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추석 연휴가 마무리되고 0%대 성장 예고된 올해를 마무리할 4분기, 대내외 악재를 극복하고 내년까지 경기 회복세를 이끌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국내외 곳곳에서 한국 경제가 바닥을 치고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소수점 한 자리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 경제가 올해 1% 이하 내지는 0% 후반대, 내년 1% 후반대 성장할 것이라는 데 국내외 전문기관들의 견해가 모인다.
최근에는 ADB(아시아개발은행)는 지난달 말일, 한국의 올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0.8%로 예상했지만, 내년에는 1.6%로 반등할 것으로 봤다. 한국 정부와 IMF(국제통화기금)은 올해 0.9%·내년 1.8% 성장률을 예상했고 한국은행은 올해 전망치는 정부와 같지만 내년은 1.6%로 낮춰 잡았다. 다소 낙관적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1.0%·내년 2.2%로 내다봤다.
정부와 기관들은 부진한 건설경기와 대외 불확실성으로 올해 성장률은 1%의 벽을 넘지 못하겠지만, 올 하반기 들어 내수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ADB는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완화된 통화정책은 하반기 내수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고, IMF 라훌 아난드 한국 미션단장도 "금년 하반기부터 점진적 경기회복세가 시작되어 2026년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2분기 중반 이후 개선된 소비 및 투자 심리'를 강조했다. OECD도 정치적 불확실성 완화 및 실질임금 상승에 힘입어 올해 후반 이후 민간소비가 회복되고, KDI도 올해 하반기 이후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부진이 다소 완화될 전망"이라고 봤다.
이처럼 희망 어린 관측에도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각종 악재는 연초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아직 해법을 찾지 못한 미국과의 관세협상이다. 지난 7월 말 큰 틀에서 협상 타결에 성공해 '큰 고비를 넘겼다'며 한숨 돌리는 듯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액 3500억 ㄹ달러를 실제로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문제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미 투자 요구로 자칫 제2의 외환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 정부가 통화스와프 체결, 투자 조건 완화 등을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추석 연휴 중에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을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후 "이견이 좁혀지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지만, 성과를 거두기까지 갈 길이 멀다.
그새 미국의 10대 수입국 가운데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기 직전 7위에서 올해 1~7월 10위로 밀려났다. 지난달도 수출이 전년동기대비 12.7% 늘어나며 증가세를 이어갔지만,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은 오히려 6.1% 감소했다. 또 지난해 9월이었지만 올해는 10월로 넘어온 추석 연휴가 수출 증가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돌파구로 주목받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변덕이 걱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APEC 본행사 참석 여부조차도 불투명해지면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국내외 모두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한 민간소비가 실제 증가세를 이어갈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동안 얼어붙었던 내수 상황은 올 여름 회복하는 듯 했지만, 다시 침체 국면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회심의 카드인 '전국민 민생회복 소비쿠폰' 효과로 지난 7월 소매판매는 전월대비 2.5% 오르며 반짝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만에 2.4%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18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정부가 13조 원을 투입하며 공을 들였던 소비쿠폰이 신용·체크카드 기준, 지급 한 달 만에 78%가 소진되자마자 곧바로 민간소비가 얼어붙으면서 정책 효과가 '언 발 오줌누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해 수출의 활로가 아직 뚫리지 못한 가운데 내수 시장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면 4분기 성장률이 후퇴할 수도 있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지난 1일 KDI(경제개발연구원)는 출입기자들에게 예정에 없던 참고자료까지 배포하며 소비쿠폰 지급 직후 6주간 쿠폰 사용 가능 업종의 매출이 지급 직전 2주보다 평균 4.93% 늘어났고, 쿠폰을 사용할 수 없는 업종은 유의미한 매출 변화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 전체 소비쿠폰 사용액 약 5조 원 중 42.5%인 2조 1073억 원은 기존 사용처가 아닌 새로 생겨난 소비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20% 내외 수준인 한계소비성향을 훌쩍 뛰어넘어 소비를 촉진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 석병훈 교수는 "소비쿠폰의 매출 진작 효과가 6주 동안 지속됐다는 것만으로는 기간이 너무 짧아 효과가 있다는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장기적으로 내수 회복에 효과적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카드 매출액을 기준으로 계산했는데, 현금 등 다른 결제 수단으로 소비하려던 것을 카드로 대체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전체 매출 추이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한계 소비 성향 42.5%도 과도하게 큰데, 실제 순 매출 증대 효과를 과대평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달 22일부터 2차 소비쿠폰 지급을 시작했다. 각종 성수품·관광 수요가 급증하는 추석 특수가 주말 및 대체 휴일, 한글날까지 합쳐 최대 열흘 동안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여기에 발맞춘 2차 소비쿠폰이 내수 회복을 부를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역력하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110.1로 집계되며 지난 7월 110.8, 8월 111.4에 이어 3개월 연속 110선을 유지한 점도 호재다. 소비쿠폰에 따른 돈의 흐름 자체는 단기적 효과에 그칠 수 있어도, 소비 심리가 완연히 회복세로 돌아서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애초 그간의 내수 침체가 12.3 내란 사태와 같은 일시적 악재 뿐 아니라 코로나19 후폭풍으로 찾아온 인플레이션 충격과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 등의 결과인 만큼, 기대만큼 내수 반등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내수가 부진한 까닭은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로, 특히 자영업은 온라인 소비 확대나 기존 자영업을 대체하는 서비스들이 나타나며 구조조정 중"이라며 "소비쿠폰을 지급한다고 ;자영업 살리기'가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 교수는 "물론 더 특색있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선진국형 자영업으로 변하는 구조조정 과정의 고통을 소비쿠폰이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더 나아가 1인·무인 업소의 확대, 온라인·배달서비스 이용 증가 등을 반영해 새로운 형태의 자영업 형태에 맞춰 내수 흐름을 새롭게 규정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