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기자12·3 내란 사태가 육군사관학교 출신 일부 장군들의 주도로 이뤄진 반면, 이를 저지한 결정적 역할은 제각각 출신도 다양한 비(非)육사 영관급 장교들의 몫이었다.
김형기 육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중령. 간부사관),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대령. 학군사관), 김문상 전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대령. 3사)이 그 주역이다.
이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에서도 일관되고 확고한 증언으로 진실 규명에 협조하며 실추된 군의 명예회복에 기여했다.
김형기(간부사관) 특전대대장, 의원 끌어내라기에 "무슨 X소리냐"
김형기 특전사 1특전대대장은 지난 14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첫 재판에서 국회의원들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끌어내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1공수여단장으로부터 '국회 담을 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고 "(전화를 끊은 뒤) 국회의사당의 주인은 국회의원인데 무슨 X소리냐 하면서 제가 욕하는 것을 부하들이 들었다. 이때부터 (사태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군의 국회 봉쇄 및 침탈에 항거하는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라는 지시도 받았지만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들어 따르지 않은 사실도 밝혔다.
그는 병이나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장교로 임관하는 간부사관 출신으로 장교 그룹 내 소수파에 속한다. 가장 낮은 계급인 이등병부터 시작하다보니 실병 지휘에는 타 출신보다 더 능숙하다는 특성이 있다.
미군에는 제임스 매티스처럼 병으로 입대해 4성장군과 국방장관까지 오른 인물이 있지만 우리 군은 이 경로를 통해서는 아직 장군도 배출하지 못했다.
조성현(학군) 1경비단장 "임무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 추가투입 거부"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조성현 수방사 1경비단장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때 '의인'(義人) 발언으로 윤 전 대통령 측에 일침을 놓은 것은 이미 유명한 장면이다.
그는 2월 13일 당시 윤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의인 행세를 한다는 인신공격성 증인신문에 "저는 의인도 아니고 제 부하들의 지휘관이다. 제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제 부하들은 다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저는 일체 거짓말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맞받아쳤다.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부당한 지시를 조 단장이 거부한 사실은 윤석열을 파면한 헌재 결정문에도 기술돼있다.
결정문은 "조성현은 위 임무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국회 경내로 들어간 군인들에게는 사람들이 없는 지역에 계속 집결해 있을 것을, 국회로 이동 중이던 후속부대에게는 서강대교를 넘지말고 기다릴 것을 각각 지시하였다"고 했다.
그는 학군(ROTC) 출신의 첫 수방사 1경비단장이다. 1경비단장은 육사 출신 '성골'이 도맡아왔다는 점에서 발탁 배경에 일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12‧3 당시 처신은 높이 평가된다.
김문상(3사) 전 수방사 처장, 계엄군 헬기 40여분 지연…"단연 수훈갑"
지난해 12월 6일 오후 헬기 착륙을 막기 위해 국회 잔디광장에 대형버스가 배치된 모습. 황진환 기자 김문상 전 수방사 작전처장은 불법 비상계엄을 초장부터 어그러뜨렸다는 점에서 가히 일등공신감이다.
그가 계엄군(특전사) 헬기의 서울 진입을 불허한 것이 단지 기계적 판단과 결정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는 지난해 12월 3일 밤 10시 49분쯤 계엄군 헬기가 서울 공역에 진입하려 하자 세 차례 거부한 뒤 합참과 육군본부(계엄사) 경로를 거쳐서야 승인했다. 이로써 계엄군의 국회 출동은 최소 40분 이상 늦어졌다.
당시 비상계엄 발령에 따라 수방사 지휘통제실에서 작전통제 중이던 그는 사전승인 없는 비행체의 서울 진입을 거부할 권한과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무려 45년만의 비상계엄 발령 직후 엄중한 국면에서 계엄군 헬기를 장시간 공중대기 시킨 것은 결코 간단한 결정이 아니었다.
육사 출신 예비역 장교는 "다른 사람들의 공도 컸지만 김 처장이 단연 수훈갑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처장은 3사관학교 출신으로 지난해 말 3사로 인사 발령됐다.
불법계엄 '맹종'한 장군들과 달리 '부당한 지시' 직감적으로 인지
'실패가 오히려 어려운' 친위 쿠데타를 저지한 이들 3인방은 공통적으로 당시 명령의 부당함을 직감했다.
긴박한 상황을 핑계로 명령의 불법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맹종한 고위급 장군들보다 훨씬 나은 판단과 처신을 한 것이다.
조 단장은 2월 헌재 심판에서 후속부대의 여의도 추가 진입을 금지한 이유에 대해 "국회 통제도,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과업도, 군인 누구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대장은 14일 재판에서 "시민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대상인데 왜 때릴까 의문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정상적 사고를 하는 군인이라면 한눈에 보더라도 정당한 지시·명령이 아님을 알아차렸을 것이라는 말이다.
앞서 예비역 장교는 "여인형, 이진우 같은 고급 장교들은 (윤 전 대통령과의 사전 회합에서) 이미 충성맹세를 했기 때문에 (명령의 불법성을) 몰랐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하급 장교들은 본능적으로 잘못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그는 헌재가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에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다고 판시한 점을 지적하며 차제에 군의 제도와 규범도 일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