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엄동설한에 보일러가 고장 나는 일처럼 난감한 일도 없지만, 이 와중에 수리업체들의 사기까지 잇따르고 있어 소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보일러 제조업체의 대표 상담 전화번호로 연락해 AS를 신청해도 사기를 당하는 경우까지 잦은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최영호(가명) 씨는 겨울이 시작될 무렵인 지난해 11월말 집에서 쓰는 K보일러가 고장나 AS 신청을 했다.
K 본사 대표 상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 뒤, 안내 멘트에 따라 가장 가까운 AS 대리점을 연결 받은 최 씨. 얼마 지나지 않아 수리기사가 집으로 찾아왔다.
5분 정도 보일러를 점검한 수리기사는 "삼방밸브와 콘트롤박스를 교체해야 한다"며 13만 8000원의 수리비를 청구했다.
그런데 수리기사가 떠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AS센터에서 "어디가 안 되느냐"며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 기사님이 오셔서 수리하고 가셨다"는 최 씨의 말에 해당 센터 관계자는 "요즘 예전 대리점으로 전화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수리를 받으셨는지 확인해야 하니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연락달라"는 말을 남겼다.
하루에 AS 센터 두 곳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최 씨는 의아하긴 했지만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해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보일러는 2주가 채 되지도 않아 또 고장이 났다. 방문 점검 결과, 2주 전 새 것으로 교체한 줄 알았던 콘트롤 박스는 교체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명함도 없고, 영수증도 손으로 써주던 2주 전 그 수리기사. 최 씨는 13만 8000원을 헛되이 날린 데다 보일러가 제대로 고쳐질 때까지 며칠을 추운 방에서 떨어야만 했다.
알고 보니 사정은 이랬다. 최 씨의 보일러를 수리한 업체는 두어 달 안에 폐쇄될 예정인 예전 대리점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지역 한 공식 AS센터 관계자는 "폐쇄될 AS 대리점들이 종종 비용을 과도하게 청구하거나 중고부품으로 갈아놓는 경우들이 있어, 나중에 알아차린 고객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더 이상 본사와 계약을 유지하지 않는 업체들도 정식으로 폐쇄되기 전까지는 AS 전화 연결을 받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 고객을 상대로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또 다른 AS센터 관계자는 "이런 불량 업체들은 곧 영업을 그만두게 되니까 무서울 것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 같다"면서 "부실 서비스의 뒤치닥거리를 감당해야 하는 건 모조리 공식 대리점들의 몫"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객은 물론, 본사와 공식 대리점들도 불량 업체들의 비양심 영업에 속수무책인 셈이다.
특히 이 같은 피해 사례가 한겨울이 되면서 더 속출하고 있어, 소비자들도 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난방기 고장이 잦아지고 AS 수요가 증가하는 요즘이 불량 업체들의 '대목'이 되고 있는 것.
한때 본사 직영으로 대리점 영업을 하던 수리업체들이 폐쇄된 뒤에 사설업체로 나서면서도 이전에 확보해둔 접수 대장이나 고객 정보를 이용해 임의로 영업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객들에게 "000 보일러인데 앞으로는 고장 신고를 이 번호로 해달라"며 개인 연락처로 메시지를 돌리는가 하면, 직접 고객 집에 찾아가 보일러 등에 연락처가 적힌 안내 스티커 등을 붙여 놓는 식이다.
하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알 수가 없으니 AS 신청을 하더라도 '깜깜이'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와 관련, K 보일러 본사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대리점 등을 정리하다 보면 해당 업체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면서 "이런 업체들이 폐쇄되기 전까지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소비자들에게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는 등의 피해를 입힐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 때문에 폐쇄를 앞둔 대리점에 대해서는 더 각별한 관리 감독을 하는 등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 그렇다 해도 이러한 대리점들의 횡포를 일일이 파악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건 물론이다.
여기에 애초부터 본사의 관리망을 벗어나서 활동하는 사설 업체들의 횡포는 일일이 잡아내기도 힘들다는 게 사측의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대표번호가 아닌 다른 전화번호가 표시된 광고나 114 등록업체는 믿지 않는 편이 고객들 입장에서는 '수리 사기'를 조금이나마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CBS노컷뉴스 김지수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