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검 동부지청에 마련된 원전비리 수사단. (CBS 자료사진)
국내 원전업계의 병폐를 여과 없이 들춰낸 검찰의 원전비리 수사가 5일로 100일째를 맞았다.
원전업계의 고질적인 비리 구조를 상당부분 파헤쳤으나 풀어야할 숙제도 남았다는 평가다.
지난 5월 신고리 1·2호기 등에 납품된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검찰의 원전비리 수사.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원전비리 수사단을 꾸린 검찰은 그야말로 숨가쁜 100일을 보냈고,
그 사이 속속 밝혀진 원전업계의 비리는 충격적이었다.
수사의 발단이 됐던 원전부품의 시험성적서 위조는 납품업체와 검증업체 검수기관이 모여 사전 회의를 할 정도로 한 통속이 되어 국민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으며, 한수원은 이를 알고도 불량 부품을 납품 받아 원전에 설치했다.
김종신(68) 전 한수원 사장과 이종찬(56) 한전 부사장을 비롯해 원전관련 공기업의 말단 직원부터 최고위층까지 업체로부터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중소기업은 물론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까지 납품 편의를 위해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금품을 이들에게 상납하며 원전 계약을 유지했다.
이른바 영포라인 출신과 국정원 간부 출신 원전브로커 등은 업계와 정치권을 넘나들며
각종 로비활동을 벌여 원전 업계의 비리를 부채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전 정권의 자원외교를 이끌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최중경 전 장관 역시 비리 연루 의혹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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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성적서 위조, 그들은 한통속지난 5월 28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에 납품된 JS전선의 제어용 케이블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을 발표했다.
다음날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원전비리 수사단을 꾸린 검찰은 납품업체인 JS전선과 검증업체인 새한티이피, 검수기관인 한국전력기술을 잇따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했다.
조사결과 JS전선과 새한티이피 등은 끼워맞추기 식으로 시험성적서를 위조하거나 열노화 방사능 처리를 하지 않은 이른바 '생케이블'로 부품을 시험한 뒤 불량 케이블을 원전에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이들 관계 업체와 기관은 사전에 모여 시험성적서 위조 공모를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
당시 신고리 제1건설소 기전부소장이었던 이종찬 한국전력 부사장 등 한수원 관계자들도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과하고 납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통해 JS전선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불량부품을 원전에 납품해 모두 179억 원을 챙겼다.
대기업인 LS전선도 2006년 8월 하철업체인 A사가 공급한 냉각수 공급용 냉동기의 실링 어셈블리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울진 원전에 납품한 사실이 밝혀져, 국내 원전업계에서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가 만연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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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부장의 집에서 나온 6억 원 현금뭉치와 금품 로비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수사를 위해 지난 6월 20일 한수원 송모(48)부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던 검찰은 6억 원 상당의 5만 원권 현금뭉치를 발견한다. 국내 원전비리에서 금품 오간 정황이 포착되는 순간이었다.
검찰이 이 돈의 출처를 수사한 결과 지난해 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아랍에미리트 원전의 설비 공급에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현대중공업 임직원으로부터 나온 10억 원의 일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중공업은 납품업체를 통해 검은돈을 만든 뒤 이를 한수원 관계자에게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7월 5일 검찰은 김종신 한수원 전 사장을 전격 체포했다. 그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되던 한수원 최고위층의 비리 개입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김 전 사장은 국내 국지의 원전 수처리 업체인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UAE 원전 설비계약 유지 등에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와인상장에 든 1억 3천만 원의 돈을 수수했다.
이밖에 박기철(61)한수원 전 발전본부장과 이종찬 한전 부사장 등이 납품청탁이나 인사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등 발단에서부터 최고위층까지 한수원 전현직 임직원 20여 명이 원전비리와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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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브로커의 등장과 정치권 연루 의혹검찰이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에게 금품을 건넨 한국종수공업에 대해 집중 수사에 나서면서 원전비리 사건은 원전게이트로 진화한다.
12년간 국내외 원전 수처리 설비를 독점해온 한국정수공업은 2009년 이른바 '영포라인' 출신 브로커 오희택(55)씨를 영입하고 전방위 로비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오 씨는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13억 원의 로비자금을 받아 이 중 3억 원을 여당공위당직자 출신이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측근인 이윤영(51)씨에게 전달했다.
최초 혐의사실을 부인하던 이 씨는 "6천만 원을 박 전 차관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했고, 검찰은 이를 토대로 다른 혐의로 수감중이던 박 전차관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국가정보원 출신 간부 출신 브로커 윤 모(57)씨는 통해 한국정수공업에 우호적인 인물을 경쟁사인 한전 KPS의 임원에 앉혀달라는 청탁을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해 이를 성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최 전 장관에게 금품이 전달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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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명 재판 넘겨, 남아있는 숙제는?원전비리 수사단은 수사개시 이후 지금까지 원전비리와 관련해 모두 45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10여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위에서는 검찰이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사건을 원전비리 게이트로까지 확장시키며 국내 원전의 고질적인 비리구조를 상당부분 파헤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수사 초기부터 의혹으로 제기되어 온 정치권 최고위 층의 비리개입 여부에 대한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옥의 티로 남아있다.
검찰은 오는 10일 대검찰청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수사를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