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통령실·경호처 그들의 '입'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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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체력단련장의 화랑코스 2번 홀은 파5 홀이다. 체력단련장 정문을 들어가 클럽하우스로 향하다보면 자동차길 오른편에 종합운동장이 내다보인다. 그 경기장 끄트머리를 지나자마자 왼편으로 2번 홀의 그린 옆을 곧장 통과하게 된다. 2번 홀의 낮은 언덕편으로 2미터 높이의 울타리가 도로를 따라 쭉 펼쳐져 있다. 이 길을 계속가면 클럽하우스를 마주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골프를 즐겼던 토요일 오후 그날, CBS 기자는 정문을 통과하고 체력단련장에 들어갔다. 대통령이 골프를 친다는 제보를 접하고 였다. 기자는 운동장이 끝나는 수십미터 앞쪽에 위치한 2번 홀 그린 쪽에 대통령 골프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물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밖에서 기다렸다. 나무들 사이로 페어웨이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대통령이 골프장에 들어가고 30~40분쯤 경과했을까. 2번 홀 티박스에서 그린 쪽 페어웨이로 누가 쳤는지 알 수 없는 골프공이 날아왔다. 페어웨이 높이가 있어 그 공을 누가 쳤는지 알 수 없다.
 
그 순간 어디선가 경호원이 기자를 발견하고 울타리 안쪽에서 나타났다. 경호원은 다짜고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며 소리쳤다. 기자는 "알았다"고 대답한 뒤 정문 쪽으로 걸어나왔다. 무전 연락을 받았는지 경호차 두세대가 순식간에 쫓아왔고 예닐곱명의 경호원들이 나타났다. 골프복에 골프 모자를 쓴 50대의 남자도 있었다. 그는 기자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들은 "경호차로 경찰에 갈지, 아니면 경찰 신고 후 경찰에 함께 갈지"를 물었다. 
 
경호처는 "기자가 경호구역을 침범해 불법 촬영했고, 심지어는 경호원에 발각되자 도주를 했다"고 말했다. 불법촬영도 아닐뿐더러도 도주한 일은 더더욱 사실과 다르다. 경호원의 제지를 받은 기자는 짙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비로소 느끼며 느긋하게 철수했을 뿐이었다. 경호처는 경호법 5조 2항의 경호구역 지정을 들먹이며 '불법 위반자'로 몰아붙였다. 그들의 주장이 그랬다. 현장에는 '폴리스라인'처럼 경호구역이라는 표식도 없었다. 경호원들이 줄지어 경호구역 경계근무를 서고 있지도 않았다. 아마도 대통령 골프현장을 기자가 취재하리라고 상상을 못했던 것이 정확하지 않나 싶다. 
 
지난 9일 서울 노원구 태릉체력단련장(태릉CC) 일대 교통통제하는 경찰, 정문을 통과하는 대통령실 차량 행렬. 김세준 크리에이터지난 9일 서울 노원구 태릉체력단련장(태릉CC) 일대 교통통제하는 경찰, 정문을 통과하는 대통령실 차량 행렬. 김세준 크리에이터
대통령 경호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신변을 보호하는 기구이다.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협조해야할 기관이다. 그러나 경호처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계기가 있다. 그것은 윤석열 정부 경호처의 시그니처인 '입틀막 사건'도 아니요, 감사원 감사보고서를 읽은 다음부터였다.
 
대통령실과 관저 불법의혹에 대한 감사원 조사 결과를 보면, 부장급 경호처 직원 정모씨의 혐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그러나 구조적 불법비리 의혹이 경호처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은 그 내용 모두를 그 직원의 개인일탈 행위인것처럼 보고서를 꾸몄다. 의도적으로 꾸몄다고 강력히 추정한다. 
 
윤석열 정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용산으로 집무실과 관저를 옮기는 것이었다, 청와대에서 빠져나오니 경호처도 한남동과 용산에서 여러 시설이 필요했다. 한남동 해병대사령관 공관도 경호처 시설로 차출됐다. 긴급출동대기 시설 등이 필요했다. 경호처 상급자로 불린 이가 정 씨에게 출동대기 시설과 구 국방부 본관 지하에 사무실 및 회의실 조성공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갑작스럽게 이동하는 바람에 공사비 한 푼도 없는 형편이었다. 
 
정씨는 어떻게 했을까. 일차로 공사업체를 선정했다, 1억 7600만원의 공사비가 산출됐다. 그는 집무실 방탄유리 공사 등에서 15억원이 넘는 특혜를 줬던 브로커 A에게 공사비를 대납시켰다. 이익을 줬으니 공짜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공사는 실행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방부가 관리하던 용산구의 아파트 18채를 경호처 직원용 관사로 경호처가 이관받았다. 경호 업무상 우선적으로 입주해야할 곳이어서 보수공사가 시급했다.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역시 세워둔 예산이 없다. 이번엔 경호처 사무공간 조성 공사과정에서 이익을 몰아줬던 공사업체 대표 B에게 대납 공사를 요구한다. B는 도배,장판.싱크대교체, 욕실 수선 등 관사 보수공사를 공짜로 대납했다. 주머닛돈이 쌈짓돈인가. 쌈짓돈이 주머닛돈인가. 마법의 경호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발언하는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 연합뉴스발언하는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 연합뉴스
대통령 경호처는 국가를 대표하고 국민의 상징인 대통령을 보호하는 기관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그림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업체에 이익을 몰아주고 다시 그 이익 일부를 빼앗는 방식으로 경호시설 공사를 하는 기관이 경호처라는 사실을 감사원은 암시한다. 그러나 개인일탈이라고 한다. 정씨는 무엇을 위해 개인 일탈을 한 것일까. 이 대목에서 과거 <모래시계> 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나를 잡을 넣을 사람도 그 분이요. 나를 빼내 줄 사람도 그 분이다."
 
국민을 바보로 알고 있는 것 같은 감사원은 <조치할 사항>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예산에 편성되지 않은 사업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예산사업의 공사비를 부풀려 준공 처리하거나 직무관련자에게 공사비 대납을 요구한 정씨에게 '국가공무원법 제82조에 따라 징계처분하고…"
 
골프 취재가 이뤄진 다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의 만남을 앞두고 8년 만에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그들의 입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 거짓일까. "불법촬영을 했고 기자가 도주했다"는 경호처의 해명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대통령실과 경호처도 주장할 권리는 있다. 그들 '입'의 신뢰가 뿌리채 흔들려도 주장하는 일은 무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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