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그만둘까" 한마디에…한 은행의 '요상한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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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BC銀, 성과급 안 주고 내몰아…민사소송에 '협박'까지

HSBC은행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외국계 대형은행인 HSBC은행이 '상사와 퇴직 여부를 놓고 고민 상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성과급을 단념하지 않으면 민사 소송도 각오하라'고 사실상의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명세까지 확인한 성과급 증발한 까닭은…

HSBC은행에서 근무하던 송모(34·여) 씨는 지난 3월말 월급명세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1년에 한 번 받는 1300여만원의 변동급여 항목이 사라진 채 기본급만 지급됐기 때문이다. HSBC은행에서는 사원들이 매월초 상사와 함께 월급명세를 확인한 뒤 서명한다.

송 씨도 3월초에 '변동급여'(variable pay) 명목의 성과급을 받기로 된 걸 확인했지만, 아무런 고지도 없이 보너스가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놀란 송 씨에게 인사부는 "당신이 퇴직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성과급을 지급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속사정은 이랬다. 송 씨가 지난해부터 내심 퇴직을 고민해온 건 사실이었다. 회사 안팎의 문제가 겹쳐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02년부터 10년 넘게 일해온 정든 직장이어서, 속으로만 되뇌일 뿐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지난 3월 중순 직장상사 A씨와 단둘이 만나 속사정을 털어놓고 진로를 상담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뒤, A 씨는 송 씨에게 황당한 소식을 알려왔다. "인사부가 고민 상담한 걸 알아내, 관련 내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이에 A씨는 "송 씨가 퇴직을 고민하고 있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이메일로 보고했고, 송 씨에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은 뒤에도 "송 씨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유선 보고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송 씨와 A 씨의 해명에도 아랑곳 없이 "사직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도 회사 방침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퇴직후 '성과급 지급 결정' 이끌어냈지만…

그러나 문제의 성과급은 '지난해 노동한 대가'(total gross variable pay for 2012)이므로, 설사 퇴직을 하더라도 지급돼야 한다는 게 송 씨의 입장이었다.

이를 두고 계속 회사와 갈등을 빚던 송 씨는 끝내 지난 4월 사직서를 제출한 뒤,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5월말 퇴사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평소 농담 반, 푸념 반으로 내뱉기도 하는 "회사 그만둬야 하나"란 한마디가 실제 퇴직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HSBC은행은 끝까지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았고, 송 씨는 지난 7월말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한 달뒤 노동청으로부터 지급 결정이 내려져, 송 씨는 지난 9일 결국 문제의 성과급을 받아냈다.

노동청 관계자는 "송 씨의 경우 해당 성과급은 노동에 대한 대가로 '임금' 성격을 갖는다"며 "양측 의견을 종합한 결과 사직 의사 여부 등 사내 지급 조건과 관계없이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성과급 못 받은 다른 퇴직자들에 '협박성 입단속' 나서기도

하지만 HSBC은행은 마지못해 지급하게 된 성과급을 되돌려받기 위해 송 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에 들어가는가 하면, CBS의 취재 직후 송 씨처럼 성과급을 받지 못한 다른 퇴직자들에게 연락해 입단속까지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송 씨처럼 상사와 퇴직 문제를 의논했다가 1200여만 원의 성과급을 받지 못한 채 퇴직하게 된 K(35)씨가 그런 경우다.

은행 측은 24일 K 씨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송 씨를 상대로 소장을 접수했다"며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다. 송 씨와의 소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든지, 지금 성과급을 완전히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K씨는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만약 성과급을 받으려 시도하면 곧바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겠다는 협박으로 들렸다"며 "7년을 다닌 회사인데 정말 실망스럽고 난감하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 "보복성 소송 의심"…은행측 "노 코멘트" 고수

HSBC은행에서 이런 '황당 케이스'를 겪은 사람은 적지 않아 보인다.

송 씨는 "회사 동료들과 얘기해보니 이런 일이 1년에 한두 번씩 있다고 들었다"며 "퇴직을 하게 되면 성과급을 받은 다음 날인 26일에 해야 한다는 얘기가 퍼져있을 정도"라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회사와 싸울 자신도 없을 뿐더러, 이직할 경우 뒷소문이 두려워 성과급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HSBC은행 노조 관계자도 "송 씨처럼 성과급을 받지 못한 최근 사례만도 두세 건 더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송 씨의 소송을 맡았던 법률사무소 새날의 권동희 노무사는 "노동청에게 지급 명령을 받은 성과급을 민사 소송까지 벌여가며 다시 받아간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며 황당해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김요한 노무사도 "개인이 민사소송에 휘말리면 위축된다는 점을 이용, 본보기로 삼기 위해 보복성 소송을 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CBS는 은행측 입장과 소송 여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HSBC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어떠한 사실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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