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꺼내달라"…'직장 괴롭힘' 피해 공무직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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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과 호봉 트집으로 괴롭힘 시작
반말, 욕설, 강압적 지시 등 스트레스
"정신과 치료 받으며 약으로 버텨"
"피해 상황 보고해도 번번이 묻혀"
전문가들 "조사·긴급조치 서둘렀어야"
구청 측 "조사 진행, 세부사항 비공개"



"앞이 캄캄합니다. 이 지옥에서 꺼내주십시오. 다시 웃으면서 시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인천의 한 기초지방자치단체 공무직(정규직 비공무원) 노동자 A(40대)씨는 최근 구청장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수년간 지속된 직장 내 괴롭힘을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절규였다.
 
소속부서는 물론, 감사관실에까지 호소했지만 제대로 조치되지 않아 고통 속에 갇혔다는 것. 그동안 A씨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괴롭힘의 늪'이 된 일터…반말+욕설+강요에 '고통'

2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인천의 한 기초지자체 공공시설 정비·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장교였던 그는 2021년 전역해 "거주지역을 지키고 봉사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걸고 임용됐다.
 
그러나 이런 다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팀 내 같은 조로 묶인 B(40대)씨는 A씨가 군복무 경력을 인정받아 자신과 동일한 호봉인 점을 트집 잡았다. 괴롭힘의 서막이었다. 구청 사무실과 외근용 트럭 내부, 회식 자리 등 B씨와 함께 지내는 곳들은 '괴롭힘'의 공간이 됐다.
 
B씨는 평소 A씨에게 반말과 욕설을 섞어가며 명령했고, 요즘 같은 폭염 때는 외근 후 샤워장 이용은 퇴근 시간에 임박해서만 허락했다. B씨가 입지 않는 불편한 작업복은 모두 A씨에게 떠넘겨졌고, 공동작업을 해야 할 때는 일감을 A씨에게 몰았다.
 
A씨는 평소 근무 태만, 관용차량 사적 사용 등의 문제 행동을 하는 B씨에게 시정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넌 그래서 안돼"였다. B씨는 "앞으로 30년간 같이 일을 해야 할 텐데…"라고 협박성 발언을 하며 A씨에 대한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다.
 

수년간 정신과 치료, 부서에 알려도 '긴급조치 無'

A씨는 공황장애 증상을 보여 2023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처방전 없이는 일상생활도 힘든 지경이다.
 
결국 A씨는 2023년 6월 B씨의 괴롭힘을 상급부서에 알렸지만 구청 담당자의 대답은 "3자 대면하자"였다. 올해 초에는 감찰부서에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했지만, 감찰은 B씨의 괴롭힘은 외면하고 '근무지침 위반' 행위만 적발했다.
 
결국 A씨는 '끝없이 괴롭힘 당하는 자신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구청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퇴직을 각오한 마지막 호소였다. 이메일을 받은 구청장이 '철저한 조사'를 지시한 뒤에야 담당부서는 A씨에게 '업무 이동 검토' 등의 대안을 안내했다.
 

전문가들 "구청 측 대응 적절치 못해" 지적


전문가들은 A씨가 경험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구청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구청의 외면이 A씨의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직장갑질119 민현기 노무사(법무법인 여는)는 "관련법에 따라 직원이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알리면 지체 없이 조사해야 한다"며 "직접증거 유무를 떠나 누적된 피해 정황들에 대한 사실 관계들을 면밀히 살펴 보호 조치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피해 상황과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정황들이 있다면, 사실 관계 파악과 피해자에 대한 구제 절차가 최우선이라는 의미다.
 
수도권의 또 다른 지자체 감사관도 "직장 내 괴롭힘은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만 있어도 감사관실에서 적극 조사할 수 있다"며 "3자 대면 조사는 2차 피해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고, 피해 방지를 위한 긴급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근로기준법(76조 3항2)은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그 사실 확인을 위해 객관적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피해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구청 "매번 조사는 시행, 자세한 사항은 비공개"

이에 대해 해당 구청 총무과 측은 '괴롭힘 신고에 대해서는 항상 조사를 해오고 있고, 개인적 사항에 대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A씨의 사연은 과거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직원 개인 관련 내용은 비공개 사안"이라고 밝혔다. 기존 조사 결과와 징계 및 3자 대면 조사 제안 여부 등에 대해서도 "어떠한 내용도 확인해줄 순 없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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