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은 과연 언제 '당선 축하 전화'를 통해 덕담을 주고 받을까.
과거 80년대처럼 정권의 정당성이 부족했을 때는 외국 정상, 특히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 외교'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지금은 2025년이고 특정국 정상과의 통화 여부로 한국의 위상을 가늠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취임일인 4일(한국시간)은 물론 6일 오전까지 한미 정상의 통화 소식이 전해지지 않으면서 '이상 기류'를 꺼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물론 양국 간 낮과 밤이 극명히 바뀌는 시차가 존재하는 데다 양국 정상의 바쁜 일정을 고려해야하는 만큼 '시간이 좀 지체되는 걸 가지고 뭘 그렇게 야단이냐'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 분단위로 쪼개쓰는 대선 과정을 거쳐 정권 교체를 이룬만큼 정권 초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눈코 뜰새없이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6일은 현충일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침 4일~5일(현지시간) 연속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시간이 넘는 통화를 했다. 우크라이나 종전, 중국과의 무역 협상 등 미국이 최우선순위로 삼고 있는 안건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독일총리와 백악관 회담을 가졌고, 난데없이 그렇게 아끼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저주에 가까운 온라인 '설전'을 벌이며 둘 사이의 관계를 파국으로 끝냈다.
한미 양국 정상이 이처럼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통화 조율이 여간 힘들지 않았겠다는 짐작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과거 사례나 타국의 경우를 비춰봤을 때 '당선 축하'가 이렇게나 늦어지는 건 이례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통상 한미동맹의 취지를 살려 양국 정상간 당선 축하 전화는 대부분 취임 첫날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다음날 저녁 윤석열 당시 한국 대통령과 12분간 통화를 했다. 남우세스럽지만 당시 통화는 일본 총리보다도 빨리 성사돼 외교가에서는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 대통령처럼 조기 대선으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취임 당일 밤에 트럼프 대통령과 첫 통화를 가졌다.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의 '당선 축하'에 인색한 것만도 아니다. 지난 1일 치러진 폴란드 대선에서 극우 성향의 야권 후보인 카롤 나브로츠키가 당선되자 "폴란드가 승리자를 뽑았다"고 직접 축하하기도 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기각돼 업무에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도 통화하며 "대선에 나갈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물론 당시 통화는 한 대행이 업무 복귀한 지 2주만에 이뤄진 것이긴 하다.
이처럼 수개월간 이어진 한국의 리더십 공백 사태를 매듭짓고 한국의 새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한미 정상간 통화가 지연되면서 이 대통령의 당선 확정과 관련해 백악관이 내놓은 입장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당시 백악관은 이번 한국의 대선 결과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친중 기조 가능성을 경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았지만, 외교부는 "미국의 공식 입장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임하고 있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명의 성명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루비오 장관은 중국에 대한 언급 없이 "이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고, 새로 출범하는 이재명 정부와 한미일 3자 협력 등 안보, 경제 분야에서 협력 강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백악관이 동맹국인 한국 대통령 당선 축하 메시지에 '중국'을 끼워 넣은 것을 가볍게 보기도 어렵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미 극우인사들이 근거도 없는 중국 관련 얘기를 계속해서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실례로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최근 "한국 새정부 지도부가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극우 성향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도 이번 한국 대선 결과에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점령해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떠들었다.
이들 모두 트럼프 대통령 강경 지지세력인 마가(MAGA)의 여론을 주도하는 인물들이며, 트럼프 대통령과도 직접 대화가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이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 계엄'으로 한국이 큰 혼란을 겪고 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의도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 관련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의 현 상황을 새로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에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신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실제 이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어 당혹스러웠던 '순간'들이 있었다.
오죽했으면 트럼프 대선 승리 이후 마러라고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처음으로 만난 한 경제인에게 "당선인이 한국에 대해 어떤 부분을 궁금해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겠느냐는 말이다.
외교가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관련 얘기를 안하고 있는게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자조섞인 한탄도 흘러나왔을 때다.
그때와 상황이 전혀 다르지만 어쩌면 지금도 '메신저'가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귀에는 마가를 등에 업은 일부 인사들의 근거없는 허황된 얘기들이 여과없이 들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