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당한 문화재, 외치지 않으면 권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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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유진룡 문화관광부 장관의 발언으로 이슈가 된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 일본이 강탈한 불상을 우리나라 절도범들이 훔쳤다 붙잡혀 압수당했다. 타국의 문화재 약탈과 강제점유행위는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파렴치 행위이다. 이 불상을 일본 관음사에 되돌려 줘야 하는 걸까?

두 나라가 그걸 논의하자면 먼저 일본 관음사가 그 불상을 누구에게서 기증 받은 것인지 그리고 그 기증자가 우리 부석사나 조선왕실로부터 기증을 받았거나 사들였다는 증명이 있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그것에 따라 논의와 협상의 방향이 달라질 터이니 그 증빙 없이는 소유와 반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 강탈한 것을 훔치고 또 빼앗기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가정해보자. 누구의 권리가 가장 존중되어야 할까? 그 물건은 원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다.

2000년 10월에 벌어진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자. 독일이 가지고 있는 미술품 ‘라우 컬렉션’이 프랑스 파리 뤽상 박물관에서 기획전시회를 갖고 일반에게 공개됐다. 이 가운데 프랑스 인상파 화가 폴 세잔의 그림이 있었는데 약탈당한 그림일 가능성이 높았다. 프랑스 법원은 1941년 세계대전 중 약탈당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취득한 경로가 적법하고 적절했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이 그림은 프랑스를 떠날 수 없다고 결정해 압류조치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으로 빚어진 문화재 약탈과 이후 반환처리에 나름 모범을 보여준다.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는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빼앗긴 미술품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부터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스트에 따라 1975년부터 동독 정부에게 반환을 요구하였고 1990년 독일통일 이후에는 독일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1994년에는 두 나라 정상회담을 통해 28점의 미술품이 프랑스로 돌아왔다. 모네, 고갱, 세잔, 르느와르의 그림 등이다.

조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독일의 콜 총리는 “교환이 아니라 순수한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웃 국가의 문화재는 다른 것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조건 없이 되돌려 줘야 한다는 것이고 강도짓한 걸 돌려주겠다고 하기는 멋쩍으니 선물이라는 외교적 표현을 쓴 것이다. 이 때 독일은 위의 그림들 외에도 18-20세기의 프랑스 문서 30박스, 프랑스의 기독교역사가 담긴 733개의 마이크로필름도 무조건으로 반환하였다. 독일은 소유 중인 유명 작곡가의 악보가 프랑스에서 강탈당한 것임이 밝혀지자 프랑스의 작곡가 미망인에게 정중히 돌려 준 사례도 있다.

“아무리 정당한 권리일지라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구제의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주장하지 않는 자 구제 받지 못한다

10월 1일부터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도난품으로 추정되는 조선 왕실 물품을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미술’이라는 기획전시이다. 여기에는 고종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투구를 비롯해 왕실 물품들이 포함돼 있다. 도쿄박물관 측은 조선 왕실 유물이라는 사실은 쏙 빼고 19세기 조선 물품이며 ‘오구라(小倉) 컬렉션’으로부터 기증받았다는 안내문만 내붙이고 있다. 10건 정도가 오구라 컬렉션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어서 도난품 전시회나 마찬가지이다.

오쿠라 다케노스케는 우리나라 곳곳의 많은 유물들을 강탈, 강제매집한 인물이다. 특히 경상도 지역을 훑었다고 알려져 있다. 도쿄박물관 한국관에 있는 신라 왕릉의 금관,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어깨의 견장, 다뉴세문경 청동거울 등이다. 오구라는 문화재 약탈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고 부담스러워지자 도쿄 박물관에 기증했다.

일본의 수집가들은 민간을 돌며 도굴과 무력을 동원한 강제매입을 일삼았다. 또 인사동에 촉수를 뻗치고 있다 이 씨 왕가가 자금난으로 내다 파는 왕실 보물들을 싸게 사들이기도 했다. 왕가의 소장품들이 총독부 박물관에 보관된 이후에는 총독부의 비호 아래 빌려간다는 명분으로 빼돌리기도 했다.

미 군정 때도 우리의 문화재는 해외로 유출됐다.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곳곳을 돌며 유물을 발굴하고 시장으로 흘러나온 왕실 유물이나 고미술품 등을 사들였다. 약 1천여 점 이상을 미국으로 가져가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경매로 팔았다. 이른 바 헨더슨 콜렉션이다.

◈사라진 우리 문화재 15만 3천 점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문화재는 15만 2천900 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6만 6천824점이 일본에 있다. 미국에 4만2천여 점, 최근 5년간 환수한 실적은 27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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