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는 강원 강릉시의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5%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 일대 하천의 바닥이 드러나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0일 오후 7시를 기해 강릉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가뭄 같은 자연재난으로 인해 재난사태 지역이 선포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강릉=류영주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 메마른 강릉, 무너진 일상 ② 경고는 있었지만, 대책은 없었다 ③ '목마른 대한민국' 가뭄은 진행형 ④ 물을 지켜낸 도시들 vs 물을 잃은 우리들 ⑤ '물의 경고' 기후 위기극복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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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가뭄 예측' 108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재난
강릉의 '기상 가뭄'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건 4개월 전인 지난 5월부터다. 당시 발표된 기상청 가뭄 예·경보 발표는 강원 영동지역 '기상 가뭄'의 시작을 알렸다.
기상청 분석 결과 지난해 11월부터 5월까지 6개월간 강릉을 포함한 영동지역 강수량은 209.4㎜로 평년(321.7㎜)의 67.4% 수준이었다. 부산·울산·경남(64.3%)을 제외하면 전국 최저 수치였다.
6월 발표된 가뭄 예·경보 발표에도 강릉은 약한 수준의 '기상 가뭄'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장마로 인한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돼 7월의 가뭄 발생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관측 이래 최저 수준의 여름 강수량, 폭염의 장기화, 이른 장마 종료는 강릉의 물 부족 사태를 최악으로 이끌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여름(6월~8월) 강릉지역 강수량은 187.9㎜. 1911년 10월 강릉 기상대 관측 이래 1971년(187.4㎜) 이후 108년 만에 가장 적은 여름 강수량을 기록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월 평균 강수량을 비교하더라도 최근 10년간(2015년~2024년) 강릉지역 월 평균 강수량과 비교하면 55.6%나 떨어진 수준이다.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는 강원 강릉시의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5%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시 강문해변 공중화장실에 물 절약 안내문이 걸려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0일 오후 7시를 기해 강릉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가뭄 같은 자연재난으로 인해 재난사태 지역이 선포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강릉=류영주 기자특히 강릉을 포함한 영동지역의 경우 태백산맥으로 인한 지형효과로 강수량이 더 적었고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남서풍이 우세하면서 동풍이 불지 않아 심각한 강수 부족 상태에 빠졌다.
평년 대비 엿새 빠르고 일찍 끝난 여름 장마와 43일간 열대야, 41일간의 역대급 폭염이라는 최악의 조합은 저수량 증발을 가속화했고 '돌발 가뭄'으로 이어졌다.
정지훈 세종대 환경융합공학과 교수는 "서쪽 고기압이 오래 머무르며 북태평양 고기압과 겁쳐 소위 '두 겹 이불' 상태로 장기간 폭염, 건조를 만들었고 비가 영동지역만 비껴간 지역적 편중이 뚜렷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높은 기온에 증발산이 증가하고 저수지 수량의 추가 손실이 누적되면서 장마 조기 종료와 장기 폭염, 강수 편중이 겹친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새는 물 막지 못한 '노후 상수도' 가뭄 키웠다
가뭄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으로는 상수도 누수율이 결정적 요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전국 평균 누수율은 개선세를 보였지만 강원도와 강릉은 오히려 역행하며 상수도 관리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지형적으로 급경사가 많아 빗물이 저장되지 않고 수자원이 모일 수 없는 취약적 구조를 가진 점을 고려하면 노후 상수도 정비를 통해 누수율 감축이 필수적이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가 발표한 '2023년 상수도통계'에 따르면 강릉지역 상수도 누수율은 23.4%. 전국 평균(9.9%)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지역 누수율은 21.7%로 기록됐다.
광역·지방상수도 현대화 사업으로 10년 전후 전국 누수율은 줄어들었던 반면 강원도는 예외였다. 특히 강릉지역은 오히려 누수율이 급증해 막대한 양의 물이 버려졌다.
2014년 전국 평균 누수율은 11.1%에서 2023년 9.9%로 감소한 반면 강원도는 21.1%에서 21.7%로 0.6%p 늘어났다. 강릉의 경우 16.5%의 누수율이 10년 만에 23.4%로 6.9%p 급증했다.
누수 건수와 누수량을 분석한 결과 강릉의 상황은 보다 심각했다.
2014년 강원도 전체 신고 누수 건수는 5561건, 누수량은 1663만1440톤에서 10년 만인 2023년 4555건, 988만8005톤으로 각각 감소했다.
반면 강릉시는 같은 기간 신고 건수가 1620건에서 1202건으로 줄었지만 누수량은 146만117톤에서 445만6470톤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2023년 한 해 버려진 물을 가뭄으로 인한 제한 급수 당시 강릉시민의 하루 물 사용량(약 7만톤)과 비교하면 63.6일이나 사용 가능한 양이다.
강원 강릉시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 연합뉴스강릉지역의 심각한 누수 문제는 노후화된 상수도 문제 때문이다. 강릉지역 수도관 총 길이는 약 1968㎞로 매설된 지 20년이 넘은 플라스틱 재질의 PVC수도관과 30년 이상의 주철관 등 노후 상수도관의 길이만 700㎞에 달한다. 전체 수도관의 30%를 차지하는 셈이다.
강릉시 관계자는 "관로공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노후관이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지는 부분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며 "지방상수도 현대화 사업으로 노후관망정비 블록화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고 완료가 되면 내년부터 누수율을 크게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108년 만의 최악 가뭄을 겪었던 만큼 노후 상수도 관리의 총체적 점검과 선제적 보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물을 100리터를 보내면 지금 23리터가 사라지는 상황"이라며 "상식적으로 관로 개선 사업을 꾸준히 했었어야 했지만 하지 않았고, 관련한 통계도 없고 성과나 공개 된 자료 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물 부족 없어" 빗나간 예측, '골든 타임' 놓친 강릉시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는 강원 강릉시의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5% 아래로 떨어진 가운데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 일대 하천의 바닥이 드러나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30일 오후 7시를 기해 강릉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가뭄 같은 자연재난으로 인해 재난사태 지역이 선포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강릉=류영주 기자강릉의 가뭄 대처가 원활하지 못했던 이유는 강릉지역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를 제외한 비상 대체수원 확보의 필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환경부 국가수도기본계획(2022)에 따르면 한강유역 장래 생활용수 수도시설 과부족 전망 결과 강릉시는 2040년까지 물 공급량이 수요량을 넘어설 것으로 판단했다.
자료 분석 결과 올해 물 수요량은 11만1478톤으로 공급량(11만4800톤) 보다 3천 톤 이상 여유가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2030년과 2035년, 2040년의 경우 공급량은 11만4800톤으로 동일했고, 수요량이 11만1천톤에서 11만7천톤 수준으로 물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지하수-지표수 연계를 통한 지하수 상수원 활용방안 기본조사(강원) 보고서'에 따라 강릉시는 지하수-지표수 연계 상수원 개발 및 활용지역에서 제외됐다. 2017년 이후 가뭄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용수 부족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는 분석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강릉의 지질학적 특성이 가뭄 취약성을 높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충분히 대체 수원을 확보할 수 있었음에도 '골든 타임'을 놓친 행정의 책임과 구조적 문제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김희정 강원대학교 지질학과 교수는 "강릉은 수리, 지질학적으로 물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곳이 아니다"라며 "충분한 물 그릇이 있어 가둘 수 있는데 가뭄에 취약한 지표수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근거로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강릉지역 지하수 기초조사 보고서(2016)에 따르면 강릉지역은 관입화성암이 넓게 분포해 밀도차로 인해 지하수가 동해로 빠져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대수층이 잘 발달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서서히 식어 굳어 만들어진 관입화성암이 시간이 지나며 지하수 통로와 저장소 역할을 하게 되면서 지하수 저수지인 대수층으로 활용돼 충분한 용수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 교수는 "대수층이 잘 발달해 지하수를 활용하면 가뭄 시 보조수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며 "다만 지하수는 예금과 같아 난개발을 할 경우 오염에 굉장히 취약한 만큼 용수부족 예상지역을 선정한 뒤 개발 가능한 수원 유형 유망지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컨트롤 타워' 가뭄TF 대처 역량 충분했나
행정안전부 제공지난 3월 정부는 가뭄 위기 징후를 면밀히 감시·평가하고 대책을 논의하겠다며 가뭄 태스크포스(TF)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가뭄 위기' 지자체도 TF회의에 월 1회 참여해 정부와 유관기관 등과 가뭄 발생에 대한 대응책을 함께 고심하고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행안부, 기상청, 농식품부, 환경부, 농어촌공사, 수자원공사가 참여한다.
하지만 이번 가뭄 사태가 확산되기 전까지 컨트롤 타워로서의 TF역할과 지자체와의 소통은 아쉬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TF팀이 강릉시와 첫 가뭄 관련 회의를 진행한 건 지난 3월 7일. 지난해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20%대 중반까지 떨어졌던 사안과 관련한 내용의 회의였다.
두 번째 회의는 농업용수 부족 등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던 전남 영광군에 대한 재난 대응이 마무리 된 이후 강릉지역 가뭄이 본격화 된 7월이 다 돼서였다.
TF내에서는 행안부의 국가소방동원령 발령, 재난특별교부세 지급과 기관간 조율, 기상청의 예보 관측, 환경부의 도암댐 방류를 위한 수질 검증 등 가뭄 본격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행안부 관계자는 "TF에서 도암댐 방류와 같은 내용들을 논의했기 때문에 방류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에 TF를 통해 꾸준히 논의하지 않았으면 이런 아이디어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규 강릉시장(왼쪽)과 여중협 강원도 행정부지사가 강릉 가뭄 재난 사태 해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간 탑-다운 방식의 행정 체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재난 상황에서 가뭄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를 눈으로 보고 대처해야 할 일선 지자체와 정부부처간 예산 확보 문제도 번번이 걸림돌이 됐다.
강릉시 관계자는 "TF에서 시를 도와주려고 했던 것은 사실인데 실제로 도와주려면 예산이나 이런게 지원돼야 하는데 그냥 현황 체크였던 것으로 보여진다"며 "예산을 협의하는 상황에서 총괄 책임이 있는 정부부처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재난 특별교부세로 해결하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뭄 대응에 최일선에 나섰던 강릉시 공직사회 내에서도 이번 재난사태를 겪으면서 가뭄 대응 메뉴얼 미흡 등에 대한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릉시 일부 공무원들은 "가뭄으로 인한 재난선포가 처음인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공동 대응이 메뉴얼이 다소 미흡했던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다"며 "지자체에 물 관련 전문가도 없는데다 행안부에서는 제한급수 등 중요 결정을 해당 지자체에만 떠넘기는 듯한 입장을 보이는 등 명확한 지침도 없어 혼란스러웠던 상황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재난사태까지 선포된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가뭄 대응 상황을 신속하게 알려야 하는 홍보 창구도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주민들의 원성을 키운 키운 것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