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프랑스 등서 10여명 사망, 50만 가구 단전

'눈'없는 거센 폭풍에 하늘·바닷길·철로 마비

(런던·파리=연합뉴스) 김태한 박성진 특파원·양정우 기자 = 28일(현지시간) 허리케인급 위력의 폭풍이 영국과 독일 등 북서부 유럽을 강타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이 지역에서 1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에서만 50만 가구 이상이 단전됐으며, 하늘과 땅, 바다를 지나는 교통편도 마비됐다.

26년 만에 허리케인급 폭풍이 휩쓸고 간 영국에서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세인트 주드'로 명명된 폭풍이 휩쓸고 지나면서 최소 5명이 사망하고 46만 가구의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이날 새벽 잉글랜드 서부 해안에 상륙한 폭풍의 최고풍속은 영국 남부 인근의 와이트 섬에서 시간당 159㎞로 측정됐다.

이 때문에 사망자 대부분이 강풍에 쓰러진 나무에 깔려 숨지는 참변을 당했다.

이날 오전 켄트주에서 강풍에 쓰러진 나무가 주택을 덮치면서 잠자던 17세 소녀가 숨졌고, 런던 서북부 왓포드에서도 운전하던 50대 남성이 도로를 덮친 나무에 깔려 현장에서 사망했다.

런던에서는 시민 2명이 폭풍에 따른 가스관 폭발로 무너진 주택 잔해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남부 켄트주에 있는 던지니스 원자력 발전소는 정전에 대비해 비상전원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추기도 했다.

폭풍은 '교통 대란'도 유발했다.

국제 관문인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는 이날 항공기 130편이 결항했고, 도버항이 문을 닫았다. 프랑스로 향하는 여객선 운항도 일시 중단됐다.

런던 도심에서는 기중기가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정부 청사 지붕을 덮치는 사고가 일어나 닉 클레그 부총리의 기자회견 일정이 취소되기도 했다.

기상청은 미국 동부 대서양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제트기류를 타고 영국을 관통해 피해 규모가 컸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사망자 소식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독일에서는 강풍에 쓰러진 나무가 차량을 덮치는 사고가 잇따라 4명이 숨지는 등 이번 폭풍으로 인해 최소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많은 구간에서 철길 운행이 중단된 가운데, 뒤셀도르프와 함부르크 공항에서 상당수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승객 1천 명의 발이 묶였다.

독일 중부에 있는 무제한 고속도로인 '아우토반'도 강풍에 일시 폐쇄됐다.

프랑스에서도 브르타뉴와 노르망디 등 서북부 지역에서 7만5천 가구의 전력 공급이 끊겼다. 브르타뉴 해변에서는 여성 1명이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몇 시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네덜란드에서도 22세 여성이 부러진 가지에 맞아 사망했다.

수도 암스테르담 중앙역이 폐쇄되고, 대부분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돼 통근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폭풍은 북유럽에 속하는 덴마크에도 피해를 줬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는 시간당 최고 풍속이 무려 194㎞를 기록했다. 5층짜리 건물에 임시로 쳐놓은 비계(飛階)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코펜하겐 북쪽 한 도시에서는 남성 1명이 강풍에 떨어진 건물 외벽조각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덴마크와 남부 스웨덴을 잇는 철길이 폐쇄되기도 했다.

서유럽에 허리케인급 폭풍이 찾아온 것은 이례적인 일로 1987년에도 비슷한 대폭풍이 발생해 영국과 프랑스에서 22명이 사망한 바 있다.

영국 기상당국은 이번 폭풍이 대부분 허리케인에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