를 벗기고, 분리배출이 결국 소각으로 귀결되는 구조적 문제를 파헤친다. 정부가 자랑하는 재활용률 86%는 사실상 '불에 태운 양'까지 포함된 통계이며, 진정한 의미의 '물질 재활용률'은 20% 남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관식은 현장 데이터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이 착시의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정부는 실적 중심의 통계를 내세우고, 기업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며, 시장은 플라스틱 가격이 떨어지면 '그냥 태워버린다'. 시민은 꼼꼼히 분리배출하지만, 그 노력의 끝은 결국 소각로다. 저자는 "열심히 분리해도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다면, 개인의 실천은 끝내 구조에 흡수된다"고 지적한다.

헤르몬하우스 제공 헤르몬하우스 제공 
이 책은 문제의 근원을 '민간 위탁 중심 구조'에서 찾는다. 정부는 효율성을 이유로 재활용 체계를 민간업체에 맡겼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논리에 종속된 구조가 되었다. 쓰레기의 행방은 기업의 수익률에 따라 결정되고, 공공의 개입은 점점 어려워졌다. 저자는 이를 "정책의 실효성이 아니라, 시장의 편의가 중심이 된 구조"라 비판하며, 시민·정부·기업이 함께 평가와 감시, 설계에 참여하는 '다층적 거버넌스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책의 핵심은 '책임의 회로'를 복원하는 일이다. 재활용이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의 실질적 출발점이 되려면, 정부의 통제와 투명한 정보 공개, 그리고 시민 감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분리배출의 끝에는 소각장이 아니라, 신뢰와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활용의 거짓말'은 숫자의 환상을 넘어, 환경정책의 근본을 다시 묻는다. 분리배출은 '착한 일상'이 아니라 '불완전한 시스템의 징후'이며, 재활용은 '다시 쓰는 일'이 아니라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문관식 지음 | 헤르몬하우스 |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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