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힘으로 몰아붙이며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는 여당과 전략이 부족한 무기력한 야당 때문에 국회가 마비되는 등 정치가 실종되고 있다.

지난 26일 오전 새누리당 긴급최고위원회의.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에게 제안한 4인협의체 수용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김 대표는 그 전날 황 대표를 만나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특검과 국정원 개혁 특위, 법안과 예산안 등의 현안을 논의하자며 4인협의체를 제안했다.

그런데 이날 회의에서는 친박 실세인 최경환 원내대표가 민주당의 제안을 덜컥 받아왔다며 황 대표에게 면박에 가까운 공격을 퍼부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새누리당은 다음날인 27일 “특검은 절대 안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고, 특검 등 현안을 논의라도 해보자는 4인협의체 제안은 사실상 거부됐다.

새누리당은 또 지난 25일 “국민 분열을 저하시키는 일들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일제히 종북몰이에 나섰다.

문제의 ‘연평도 발언’을 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를 지목해 “사제복을 입은 혁명전사” 등이라고 비난하며 “민주당도 분명한 입장을 말하라“고 닦아 세웠다.

새누리당은 이어 지난 28일에는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냉랭한 정국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새누리당이 정국 대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공 일변도로 나가는데는 청와대의 뜻이 관철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정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일이 없다”거나 “분열을 용납하지 않겠다”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설정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여당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29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새누리당에게 “어떻게 그렇게 단 한 가지도 양보하지 않을 수 있느냐”며 “강한 청와대 밑에 짓눌려 있는 초라한 국회를 보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은 전략과 지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책없이 여당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의 인준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와 연계했으나 국민 여론은 물론 당 내에서도 광범위한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인준안을 단독처리할 것이라는 징후를 이미 감지했고, 국회의장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미리 알면서도 무제한토론을 요구했다 거부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런 가운데 황찬현 후보자의 인준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청와대는 문형표 후보자도 조만간 임명할 것으로 알려져 민주당은 빈 손으로 돌아서야 할 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